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낭만적인 상황은 아니다.
나는 오늘 아마 잠들지 못할 것이다.
참아보기로 했다. 온갖 생각이 다 들었지만 스스로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한다. 뭐가 좋을까. 엉덩이를 후려갈기는 상상을 해도 좋고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상상도 좋다. 나이에 안 맞게 잔뜩 기른 콧수염을 태워버리는 건 어떨까. 불이 붙기 전에 놀라 비켜설 테니 이 방법은 패스. 분명 녀석도 날 비웃는 소리를 하고 있을 게 뻔하니 이 정도 상상은 괜찮겠지.
국경으로 가는 야간 버스 안. 자리가 없어 통로에 선 녀석이 기침을 한다.
저녁밥은 생선과 토마토였을 것이다.
기침이 심해졌다. 샤워기처럼 내 머리칼을 향하는 통에 피할 길이 없다. 나를 놀리는 와중에 기침을 하는 건지, 기침을 하는 와중에 나를 놀리는 건지. 날 보며 쿡쿡대다 기침을 하니 이제 그만 간절히 녀석의 기침이 멎었으면 바라는 것이다. 그래야 날 놀리는 것에 대해 화를 낼 수 있으련만. 정말로 녀석의 평안을 기원한다. 그나저나 생선에 매운 소스를 뿌렸나 보군. 사실 냄새는 내 앞에 앉은 사람도 맡았을 테지.
뭐 당연한 소리지만 침도 튀고 있다. 나는 오늘 아마 잠들지 못할 것이다. 음악을 듣는 것도 포기했고 책을 읽는 건 더욱더. 아니 근데 왜 방향 한 번을 돌리지 않는 걸까. 마치 나를 위한 해바라기처럼 굴고 있다. 입 좀 가려달라고 한 마디 할까 생각도 했다. 시원함은 녀석의 몫이지만 불쾌함은 내 몫이었으니. 시종일관 지칠 줄 모르는 순애보에 나는 지쳐만 가고 있었다.
중간에 버스가 멈췄다. 누군가는 저녁식사를, 누군가는 화장실로 향했다. 과자와 함께 차 한잔을 하는 녀석을 나는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차라리 말라리아 걸린 모기가 날 물어뜯어도 좋으니 제발. 벌써 새벽 한 시. 싸구려 완행 버스는 끊임없이 멈췄지만 녀석은 내리지 않았다. 망했다. 녀석은 국경까지 간다.
전화가 왔다. 현란한 벨소리야 녀석의 것만이 아니겠지만, 자정이 넘은 시각에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빵점이다. 콜록거리며 말을 하는데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머리를 괴고 애써 잠을 들려 노력한다. 언제 어디서든 잠들 수 없는 건 덜 피곤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이건 예외다. 아직은 네팔, 곧 인도의 국경이다.
고의로 그러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미처 입을 막기 전에 기침이 나와버린다거나, 아주 중요한 전화가 와서 어쩔 수 없이 받았다는 등의. 다른 사람들은 잘만 자는데 나만 잘 수 없는 건 통로의 불빛이 강해서도, 창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추워서도 아니라 우스운 콧수염이 하필 감기에 걸렸는데 내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는 탓이었다. 아니, 내가 애초에 왜 녀석의 사정을 봐주고 있는 거냐.
이방인은 언제나 약자야.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그랬고, 여자친구도 그렇게 말했다. 언제 어디서든 조용히, 분란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고. 최소한의 영향을 끼치고 지나야 한다고. 득 될 것 하나 없이 거쳐가는 주제에 나는 싸우지 말아야 했다. 그것도 기침이 튄다는 이유로. 그래도 그렇지, 내가 열두 시간 동안 이름도 모르는 녀석의 분비물을 맞고 있어야 하는 이유는 뭔가. 기침이 튄다는 이유로 다툼이 인다면 나는 숟가락으로 녀석을 응징해야겠다. 어디 가서 숟가락으로 맞아 신고했다는 말을 하면 우스갯거리가 되겠지.
기침은 멈추지 않았다. 그가 몸 한 번 비틀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에 경의를 표했다. 이쯤 되니 내가 기침하는 방법을 새로 가르친다던가, 매너가 무엇인지 알려준다던가 한다면 되려 녀석이 성내지 않을까 싶다. 여태까지 가만히 있었으면서 왜? 아뿔싸, 그 순간 손에 큰 덩어리의 침이 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속에 맴도는 말이 나갈 구멍은 없다.
버스가 멈췄다. 사람들이 한 둘 깬다. 국경에 도착했다.
우스운 콧수염은 금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