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에 조우하기
시끌벅쩍한 설이 지나간다. 택이가 교대근무인지라 이번에는 대체 휴무일날만 양가가서 점심과 저녁을 먹고 오기로 했다. 나는 워낙 종갓집에서 태어나 시끌벅쩍한 명절을 내내 보낸 덕에, 조용한 명절이 익숙치도 않고 심심하다 느낀다. 그래서 설날 당일에만 할머니집에 다녀왔다. 아빠 형제가 다섯, 모두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으니 어른만 열 명, 아이가 열 한명이다. 그 아이들 중 내가 장녀, 동생이 장손이다.
우리는 종갓집이고 가족간의 사이가 아주 좋다. 일년에 한 번씩은 해외나 국내여행을 함께 다녀온다. 시골에서는 갓농사를 짓는데, 요즘은 기계가 많이 해서 빈도가 많이 줄었지만 이전에는 모내기때나 손이 많이 필요할때는 다 내려와서 돕곤 했다. 난 예나 지금이나 진한 유대를 쌓는 가장 빠른 길은 같이 고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시골일이 그렇다. 은근히 단순반복보다는 대화하면서 손발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아빠는 친척들간의 사이가 좋은 이유는, 엄청 잘 사는 놈도 없고 엄청 못사는 놈도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친가는 대부분 공무원 직종이라서, 쉬는날을 맞추기도 쉽고 노후도 안정적이다. 세관원, 도청, 학교 선생님, 학교 행정실 등 직종은 아주 다양한데 무엇보다도 대화주제가 거의 비슷하다. 물론 프리랜서도 있고 공방 사장도 있고 대기업도 있고, 10명의 직업이 모두 다르다. 나는 하나를 더 붙이려 한다. 농사를 짓는 할머니의 경제력이 가장 짱짱하기 때문이다. 또 처절히 가난했을때가 있었기 때문에, 꺼낼 추억이 많아서 그렇다.
어쨌든 아빠형제의 사이가 아주 좋고, 대부분 가족 사이도 좋기 때문에 우린 어릴때부터 많은 혜택을 누려왔다. 종갓집의 특징은 서열이 아주 뚜렸하다는거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내 말이 가장 세다. 이 서열을 누군가 뒤집으려 하는 순간, 온 집안은 난리가 난다. 물론 이 서열을 마음대로 휘두르는건 절대 아니다. 최대한 합리적으로, 공평하게 쓰는게 중요하고, 그게 일인자가 할 일이다. 각자의 가정에서 존중받던 아이들도 이 시골집에 오면 본인의 위치를 칼같이 안다.
내가 관찰한 종갓집은 그저 밖에서 생각하는 개념과는 아예 다르다. 물론 우리 집안이 대대로 여성들이 기가 훨씬 쎄고,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 할머니 치하에서 움직여서 그럴 수 있다. 그냥 남자가 우선이고, 여성들만 일한다면 이 체제는 절대로 길게 유지될 수 없다. 현대사회에서 명절은 그냥 본인이 원하면 오고, 안원하면 안오면 그만이니까. 우리는 여성들은 집안일을 하고, 남성들은 나가서 밭일을 했다. 그래도 갈수록 둘다 단순해지고 있고 지금은 다들 중년이 되어가기에 남자들도 설거지를 하고, 여자들도 들어가 쉬고.. 많이 섞여서 논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런 대가족의 치하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것이다. 10명이 넘는 혈육들이 서로 태어남부터 성장과정을 보고, 끈적이고, 해마다 여행을 가며 어쩔수 없이 어울려야 한다. 할말 다 하던 집에서와 달리, 쉬운 친오빠 언니들과 달리 어느정도 사촌 언니오빠들을 무서워하기도 해야하고 설거지나 밥을 나르는거나, 어느정도 규율에 따라야 한다. 폰을 보다가도 성묘가자면 옷을 챙겨 나와야 하고, 또 동네의 신축 까페를 같이 우루루가서 근황을 공유하기도 한다.
요즘같은 시대에 이런 경험은 아주 귀하다. 태어남부터 종속된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아이들은 눈치껏 배우게 된다. 열 한명외에 다른 친척아이들도 오면 얼추 열 다섯 여섯이 된다. 그 열 다섯 여섯중에 여기서 너무 개인적으로 행동하거나 본인 중심으로 행동해서 튀고 싶은 아이는 단 한명도 없다. 그러면 스물, 서른명의 어른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이것 저것 물어보기 때문이다.
또 중요한 포인트는 다양한 세대가 섞여서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32살인 나부터 고등학생인 막내동생까지, 그리고 외부 친척아이들은 초등학생들이고 다음명절에는 내가 낳은 신생아가 온다. 어른들은 나와 17살 차이나는 막내고모부터, 우리 아빠까지. 또 할머니부터 작은 할아버지까지. 또 그들의 딸과 아들, 또 그들의 딸과 아들까지가 범벅되어 있다. 그냥 눈마주치면 일상을 묻고, 이슈와 생각을 공유해야 하는거다. 다양한 세대를 넘나드는 이런 경험을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할까. 우리는 다른 세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된다.
최근 '오만하게 제압하라'는 책을 읽었다. 거기서 남성언어와 여성언어는 확실히 다르다고 했다. 그래서 수많은 여성들이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음에도 펼치지 못한다고 한다. 같은 말이라도 여성들은 공격이라 느끼고, 남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 때문에. 여자들을 어릴때부터 함께 놀고 배려하는걸 익히고, 남자들은 본인의 영역을 확대하고 경쟁하는 것을 놀이로 익힌다. 그래서 여성들에게는 남성언어를 알려줄 아버지의 육아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어릴때 육아에 진심인 아버지가 몇이나 있었겠는가. 사회에서 만난 여성들이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훨씬 불리하고, 남성언어를 익혀야 한다는 책이였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문제들이 생긴다는게 흥미로웠다.
사회에서 너무나 고생하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돌파구를 찾다가 딱 맞다며 추천해준 책이였다. 나는 여성치고는 당돌하게 할 말도 하고, 사람들도 잘 이끄는 편이다. 그리고 이 사회성은 대가족에서 나보다 어린 10명을 태어나면서부터 이끈 경험에서 나온다고 본다. 11명이 함께 하면 한 명 한 명의 편의를 다 봐줄 수 없다. 늘 일부는 버리고, 일부는 챙겨가야 한다. 그리고 그 합리성은 모두가 동의해야 한다. 그냥 파워로 밀고 나가서는 절대로, 절대로 유지될 수 없다는걸 고작 3-4살 어린애도 안다. 본인의 신뢰도는 본인이 만드는 것이다.
그냥 존재로 얽혀서 사랑하기때문에 사람을 있는대로 다 받아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삼십명이 복잡거리는 명절의 며칠이라도, 다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왔으면 어느정도 대화도 해야하고, 어른에게 예의도 차려야 하고, 음식을 돕고 치우는 것도 도와야 한다. 든든한 가족이 있다는 것은 사회에서 필요한 항목들을 배울 수 있는 아주 단단한 디딤돌이라고 본다. 물론 모두가 서로를 사랑하고, 마음속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도 아주 중요하지만, 난 그런 것보다도 독립적인 성인이 되면서 필요한 자질들을 배우는게 아주 든든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잘못 가고 있을때 누군가 제지해주고, 혼란스러울때 물어볼 곳이 있는 것. 남성언어나 여성언어, 그리고 사회성을 배울 수 있는 것. 각자로 존재하지만 단체생활의 에티켓도 아는 것. 꾸준히 관계를 맺는법에도 당연히 노력이 필요하다. 늘 마음대로 하는 사람을 영원히 사랑해줄 수 있는 타인은 없다. 어디까지가 개성이고 어디까지가 예의인지 아는 것. 타인들의 행동을 보고 더 나은점을 배울 수 있는 것. 수많은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아주 오랜기간 살을 비비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이다. 수많은 언니 오빠야들의 진로와 행동을 배우며 삶의 가능성을 넓혀가는 것 또한 포함이다.
다음 명절에는 내가 낳은 아이, 하트가 100일이 넘어 함께 한다. 덕분에 모두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아이들은 이모, 삼촌이 되어서 모두 정신없다. 이렇게 배울게 많은 대가족의 첫번째 아가가 되는 하트는 내가 그랫듯이 걸음마다, 표정마다 모두의 찬탄을 받을 테다. 그게 얼마나 하트에게 운좋은 일인지, 모든 사랑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자란 나는 잘 안다. 난 성장과정에서 사랑을 너무 넘치게 받아서, 오히려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니까. 이 대가족 속에서 그녀가 나처럼 아주 쑥쑥 자라길 기대하고, 벌써 추석을 기다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