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관계도 트랜디해
어릴때부터 캐릭터가 강한 편이였다. 요즘 해외 교육사례를 책으로 많이 읽고 있는데, 종갓집 장녀치고 굉장히 개방적인 교육을 받았다. 아빠가 외국에 좀 계시다 와서 그랬을까,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 엄마 별명은 미국 핫걸이다. 늘 협의가 중요하고 토론기반으로 대화했고, 어린애보다는 성인처럼 많이 대해줬다. 그니까 어딜 나가서도 할말은 다 해야하고, 창의적인 문제해결을 하는 것도 좋아하고, 취향도 취미도 많은 아이였다. 어릴때부터 책 읽는것도 좋아해서 주관도 좀 있었고, 선생님 앞에서도 의견 다 따박따박 말하는 어린애였으니까. 개기려고 한게 아니라 그냥 내 생각이 그러니까 표현한 것 뿐이였다.
한국 사회에서 평범하게 살기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교 등의 집단생활을 거쳐가며 캐릭터는 묻힐듯 묻힐듯 더 강해졌다. 사교활동이 안될 때는 몸을 낮추기도 했지만 결국은 나라는 자아가 더 단단해지는 시간들이였다. 지금 세상에 태어나면 조금 더 살기 유리했을텐데. 쟤는 엔팁이니까 그런거야. 라는 이해도 좀 받았을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93년생이다. 아우, 더 일찍 태어나지 않은게 어디야 진짜.
이제는 SNS가 범람하는 시대가 되었다. 나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하루에도 십 몇번씩 떠오르는대로 생각을 적는다. 유행이 유행하는 시기니까, 다들 개성을 찾으면서도 결국 어느정도 비슷해져서인지, 혹은 내가 지방에서 보통 하지 않는 선택들을 많이 해서인지, 문화쪽 일을 하면서 내 성향이 이해받기 시작한건지, 세상이 변한건지 어쩐건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캐릭터가 호불호에서 많이 호쪽으로 기운것 같다. 차가운 외모나 태도와 달리 인터넷 세상에서는 더 따뜻해 보였을 수도 있고.
그래서 친해지고 싶다, 다가오는 사람도 꽤 많다. 내 인스타그램은 최근에 공개로 돌려서 보통 비공개였기에 본래는 내가 오프라인에서 아는 사람만 들어올 수 있었다. 난 서로 잘 모르는데 오는 DM에는 대답도 하지 않는다. 몇 년을 하루에 몇개씩 올리다 보니까 몇 가지 패턴이 관찰된다. 요즘은 대부분 또래들이 참 트랜디해서, 오히려 굉장히 비슷하다. 자기 색을 올리고, 생각을 올리는 사람들이 아주 소수다. 물론 각자 가지고 있게지만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 그래서 생각을 올리는 사람들의 피드가 아주 재밌다.
유행은 참 빠르고 트랜디하다. 그래서 관계의 속도도 그렇다. 난 유행과 별 상관없는 사람인지라, 또 워낙 취향이 클래식한 사람인지라 관계도 그렇다. 프랑스의 친구개념에는 아미와 코펭이 있다는데, 나도 비슷하다. 지인이 아니라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으면, 자주 보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몇 년은 보고 싶다. 애초에 그럴 자세가 없다면 아주 가까이 다가가는걸 기피하는 편이다. 왜냐면 상대에게도 어느정도 관계의 농도를 어림짐작하고 맞춰 행동할 수 있게 배려해야 하기 때분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안 그런다. 자기가 흥미있으면 있는대로 빠르게 다가왔다가, 또 전체적인 사람을 읽고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처음에는 아주 귀하게 취급하고 헉헉대며 다가왔다가 나중에는 궁금해하지도 않고 기본 배려도 지키지 않는다. 물론 사람의 마음은 자기 맘이지만, 나는 이게 좋은 관계맺기는 아니라고 본다. 나는 후숙하는 관계의 맛을 더 즐기는 편이다.
물론 이런 사람들이 나라서 이렇게 행동하는건 아닐꺼다. 원래 본인의 사교활동의 방법일 수도 있고, 그냥 사회성이 떨어질수도 있고, 그래서 외로우니까 더 이런 행동을 반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단기간에 너무 훅 다가오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 몇 번 안봤는데 타인들 앞에서 진한 가정사나 슬픈 얘기를 꺼내는것도 마찬가지다. 깊은 이야기는 맞는 속도와 관계의 농도에서 하는게 맞다.
여튼 나는 이제 마음을 열었는데, 상대는 이미 마음이 다 떠나버린 상황을 몇 번 맞이하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누가 나를 좋아하든 말든, 친해지고 싶어하든 말든 오히려 별 신경을 안쓰게 된 것이다. 그냥 내 맘이 가는대로 다가가는게 훨씬 낫다. 내눈에 흥미로운 사람, 내 눈에 관심있는 사람을 오래 지켜보거나, 혹은 살짝만 보더라도 커피 한 잔해요. 해서 대화를 하고 서로 대화가 재미있으면 관계를 발전시키는 거다.
난 요란한것보다 은은한게 훨씬 어울리는 사람이니까, 관계도 그렇게 맺게 되나 보다. 지금 곁에 친한 친구들을 보면 그래도 몇 년은 이어진 사람들이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장단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결이 비슷하거나 혹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람들이 많다. 상대가 먼저 나를 좋아해서 오래 이어지는 관계.. 물론 있지만 다수는 아니다.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사람의 마음은 생각보다 금방 식는다. 그래서 난 감정이 아닌 시간을 믿는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가고 쉽게 와. 난 트랜디한 것보다 클래식한게 더 좋은데. 원래 뭐든 이랬다 저랬다 하는걸 제일 싫어하고, 성격도 확실해서 관계도 그렇게 되나 보다. 원래 엔팁 맘에 드는 법은 엔팁이 맘에 들어하는 것밖에 없다고 한다.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들과 오래 오래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