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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Apr 06. 2023

너에겐 왼손의 언어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축제


매일 아침 팔라펠을 먹었다. 팔라펠이란 여러 종류의 콩과 씨앗 등을 으깨 뭉친 완자를 일컫는다. 고기 대신 먹는 중동 쪽의 대표적 음식이지만 길거리에서 먹기 편하도록 얇은 또띠아에 야채와 소스를 넣어 샌드위치로 만드는 게 보통이다. 길거리 음식치고 저렴한 편이 아니었다. 그건 어째서인지 외국인인 나에게 다른 값이 되었다. 그래, 종종 그런 경우가 있었다. 바가지를 쓰는 건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가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전에 만들어지는 팔라펠 샌드위치를 보노라면, 그 재빠른 손놀림 앞에선 고작 ‘오이를 빼 줘!’라 말하기 급급하니까. 그리고 조금 불쾌해진다. 한 입을 베어 물면 풀릴 정도의 불쾌함이라 애써 무시했다.


이집트, 다합 (2022)



외국인들의 일과는 뻔했다. 분주하게 스쿠버나 다이빙 준비를 마친 아침, 한 차례 수영을 마치고 나오면 느긋하게 뒤늦은 식사를 하거나 술을 한 잔 하거나. 낮잠을 자기도 한다. 한량의 삶이다. 아침 길거리의 팔라펠은 그래서 외지인을 상대하지 않는다. 택시 기사들 혹은 장사를 하는 사람. 그리고 현지인 중 식사 겸 포장하는 가족들을 상대한다. 대부분의 식당이 술집을 함께하니 점심시간쯤 여는 데 반해 번잡한 오전일과를 치르는 팔라펠 가게는 분주하다. 아랍어는 하나도 모르겠고, 어머니와 아버지들 그리고 심부름으로 온 아이들까지. 개중에 섞인 외국인인 나는 순서를 기다리다 새치기만 당하기 일쑤다.


바로 앞에서 어느 어린이가 팔라펠을 포장한다. 가족들의 심부름을 하는지 다섯 개. 팔라펠 샌드위치가 순식간에 만들어지고 50파운드를 낸다. 나는 한 개만. 그럼 20파운드라고 한다. 다섯 개를 사면 싸지는 걸까. 그걸 묻고 싶은 게 벌써 나흘이다. 이번 아침은 일어나지 않았다. 팔라펠을 사서 바닷가를 산책하고 해가 뜨거워지기 전 테라스에서 종일 글을 쓰는 일과에서 아침은 전날 사 온 빵으로 채우고 오후에 나섰다. “헤이, 프렌. 오늘 안 오는 줄 알았잖아.”


이마의 땀이 흐르는 건 민망해서가 아니었다. 47도에 육박하는 더위는 잠시더라도 나를 증발시키려 했다. 그래서 이깟 10파운드는 한국 환율로 4백 원의 차이라며 무시해 버리는 게 나을까 잠시 고민했던 것이다. 나는 팔라펠을 주문했다. 팔라펠 두 덩이를 넣고 저며진 가지와 감자튀김, 마구잡이로 썰린 토마토와 정체를 모르는 소스. 그리고 그는 말했다. 15파운드.


아침엔 20파운드, 현지인 소년은 10파운드, 그리고 지금은 15파운드. 정말 제멋대로인 계산에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실소가 터졌다. 구닥다리 나무 의자에 앉았다. 가격이 다른 게 너무 웃겨, 나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주인은 말했다. “참 별 것 아닌 팔라펠 샌드위치야. 우린 들고 오는 돈에 맞춰서 만들어주는 거야.” 그럼 10파운드짜리 샌드위치는 어떻길래?



이집트, 다합 (2022)


항상 샌드위치를 건넬 때는 왼손을 내밀어.


가지도 안 들어가고 감자튀김은 기분에 따라 준다고 했다. 부쩍 얇아진 또띠아를 보며 즐거웠다. 10파운드짜리 팔라펠은 남는 게 없다고 했다. 모든 재료를 첨가하여 20파운드짜리 샌드위치를 팔면 고객 입장에서 어쩌겠느냐만, 10파운드만 가진 사람에겐 적당한 재료로만 채워 맞춰주는 게 자신의 카르마라고. 그래서 오른손을 속이기 위해 왼손을 내민다고. 앞으로 10파운드짜리 팔라펠을 내게 20파운드에 팔아. 대신, 10파운드짜리를 원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에게 하나를 주는 것 어때?


탐스라는 신발이 있다. 하나를 사면 하나는 신발이 필요한 사람에게 똑같이 가는 브랜드. 정말 갈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누군가에게 가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왼손으로만 수염을 쓰다듬고 있어. “그거야말로 네 카르마가 아닐까.” 왼손의 카르마는 언제나 사마리아인처럼 행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럼 앞으로 내가 머물 수 있는 기간 동안은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 “그거 재밌는걸?”


그는 내가 올 때면, 보여주듯 후줄근한 소년들에게 ‘이 친구가 사는 거야.’ 으스대듯 팔라펠을 내밀었다. 저렴하지만 우아한 생색을 우린 ‘왼손의 언어’라 칭하기로 했다. 앞으로 한 달을 더 머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의 허기를 달랠 수 있을까. 4백 원의 행복을 줄 수 있는 게 다행이라면서. 별 것 아닌 것으로 재미있는 일을 실행하며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다. 이토록 작은 축제라면.


우스운 일이잖아. 왜 나한테는 10파운드짜리를 주면서 15파운드를 받는 거야? “의자에 앉았으니까!” 그는 철저한 친구였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딱 하나뿐인 의자에 앉아서 여유롭게 팔라펠 샌드위치를 먹는 그 시간에 대한 값을 치르라고 했다. 아이고 세상에. 여기 왼손의 언어는 없는 거야? “그래, 좋은 일을 하기로 했으니까 5파운드를 깎아줄게!” 아침마다 나는 20파운드를 고정으로 지불했다. 매일 다른 소년들이 즐거운 미소를 띠었다. 몸엔 바닷물이 말라 소금이 반짝거렸다.






@b__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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