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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산책 Jun 27. 2024

일본 주유소 공포증

처음엔 떨릴 수 있으니까요

 일본에는 ‘타임즈 카’라는 시스템이 있다. 일종의 렌터카 서비스인데 회원가입만 하면 도쿄를 비롯한 일본 전역에서 렌터카 서비스의 이용이 가능하다. 한국으로 치자면 '쏘카'와 같은 개념이지 않을까. 글로벌 고객 센터가 있는 걸로 보아서 관광객도 사용 가능한 서비스인 듯하다. 렌트비는 차량 종류에 따라서 다르기도 하지만 6시간에 5000엔 정도로 도요타나 여타 자동차 제조 대기업들의 렌트 서비스에 비하면 1/2 수준으로 가격이 굉장히 착하다.






타임즈 카의 앱 화면.  노란 마크가 예약할 수 있는 차량이 있는 지역이다

 차를 빌리기 위해서는 휴대폰 앱을 이용해서 빌리고 싶은 지역의 차를 선택해서 예약하기 버튼만 누르면 된다. 이때 불필요한 신청이나 대기는 일절 없다. 일본에 살면서 느리디 느린 관공서 처리 시스템을 경험하다가 이 서비스를 처음 이용하면 아마 감동할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일본에서 이렇게 빠르고 간편한 서비스가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좋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한다.


 앱에서 차량을 예약한 시간이 되면 차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차량 후면부에 나의 회원카드를 찍으면 잠금장치가 풀리게 되고 그럼 문을 열고 차를 이용하면 된다. 단, 예약 시간 전까지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 놔야 한다. 이때 예약 했던 시간이 지나면 추가 금액이 붙는다. 따라서 차를 빌린 곳에 다시 주차해놓아야 하므로 시간 계산을 적절히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에 나는 여자친구와 함께 타임즈 카를 이용해서 도쿄에서 벗어난 야마나시현으로 여행을 갔다 왔다. 일본은 고속도로 톨게이트 비용이 상상을 초월하는데 도쿄에서 야마나시현까지 가는 고속도로 톨비는 무려 4천700엔 정도이다(130 km 남짓의 거리). 우린 딱히 여행 일정을 정해두고 간 것이 아니었기에 길 구경도 할 겸 천천히 국도로 이동하면서 여행을 했다. 편도 2시간의 여행이 갑자기 4시간 50분 정도가 걸리는 대장정이 되었다.







 주행거리가 거리이다 보니, 출발하고 3시간쯤 지났을 때일까 자연스럽게 연료가 바닥나기 시작했다. 타임즈 카는 사용자의 돈으로 주유비를 지불하는 것이 아닌, 차량에 있는 주유 카드를 사용해 지불하면 됐다. 슬슬 주유소를 들려야 했다. 산 길을 달리고 있어서인지 주유소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들려야만 하는 주유소가 나타나면 나는 자꾸 그 주유소를 지나치는 것이 아닌가. 일본에서 주유를 해본 경험이 한 번 밖에 없었기 때문에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유소에 가서 차를 정차할 땐 어느 방향으로 해야 했더라? 카드를 어디에 넣고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하지? 직원이 나와서 직접 해주는 건가? 어떻게 주유하면 좋을지 몰라 두리번거리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괜스레 손에 땀이 났다. 한 4-5번 정도 주유소를 지나쳤을까. 조금씩 여자친구의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계기판의 연료 표시기는 한, 두 칸 밖에 남지 않았다. 차는 산 중간을 달리고 있었고 이제는 진짜 주유를 해야만 했다.


 주유소를 계속해서 지나치는 스스로를 보면서, 나 자신이 실패를 굉장히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나 이렇게 실패하는 걸 두려워하는구나.”  수많은 사람을 매니징 하는 일도 아니었고, 단 한 번의 실수로 전재산을 잃는 주식 트레이딩도 아닌, 고작 차에 기름을 넣는 일이었다. 이건 큰 문제였다. 주유를 할 줄 모른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주유소 직원에게 어떻게 사용하는지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다음번에 만나는 주요소에서는 꼭 주유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곧 얼마 되지 않아서 나온 주유소로 들어갔다. 다른 차량이 이미 주유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차량의 방향을 보고 주차를 했다. 셀프 주유소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빌린 차가 경차라고 알고 있었기에 경유를 넣으면 되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차량 주유구에 경차가 아닌 ‘레귤러’라고 적혀 있는 걸 보고는 경차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세상에!). 이때 차량의 주유구에 어떤 종류의 연료를 넣으면 되는지 표기되어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차량에 있던 주유 카드를 주유기에 찍고 화면을 이리저리 터치하다가 연료를 만땅을 채웠다. 생각보다 할 만했고 이마에 땀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주유는 무사히 끝이 났다.


 아마 다음부터는 한 번도 주유하면서 긴장한 적 없는 사람처럼 거들먹거리며 주유소를 찾아 들어가 주유를 하고 있지 않을까. 별 것 아닌 주유소에 공포를 느꼈던 스스로가 웃겼다. 이로써 나는 스스로 만들어낸 주유소 공포증을 극복한 셈이다. 때때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이 막상 맞닥뜨리고 나면 별 게 없는 것이었을 때가 있다. ”내가 이따위에 긴장하고 있다고? “라는 의문이 들었을 때가 바로 그 공포증에 도전해 볼만한 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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