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들 때는 잠시 변기에 앉아보세요
군대에서 가장 힘든 보직이 무엇인가? 내가 맡은 보직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인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육아라고 다르겠는가?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힘이 든다. 그러니 서로 누가 더 편하고 힘든지를 겨루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더군다나 나처럼 멍청한 남편들은 가끔 아내의 출산 장면을 까먹고 지낸다. 하. 그때의 모습이 생각이 나는가. 10시간 동안 끔찍한 고통을 겪은 아내에게 앞으로 힘든 일은 내가 다 할게라며 그렇게 주먹을 불끈 쥐고 다짐했건만. 육아는 왜 이리 어렵고 험난하며 끝이 보이질 않는 여정인지. 그런 다짐이 무색해지며 아내에게 툴툴대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남편도 사람이다. 아내를 위하는 마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육아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이를 재운다고 한참 공을 들였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 아이가 깼을 때, 피곤한 일요일 새벽에 아이가 너무 일찍 일어나 칭얼거릴 때, 한참을 우는 아이가 왜 우는지 도통 영문을 알 수 없을 때, 나는 아이와 잘 놀아준다고 노력하고 있는데 옆에서 아내가 성의 있게 놀아주라며 핀잔을 줄 때 등등. 육아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나는 힘이 들 때 조용히 화장실에 들어가곤 한다. 화장실은 뭐랄까, 최고의 안식처이고 피난처이며 충전소 같은 공간이다. 왜 하필 화장실이냐고? 화장실은 일단 폐쇄된 공간이다. 혼자 들어가서 문을 닫아 잠가도 이상하지 않다. 안방 문을 닫고 잠그면 아내에게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오해를 살 수 있다. 하지만 화장실 문을 닫고 잠그면 그런 오해를 받지 않는다. 폐쇄된 공간에서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잠시 앉아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에 접속해 재미있는 영상을 볼 수 있다. 혹은 SNS에 접속해서 속세의 친구들(?) 혹은 사이버 친구들(?)의 재미있는 소식을 엿볼 수 있다.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서 실시간 뉴스를 확인할 수도 있고,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을 수도 있다. 이런 일들을 방해받지 않고 잠시나마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간은 화장실이 제격이다.
또한 화장실은 아내의 부름에 여유를 가지고 응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예를 들면 “여보, 아직 멀었어?”라는 아내의 부름에 “아니야. 곧 나갈게.”라고 답하며 파이팅을 외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벌 수 있다. 화장실에서 다급하게 나오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아내의 이해를 얻을 수 있다. 또 건강을 생각해서도 화장실에 자주 가는 습관은 나쁘지 않다. 육아를 할 때면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생긴다. 그런 상황들을 대비해 미리 해야 할 일(?)을 해결하면 나름 효율적이다. 어쨌든 화장실은 고대 삼한에 존재했던 신성한 구역으로 지정된 ‘소도’와 비슷한 느낌이다. 뭔가 이해받는 느낌, 잠시나마 얽매이지 않는 기분이 나를 위로해준다.
하지만 화장실에 너무 자주가면 소중한 안식처를 잃어버릴 수 있으니 주의해야한다. 최근에 화장실에 들어간 나는 멀리서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화장실에 앉아서 핸드폰 하고 있지? 다 알아.” 조심해야한다. 과유불급이다. 앞서 화장실을 안식처, 피난처, 충전소로 표현을 했다. 그 중에서도 충전소 정도의 개념으로 사용하는 게 가장 옳다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를 보느라, 스포츠 중계를 보느라 귀찮아서 조금만 참다가 갔던 화장실이 어쩌다가 충전소가 됐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육아라는 마라톤을 뛰기 위해서는 내 건강과 스트레스를 잘 관리해야한다. 아내에게 대놓고 쉬겠다고 말하기 미안한 남편들이여. 잠시 휴식이 필요한 남편들이여. 그럴 때 조용히 화장실 문을 열어보자. 아내가 부르면 이렇게 답하면 그만이다. “여보, 금방 나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