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희소성
예전에는 실력만 있으면 모든게 알아서 잘 될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잘하면 누군가 분명 날 알아봐줄거라고, 난 실력만 쌓으면 마케팅이고 판매고 알아서 다 되는지 알았다. 어쩌면 채널이나 정보가 한정적인 예전에는 진짜 그런 세상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본적인 실력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 하지만 관찰해보면 기회는 기회를 받아들일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 훨씬 쉽게 간다. 기회를 받아들일 개방성이 있느냐와 수행할 수 있는 실력이 있느냐는 완전히 개별적인 문제이다. 물론 둘다 좋은게 제일 좋다.
나는 친구들을 잘 초대하는 편이다. 낯선 사람들의 조합이 재밌다. 그런데 보면 꼭 거절하는 친구들은 거절하고, 온다는 친구들은 온다. 모두 성향이 다르고 일정이 다르니까 물론 선택은 존중한다. 여러번 거절하는 친구도 캐릭터성이 독특하거나 재밌으면 난 자주 초대하는 편이다. 근데, 거절만 반복되면 어느 순간 그 매력적인 캐릭터도 빛을 잃는다. 사람간의 관계에서 얼마나 눈치와 오감이 중요하고 민감한데. 당연히 사람이라면 아, 싫어하니까 안해야지 싶다. 그리고 이런 작은 초대도 부담스러운데.. 그친구의 삶이 다채로울 수 있나. 장기적으로 봤을때 내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일까? 싶은 의심도 생긴다.
최근에 한번 더 내적 손절을 했다. 캐릭터성이 너무 독특하고, 흥미롭고, 만나면 재밌는 사람인데 기본이 안되어있다는 느낌이 반복되다 그냥 나 혼자 빡이 쳤다. 아니 몇살인데 왜이렇게 기본이 없어. 하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다. 왜냐면 그녀는 꽤 개방적이기 때문이다. 초대에 잘 응하고, 어떤건 적극적이기도 하다. 물론 참다가 빡쳐서 단념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좋은 기회도 분명 많이 갈거다. 왜냐면 새로운 사람이 항상 곁을 채울테니까.
다만 어떤 친구들은 너무 실력이 너무 좋고, 잘 하는데 개방성이 없어서, 혹은 캐릭터는 너무 재밌는데 기회의 접근성 측면에서 아쉬운 경우가 있다. 좋은 기회가 와도 거부하는 경우도 많고, 나도 뭐 섭외건이나 관련 프로젝트에 있어서 애써서 연락했는데 안한다하면 다시는 연락을 주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아주 그 사람이 뛰어나게 잘하거나 희소성이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래서 프리랜서들이 거절이 힘든거다. 다음 제안을 고려해야 하니까. 물론 그쪽도 아쉽지 않으니까 거절한건 맞겠지만. 그리고 이것저것 하느니, 한가지에 집중해서 뾰족히 잘하는게 중요한 단계일수도 있다.
사실 사회성도 대면해서 살이 맞닿아야 는다. 육아나 장기 공부로 오래 고립되어있는 친구들을 만나면 또래간에 적절한 반응이나 사회상호작용을 못하는게 눈에 보일때가 많다. 내가 소도시에서 한 1년만 거의 혼자 지낼때도 오랜만에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데 단어들이 생각이 안나서 혼난적이 있다. 물론 환경이 다 다르니 그냥 이해하고 배려하고 넘어가지만은, 그렇게 시간의 누적은 무섭고 영향이 큰 일이다. 그리고 내가 뭐 인생을 얼마나 알아서 이런말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내가 관찰하기로 기회들은 거의 사람에게서 온다.
일잘하고 사회성부족한 사람보다, 일은 좀 허술해도 싹싹한 직원들을 선호하는 팀장들이 갈수록 이해가 된다. 사회성이 전부는 아니지만, 사람과 교류하는 능력은 다른 능력과는 아주 개별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반대인 경우도 있다. 사회성이나 개방성은 너무 잘 맞는데, 다른 면이 잘 안맞는거야. 그러면 나는 다른게 잘 맞고 이게 안맞는것보다는 관계가 오래가는 편이다. 어짜피 남이 싹 다 나랑 맞을 수는 없다. 굉장히 개방적이고 확장성을 중시하는 나와 다르게,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생각이 많고 예민하다. 그래서 날 편안하게 한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그들을 자주 관찰하게 되었다.
일단 내 남편만 봐도, 사람관리를 아예 안한다. 청첩장 보내고 욕먹기도 했다. 친구들이 10번 만나자고 하면 2번쯤 만나주는 사람이랄까. 애초에 별로 타인이 필요하지 않은 타입이다. 그런 그가 사업을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난 최대한 사업하는 사람을 많이 만나보라고 했다. 실제로 초대도 하고 이전보다 교류도 조금 더 하는 편이다. 본인 돈 있고 정보많으면 알아서 혼자 시작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잖아. 근데 혼자 다 벌어서 혼자다 정보 알아서 시작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그러니 자기가 급하면 결국 뭐라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때를 준비해서 기존에 사업하는 사람과 관계를 가져놨다면? 이미 좋은 기회가 10번은 와도 왔다고 본다.
사람 한 명이 오만거를 다 알아서 하기에는 너무 비효율적이다. 뭘 하려면 적어도 몇 의 도움이나 시야가 있어야 훨씬 효율적이고 빠르다. 난 뭔가 하고 싶으면 가장 먼저 주변에 알린다. 되든 말든, 뭔가 떠오르면 주변인들이 알아서 물어다 준다. 물론 나도 뭘 보다 관심있어하는 주변인들이 있으면 잘 물어다 준다. 또 어떤 기회는 아주 급하게 온다. 그래서 그때 확 낚아채려면, 미리 본인도 심적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기존에 나누던 담론들이 조금은 있어야 한다. 어떤 실력은 저질러버려서 어쩔수 없이 해결하면서 늘기도 한다.
어떤 기회는 내가 생각한 적도 없었는데, 대화하면서 시야가 트이면서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니까 주변 사람의 환경이 중요하다. 맨날 만나는 사람만 만나서는 딱 그정도 풀을 갖출 수 밖에 없다. 아니 부지런하고 싶으면 부지런한애랑 친해져서 아 저렇게 하는구나, 자극받고 해야지. 맨날 게으른애들끼리 모여서 아.. 부지런해지고 싶다.. 어쩌지.. 이런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성취해본적 없는 사람이 방법을 어떻게 알아. 알면 이미 했지. 그래서 나보다 생각이 깊고, 시야가 트인 사람들, 그니까 나보다 나은 사람들을 주로 만나는게 되게 중요하다. 내가 아쉬우니 어째, 내가 밥사고 만나주라 매달려야지.
그 접점을 만들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그러니까 강연있으면 돈내고 시간내서 가는거고, 스터디같은거 하면서 이런저런 규칙을 만들어서 하는거다. 하나 열심히하는 사람들은 태반을 다 열심히 한다. 뭐 한가지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데, 요즘은 세네가지 일도 잘하는 사람들이 쫙 깔렸다. 집에 돈도 많고, 얼굴도 예쁜데, 공부도 잘하고 사회성도 좋아. 돈도 없는데 공부도 안하고 사회성도 엉망이야. 이런 저런 사람들이 진짜 널리고 널린 세상이다. 물론 집에 돈많고 예쁜거야 내가 노력해서 가질 수 없는거라고 해도, 그만큼 다양한 파이프라인에 투자할 순 있지.
그리고 한가지에 집중하다가 그게 원하는 목표까지 이뤄지지 않으면 생기는 자괴감도 상당하다. 아니 내가 열심해서 그걸 가졌으면 그럼 뭐 다행인데, 솔직히 아닌 경우도 많잖아. 그럼 사람의 삶의 기반이 너무 쉽게 무너진다. 또 한가지만 하는게 맞는 성향이면 몰라도 아닌데 파면.. 성향 무시한 노력은 지속에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든다. 본인을 잘 살피고 딱 맞는 방법을 찾아나가는게 제일 좋은데, 뭐 한국사회의 삶이 그 시간을 얼마나 기다려주나. 일단은 달리고 봐야지. 스스로 건사하면서 먹고 살라면 하면서 찾아야 한다.
자격증 시험볼때 기출문제 많이 돌리듯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내가 살고싶은 삶의 액기스를 뽑아 기출문제를 보는게 되게 중요하다. 그냥 기출문제를 보다보면 이론 하나 몰라도 아 이런식으로 문제가 대충 나오는구나 싶기도 하고, 몇 번 본 오답들은 눈에 익기도 하듯이 마찬가지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기출문제라고 보는거지. 여러번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아, 내겐 이런게 중요하구나 싶다. 나는 기출문제는 얇게 빨리 최대한 많은 수를 보는게 중요하다고 본다. 이론서는 집중해서 다독하고, 기출은 최대한 가볍게 넓게. 그 기출을 가볍게 넓게 볼 수 있게 하는게 개방성이다. 심화문제는 확장성인거고.
지금 나야 뭐 반생도 안살았으니까, 기출 보면서 감만 익혀도 충분하다. 기출보다 보면 모르겠기도 하고, 아 너무 어렵다! 느끼는 순간도 많지만 많이 볼수록 아 그래도 경향성은 알겠다 싶을때가 오지 않는가. 나도 삶에 방향에 있어 그런 흐름을 감지하는 시기가 오면 좋겠다. 그전에는 다양한 강의도 듣고, 사람도 만나면서 대화로 기출푸는거지 뭐. 내 또래만되도 확실히 개방적인 친구들이 재밌고 새롭고 즐겁다. 맨날 비슷한 삶을 사는 친구들이 꺼내는 말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개방성 자체가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한가지 더 말하고 싶은 건 희소성이다. 세상에 독서와 운동은 필수라는데 막상 꾸준히하는 사람은 별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은 더 없다. 나는 내가 글을 쓰면서 이게 이렇게 희소한 행위야? 하고 놀란적이 많다. 내가 즐겨보는 브런친에는 이렇게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는데.. 막상 주변에, 오픈되는 곳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거의 전멸이야. 그러니까 이왕이면 희소한걸 하는게 좋다. 그거 자체가 캐릭터성이 되기도 하고,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개방적이면서 희소해지기. 이게 내가 요즘 원하는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