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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백반 Sep 18. 2024

마음은 늘 힘을 내고 있어

어느 자가 면역 질환자의 투병기

약을 끊은 지 5주가 되었다. 

나의 담당의는 나에게 약을 끊게 되면 지금 머리 빠지는 속도는 아무것도 아닐 거라 말했다. 

나는 물었다. 

혹시라도 나와 같은 약을 먹고 나와 같은 결정을 한 사람 중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없냐고..

그가 말했다.. 

90% 넘는 사람이 그랬다고..

나는 그 와중에도 그가 정확한 수치보다 뭉퉁그려 나에게 나는 다를 거라 말해주길 바랐다. 

정확한 그는 정확하게 대응했다. 


그날 나는 그에게 약이 빠져나갈 때 어떤지 묻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내가 그것에 대한 무지였음을 그 이후에 알게 되었다.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했고, 단약을 결심할 만큼 몸과 마음에 힘이 있었던 8월 초와는 다르게, 

중순부터 몸은 이상한 컨디션을 만나게 되었다. 


항상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경이로운 것인가를 나는 직접 경험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몸은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고 있었고, 균형에서 어디 하나가 무너지게 되면 그것에 적응하기 위해 

몸은 애를 쓴다. 

1년을 먹었던 약이 어느 정도의 항상성을 몸에 주고 있었는데, 그게 단시간에 없어지니 

몸은 허둥대기 시작했다. 

내부에서 어떤 애를 쓰는지 나는 일상을 겪으며 알게 되었다. 

길을 가다 몇 번이나 주저앉았고 수면에 차질을 겪었다. 

눈이 빠질 것 같았고 머리는 무거웠다. 

운동을 하러 나가기가 무서웠다. 

운동을 해야 혈액순환이 될 텐데, 

진정한 도파민은 운동에 있음을 알고 난 이후라 더욱 조급해졌다. 

정신은 말똥말똥한데 몸이 쳐졌다. 

앉아서 책을 읽을 수도 없었고, 멍하게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라치면 기분까지 덩달아 가라앉았다.

그러다 조금 컨디션이 며칠 괜찮아지다가 다시 또 가라앉는 과정의 반복들..


운동을 못하는 체력은 금방 사라져 버렸고, 

머리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타이밍마다 기함할 정도로 빠지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할 때면 종아리가 간지러웠다. 

나의 작은 움직임에도 머리는 눈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마음도 몸도 모두 힘이 빠졌다. 

한의원에서도 맥이 너무 떨어져 있다고 머리에만 침을 주었다. 

이 시간을 잘 견디라는 말을 건네 주었다. 


남편이 물었다. 

너, 다시 약은 안 먹을 거지?

응.. 이렇게 겪었는데 힘들지 않을까?

면역억제제란 약은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진 약이었구나라는 것을 절감했다. 


나는 무력했다. 

나는 무력하다.


왜 이런 일을 겪는 건지 생각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아무리 회고를 해보았자 달라지는 상황은 없고,

마음만 힘들 뿐이니까, 

그저 이런 일이 일어났을 뿐이고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내가 어떤 결정을 해서 겪는지가 미션인 게 인생이라는 것쯤은 아는 나이이므로

과거보다 미래를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마음에게 자꾸 말을 건다. 


5주의 시간은 필연적이었음을 안다.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더 필연적 일지 모르겠다. 

다만, 마음은 이걸 겪느라 애를 쓰고 있다. 

좌절하지 않기 위해서. 

독려하기 위해서,

작년에 이어 이걸 또 겪는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힘을 내고 있다. 


두려운가? 

어떤 것이 두려운가?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가?

나에게 묻고 답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내가 원하는 미래에 대해서만 집중하자고.. 

언젠가 지금의 모든 과정이 내 삶의 비료가 되었음을, 

언젠가를 위한 필요 과정이었음을 

납득할 날이 올 것이다. 

오게 만들 것이다.  

라고 마음은 힘을 내고 있다. 


어서, 운동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이 괴물 같은 시간이 지나가기를.

나의 마음에게 기대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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