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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인천공항에서 알마티, 알마티에서 바쿠오기

인천공항 -> 알마티 -> 바쿠

by 박약

드디어 홀로 한 달 여행이 시작되었다. 시작 전은 설렘 삼분의 일, 기대 삼분의 일, 두려움 삼분의 일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은 꽤나 설레지만, 영어를 잘 못하는 여성 혼자서 이름도 낯선 나라들에서 한 달이나 지낸다는 것은 두려웠다. 직원 제안도도 뿌리치고 온 일이기에 책임감을 가져야 했다. 남편이 조금이라도 불안해할까 봐, 두려움은 짐짓 티 내지 않았지만 출발이 가까워질수록 목이 말라갔다.


mbti 검사를 하면 p와 j의 비율이 거의 비슷하게 나오지만 p가 조금 더 우세하다. 기획자로써 평소 저력을 다 기획에 쓰는지도 모른다. 한 달이나 일을 쉬었음에도 오기 일주일 전에 예매, 이삼일전에 찾아보다 공항에서 숙소까지만 제대로 된 일정을 짜고는 말았다. 대충 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느낌은 알았으니, 그래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계획을 세우자.


첫 번째 미션은 비행기 타고 아제르바이잔 도착하기.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사실 인천공항까지도 일종의 여행이다. 전날 동생집에 올라와서 하루를 자고 새벽부터 인천공항에 출발했다. 세 시간 전쯤 도착했고, 인천공항은 예전만큼 붐비지는 않았다. 에어아스타나라는 저가항공을 탔는데, 갈 때 비행기값은 스카이스캐너를 거쳐 781,511원. 수화물이 기내 8킬로, 위탁 23킬로로 지정되어 있었다. 약 20만 원 더 저렴한 티켓도 있었으나 경유를 2번 해야 했고, 델리공항에서는 자가환승을 해야 해서 패스.


끊고 나서야 알았는데, 스카이스캐너에서 검색하고 다시 항공사에서 한번 더 검색해서 사는 게 더 저렴하다고 한다. 환불이나 교환도 편하고. 그래도 동유럽까지 이 가격인 게 어디야. 경유지에서 3시간만 기다리면 돼가지고 더 좋았다.


인천공항 1 게이트에 도착했다. 기내 수화물 무게를 재는 곳이 있다고 했는데, 사람이 많아 잘 보이지 않아 폭풍 검색으로 에어 아스타나는 k 어딘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한참을 걸어갔다. 기내캐리어에 17인치 노트북이 들어가는 배낭을 얹어 최대한 가볍게 출발했기에 망정이었다. 매일 소도시에서 자차를 타고 다니니 걸을 일이 거의 없는데, 어제 성남에서 지하철 조금 타고, 아트박스 들려 이거 저거 사고 골목길을 걸었다고 허벅지가 벌써 욱신했다.


에어아스타나는 세 줄 정도 줄이 서있었고, 한국인으로 보이는 분이 약 10퍼센트, 동양인이 총 3분의 1 정도 되었다. 한 30분을 기다려 체크인을 하러 갔다. 뭐가 문젠지 모르겠지만 마이트립 사이트에서 셀프체크인이 한국에서만 진행돼서 탑승권을 받을 수 없었고, 셀프체크인 기계에 에어아스타나는 뜨지 않았다. 체크인을 해주는 분은 다 한국인 승무원이었다. 자초지종을 말하니 바쿠까지 두 티켓 모두 체크인을 해주고, 짐은 바쿠로 바로 보내주신다고 했다. 올 때도 이래야 할 텐데..


체중계가 없어 기내 캐리어 8kg, 배낭 3-4kg 정도 예상했다. 기내짐은 케바케라 기내수화물과 어느 정도 배낭은 봐준다는 소리도 들었다. 같이 들고 가고 싶었는데, 기내 수화물 무게에 민감해서 안된다고 했다. 재보니 기내 캐리어 18-20인치 10킬로, 배낭 6킬로였다. 이렇게 무거울지 몰랐다. 나중에 배낭에 들어가는 노트북과 얇은 가죽케이스만 따로 재보니 이미 2킬로였다. 그램 17인치가 왜 그램이 아닌가 싶다.


기내캐리어에 물건은 꽤 넣었지만 들었을 때 나름 가벼웠다. 배낭에는 노트북 말고는 넣어야 할 휴대물품들과 서류, 노트만 챙겼는데도 무게가 꽤 나왔다. 올 때는 기내캐리어 + 미니백에 큰 캐리어를 하나 사 오려고 했는데, 하루 들어보니 웬걸 이 정도 이상의 무게는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여기서 일부는 버리고 선물들만 용량 적은 것들로 사 올 예정이다. 남들은 예쁜 옷 많이 입고 여행 간다는데, 나는 버릴 옷들을 챙겨 왔다. 내가 작업하고 싶은 풍경들의 자료조사가 목적이기에 매일 아침 운동과 노트북으로 이렇게 글과 감정을 남기고 카메라로 충실히 담아갈 예정이다.


옷은 상의 목폴라 1개 , t 2개, 등산복 1개, 잠옷 1개, 반팔 1개, 조끼 1개, 패딩 1개가 전부이고 하의는 청바지 1개, 운동바지 1개, 잠옷바지 몸빼 1개가 입고 있는 옷 포함 전부이다. 양말과 속옷은 충분히 챙겨 왔다. 부족하면 현지에서 사고, 한 달간 잘 살다가, 웬만한 옷가지들은 버리고 올예정이다. 근데 사실 버릴 것도 별로 없다. 18인치 캐리어의 삼분의 1만 옷이 차지하고 있다. 전자기기는 노트북, 디에세랄, 휴대폰이 전부이고 이어폰은 좀 넉넉하게 챙겨 왔다.


그림가지들도 들고 와서 그리고 싶었고, 한국형 타로도 들고 와서 친구를 사귀면 봐주고 싶었으나 짐을 싸다 보니 더 오버할 수 가없었다. 뭐든 간소한 게 좋다. 멋 내기 템을 실컷 챙겨가는 여행객들의 노고와 고생이 진심으로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뿐인데도 왜 이렇게 챙길게 많은지. 사람이 한 달 사는 데에 있어 얼마나 많은 용품이 필요한지 생각하게 했다. 내가 사용하는 물건이 이렇게나 많구나. 줄인다고 줄였는데도 완전히 줄어들지 않았다. 여행을 가면 본질적인 것들에 집중하게 된다. 먹는 거, 싸는 거, 씻는 거가 왜 그렇게 중요하고 복잡하며 매 번 찾아오는지.. 평소에는 별 생각도 없는 기본적인 본능에 집중하게 된다. 사람은.. 참 동물이구나.


인천공항 게이트에서 1시간 정도가 남았는데 목이 말랐다. 커피는 다 4000원 대였다. 커피를 마시려다가, 떠나는 김에 건강한 음식을 먹고 카페인을 줄여보자는 생각과 현지에서 4000원이면 밥 한 끼라는 생각이 맞섰다. 신기한 일이었다, 평소에는 하루에 커피숍을 두세 곳씩 가기도 하는데. 만원에 몇 시간 놀았으면 가성비 넘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사람은 참 상대적이다.


물 하나를 사서 마시면서 공항을 돌아봤다. 최근에 서울에 오래 있다 내려오신 분이 우리 도시는 치앙마이 같다고 했다. 물가도 저렴하고, 사람도 없고, 아직도 익숙하진 않지만 휴양지 같다고 했다. 나도 그래서 우리 지역에 있는다. 지역 관련 일을 하다 보니 포럼에 가면 많은 지역민들이 우리 지역은 트렌드 하지 않아서, 누릴 게 없어서, 발전이 안돼서 아쉽다고들 한다. 사실 나는 그 점이 좋아서 지역에 안착한 거라 더 발전되지 않았으면 한다. 관광이 많이 들어오고 더 발전돼버리면 더 작은 소도시로 훌쩍 떠날지도. 사람의 눈은, 관점은 이렇게나 다르다.


공항에서 좀 기다리다 보니까 옆에 또래 한국이 두 명 앉아 생기발랄하게 수다를 떤다. 나도 친구랑 가고 싶었는데, 막상 보니 또 혼자 오길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부럽기도 하면서, 혼자가 더 편한 것 같기도 한 오묘한 양가적 감정이 든다. 게이트 40에서 한국인은 거의 없다. 어디 나라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 자연스럽게 대화 내용이 들린다. 고프로를 처음 사서 개봉하나 보다. 젤리를 많이 사 왔나 보다. 오, 간식은 생각지도 못했다. 남편이 싸준 간식은 기내 수화물에 들려 위탁으로 들어갔고, 이미 캐리어 벨트를 채워서 딱히 열 일도 없었다. 역시 집단지성이 더 좋긴 좋군.. 하며 비행기로 들어갔다.


에어 아스타나 비행기는 매우 미니멀하고 깔끔했다. 창가로 예약했는데, 옆자리에 사람이 없어서 더 편히 갈 수 있었다. 최근에 탄 제주 국내선보다는 넓고, 덜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때 뜨자마자 자서 잘 모르겠다. 이상하게 제주 갈 때 비행기 타서 낮잠 자면 그렇게 꿀잠을 자더라고. 화이트톤에 기내 수화물을 넣는 자리도 충분했다. 조명은 푸른빛으로 빛났고, 한국 영화 '카시오페아'도 하나 있었다. 처음 듣는 영화였고, usb 충전공간이 있어서 폰으로 넷플에서 다운로드하여온 '인생은 아름다워'를 봤다. 재밌었다.


6시간이 넘는 비행은 확실히 길긴 길었다. 정말 디즈니에서 튀어나오듯이 예쁜 승무원들이 있었다. 나중엔 엉덩이가 아파서 섰다 말았다 했다. 기내식도 치킨으로 선택했는데 꽤 맛있었다. 양은 적었지만 다 먹고 나니 나름 배도 불렀다. 난 밥을 좋아하는데, 빵이 주식인 곳에서 잘 버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출발하는 비행기에서 할 생각은 아니었다.


오면서 중국을 가로질러왔다. 세상은 진짜 너무나도 넓고, 내가 못 가본 곳은 너무 많았다. 위에서 내려다본 설산들과 산맥들이 아름다워서 한참을 구경했다. 봐도 봐도 재밌었다. 아름다웠다. 드디어 카자흐스탄이 가까워졌다. 호수고 강이고 꽁꽁 얼고 주택들 위에 눈이 소복이 쌓였다. 이 나라를 잘 몰랐는데 너무 아름답고 예뻤다. 비행기가 내려가며 위에서 보던 설산을 옆에서 봤다. 너무 거대하고 멋있었다.


알마티 공항에 모여서 트랜스퍼 앞에서 기다렸다. 한국인은 4팀 정도 되는 거 같았다. 아까 그 옆자리에서 본 분들도 있었고, 선교하러 간다는 여사님들도 있었다. 즈~ 발음이 많이 들어가는 어를 쓰고 영어를 잘 쓰지 않아서 여사님들에게 물어 트랜스퍼 버스를 타러 갔다. 알마티공항에 와이파이 키오스크가 있다는 서치를 미리 하고 갔는데, 키오스크는 없었다. 고양이 눈으로 화장을 한 승무원들이 많았고 다들 친절하진 않았지만 답은 잘해줬다. 연결은 안 해도 되는데 남편이 걱정할까 봐 연락을 해주고 싶었는데 마침 외교관에서 문자가 왔다. 문자는 유료 165원이라고 해서 그냥 문자를 보내니 답이 왔다. 간단했다. 수신은 무료다.


알마티 공항 2층에도 다양한 카페가 있었고, 오렌지를 직접 짜주는 착즙 기계도 있었다. 목이 말라서 뭘 마시고 싶었는데 라테가 6000원 정도 했다. 생각보다 세기도 했고, 금방 비행기라 화차를 보며 참았다. 갈 때는 어차피 환전하니까 오렌지 착즙 기계는 먹어봐야지. 공항에서 옆자리에 있었던 또래들과 얘기를 해보니 대학 선후배고 한 명은 직장인인데 같이 터키를 간다고 했다. 꽤 멋쟁이에 둘 다 옷도 잘 입었는데, 인연은 여기까지였다보다. 잘 모르는 곳에서 보니까 또 부러웠다. 즐거운 여행 보내시라고 하고 대화는 끝났다.


또 에어아스타나 비행기를 탔다. 이번에는 세 시간쯤이고 졸려서 금방 시간이 갔다. 기내식을 안 줄 줄 알았는데 줘서 맛있게 먹었다. 연어는 비려서 말았다. 애초에 관광지로 유명하지 않아서 많은 정보가 있지도 않았지만, 생각보다 다른 점이 많았다. 기내식도 다르고 살짝살짝 구성들이 달랐다. 서치 한 사실과 다른 점 이 꽤 있었다. 뭐 그게 여행의 묘미지 하고 말았지만, 극 j들은 기절할 것 같다.


도착한 바쿠 공항은 꽤나 좋았다. 시내환율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는 리뷰가 있어서 100달러를 일단 환전해서 175마 낫을 받았다. 내부 와이파이도 잘 터져서 연락을 하고 나와서 공항버스카드까지는 10마 낫에 잘 만들었다. 1마 낫에 700원 정도 한다. 24시간 공항버스가 있다고 했는데, 내가 더 자세히 찾아보지 않은 탓과 저녁이라 피곤해서 택시가 훨씬 비싼지 알지만 호객에 걸려들었고, 흥정 후에 10마 낫까지 깎아서 타고 왔다. 하지만 주차비로 10마 낫을 더 주라고 했다.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1시라 피곤해서 더 주고 호스텔로 안전하게 왔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공항버스는 심야에 1시간에 1대 정도 있다고 했다. 공항버스는 1000원 정도이다. 기다리느니 14000원을 내는 게 낫다. 먹는 건 잘 참는데 시간은 잘 못 참는 성격이 드러난다.


사힐호 스텔은 굉장히 심플한 호스텔 그 자체였다. 값은 매우 저렴하다. 하루에 14000원꼴이다. 일단 이틀 잡아뒀는데, 괜찮으면 조금 추가할까 싶다. 욕조에 손비누만 있어서 당황스러웠지만 휴지는 있었다. 수건은 당연히 없었다. 샘플들을 챙겨 오길 잘했지, 하고 샤워를 했다.


혼성 4인 도미토리를 잡았는데 호스텔 자체에 남자들이 훨씬 많은 느낌이다. 덕분에 편하게 바로 씻었다. 우리 룸은 총 3명 정도가 썼는데 내 밑에 북유럽 남자가 하루종일 뒤척였다. 다행히 냄새도 따로 나지 않고, 다들 엄청 조용하게 잤다. 오히려 내가 피곤해 코를 골았을지 모른다. 미안해서 비슷하게 일어난 아래층에게 혹시 나 때문에 못 잤냐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두통이 있어서라고 했다. 그 두통이 나 때문에 온 건 아니겠지.. ㅋㅋㅋ


여기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홀에서 노트북으로 검색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그 북유럽 남자도 비슷하게 일어나 지금까지 홀에서 맥주와 코코아를 마시며 폰을 보고 있다. 아, 목마른데 호스텔에 물이 다 팔려서 없다고 한다. 슈퍼마켓은 좀 걸어야 하는데, 이 층침대에서 짐을 꺼내 갈아입는 게 꽤 불편하다. 나는 또 참는다. 아니 코코아를 타면서 대화했는데 어쩜 한 잔 할 거냐라는 말도 없나.. 한국인의 정이 없다. 여성전용 4인 도미토리가 좋은데, 따로 없는 건지 다 예약이 된 건지 모르겠다. 여성전용 6인은 본 거 같은데, 그럼 분명 불편하다.


숙소가 카스피해 앞이라 아침엔 걸으려고 했는데, 이거 저거 검색하다 보니 시간이 가버렸다. 오늘의 카운터 직원은 여자고 아침이 되니 여자들이 꽤 보인다. 이상하게 나가는 사람은 없고 들어오는 사람만 있다. 나는 이제 슬슬 씻고 나가서 시내를 돌고, 유심을 사고, 구경을 하고 올 때는 슈퍼마켓도 들려 간식거리를 사 올 요량이다. 클렌징 오일이랑 마스크팩도 좀 더 사 와야 하고, 작은 가방도 있으면.. 밖은 꽤 쌀쌀하고 흐리다. 다행히 비소식은 없다. 배고프기 전에 맛있는 밥도 먹어봐야지. 우산을 챙겨 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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