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의 보름

부처의 탄생, 네팔 룸비니.

by 박하


똑, 똑, 똑.


새벽으로부터 오는 목탁 소리에 잠을 깬다. 해가 지면 잠드는 것이 어렵진 않아도,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는 것은 어렵다니 이 얼마나 불공평한가. 오늘도 아침 예불에 늦었고 결국 다시 잠을 청한다. 이번엔 길고 낯선 울음이 길게 들린다. 여우가 있다고 하던데, 녀석들은 가끔 담을 넘어와 먹을 걸 찾아다닌다 하더라. 민망스러운 고요에 음악은커녕 말소리조차 괜히 소곤거린다.


전기는 여전히 안 들어오지만, 당장 필요치 않으니 그걸로 됐다. 결국 늦잠을 자고 나오니 여섯 시부터 시작된 공양은 한참 전에 끝났고 배는 고팠다. 이 먼 곳까지 오느라 수고한 미숫가루로 속을 달래고 앉는다. 빗자루질을 하고 빨래를 걸고. 오늘은 정월대보름. 여긴 부처가 태어난 성지.




룸비니, 네팔 (2016)


스님이 저래도 되나.


어느 금지된 장난과 같이 동자승들은 수줍게 초콜릿을 달라고 했다. 아니 과자에 못 먹을 음식이 들어갔을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못된 녀석, 내가 전부 먹어버려야지. 보는 앞에서 과자를 전부 먹어치우고 나니 얄밉게도 동자승이 주머니에서 과자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야, 너 뭐야. 과자 있었으면서. 이미 뱃속에 들어간 과자는 충분했는데도 나는 똑같이 손을 내밀어봤다. 나도 과자 줘. 예상과 달리 거리낌 없이 웃으며 과자를 건네는 동자승의 행동에 나는 그만 얌체가 되고 만다. 나야말로 못된 녀석이라는 듯.


이상하게 불교 성지를 누비는 나였다. 본디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었어도, 태어날 때부터 강제로 받은 나의 종교는 중간에 어딘가에 흘려버렸다. 나는 다시 종교가 없다. 생전 처음 보는 예불과 불교의 법도를 따르는 일은 익숙하지 않아, 따라 하기도 벅차다. 숨이 차도록 절을 따라 하고 나서야 예불이 끝난다.


사찰에 머무는 어느 누군가 말했다.


‘마니차를 돌려 줄이 끊어지면 해탈한다고 믿는데 그건 틀이 닳는 거야. 결국 헤어 나올 수 없는 굴레에 있는 거지.’ 그렇다면 끊임없이 계속되는 우주에서 다음 생만을 준비하기에 현생이 너무 불쌍하지는 않나. 종교가 움직이는 힘은 바로 믿음, 그러나 믿음은 돈으로 환산되는데 거리낌이 없다.


질세라 종교적 불신을 보탠다. 볼리비아에서 신부님이 계셨는데. 마을버스가 멈추고 마을 사람들이 전부 내려 신부님 손을 잡고 신처럼 자꾸 인사를 하는 거예요. 스페인에서 넘어간 군대가 종교를 퍼트렸을 텐데 그게 토테미즘 하고 겹쳐서 왜곡이 된 거지. 뭐 정통성이야 나중에 따지더라도 그런 식이면 본질 자체가 달라졌을 텐데.



그래. 어린 동자승들이야, 내일은 초콜릿을 받게 해주세요 라고 빌어도 알게 뭐냐고. 따라다니는 과한 잣대들을 댈 필요도 없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나이니까. 작고 들고 다니기 편한 목탁과 맛 좋은 초콜릿이 놓여 있으면 초콜릿을 집을 어린이들인데. 그것도 아무 이상하지 않을 일인데. 단지 승복을 입고 머리를 밀었다고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일이 무서워 견딜 수가 없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교리들. 종교에 몸 담았다는 이유로 더욱 엄격해지는 잣대. 그런 논리라면 종교가 없는 이들은 되려, 온갖 방탕한 자유를 위해 종교를 버린 사람들은 아닐까.




난 인간이 태어나며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나라, 성별 그리고 종교. 물론 종교는 추후에 바꿀 수도 있는 것이지만, 나의 유년 시절을 함께 하며 습득한 종교적 학문들은 알게 모르게 내게 유리한 점으로 작용했다. 심지어 그 차이는 '데미안'을 읽는 것에서부터 여실히 달라지니까.


룸비니, 네팔 (2016)


종교가 가지는 에너지는 어마어마하지만 그저 신기할 따름. 으레 성지에서 흔히 생기는 파워게임. 이를테면 사원을 크게 짓는 일이 믿음의 크기라고 생각하는 일이나, 어째서 그렇게 보름의 달을 좋아하는지. 또는 종교마다 금지된 금기. 모든 이를 구원해주지 않는 알량한 신이라며 비난하는 관점과 지하철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불신지옥 같은 것에 많은 관심을 두진 않았다.


철학적인 소견 이외의 것에 목소리를 내면 감당 못할 정도의 비난을 받게 되는 길을 어떻게 선택하는 것일까. 금박지를 바르고, 부처가 태어난 자리가 상할까 봐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동전과 지폐를 던지는 것은 결코 막지 않는 일들도. 그러나 범우주적인 시각까지 아우르는 '종교'를 고작 찰나에 사는 내가 판단할 수 없는 일.


자, 이제 달이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