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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맨날 나보고 기가 세대?

기쎄지고 싶으면, 말부터 또이또이 하세요.

by 박약

남초 현장직에 근무하는 유일한 여직원인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기쎄지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더니, 목소리도 바꾸고 성격도 많이 바꿨다. 들어보니 기에 대한 연구가 박사급이다. 그래서 우린 기박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같이 기 세지는 방법을 고민하고 영상 콘텐츠로 만들어보자고 하니 죽어도 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 재밌는 아이템을 놓치다니, 그러면 뭐 내 브런치에 매거진을 만드는 수밖에.


나는 스스로 아주 친절하고 배려감 있으며 따뜻한 인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디서나 사람들과 친해지고 나면 기쎄다는 얘기가 꼭 들린다. 신기하게도 글만 봐도 참 당차다고 하고, 통화만 해도 드세다고 하고, 얼굴만 봐도 눈빛이 살아있다고들 한다. 어쩌다 10분쯤 마주친 엄마의 친구는, 야무진 구석이 쏙 맘에 든다며 현재 남자 친구와 헤어지면 꼭 연락 주라고 했다.


"처음엔 냉하게 보였는데, 생각보다-"라는 말도 자주 듣고, "첫인상은 무서워 보였는데.."는 뭐 거의 교과서다.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영상에서 나도 이렇게 스스로가 차갑게 생겼나? 싶어 놀랄 때가 있다. 외모는 호랑이를 닮았다고 많이들 한다. 여전히 또래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무섭다'. 어려운 것도 아니고, 야무진 것도 아니고 무서운 건 도대체 어떤 감정인가 싶다. 내가 누굴 혼내는 것도 아닌데.


기 박사에게 이런 고충을 토로하니, 기쎔의 완성은 스스로가 기쎈지 모르는 거라고 한다. 아니, 다달이 기부도 하고 잘 웃고, 남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도 실컷 전해주는 내가 도대체 왜 기가 세다는 걸까. 도대체 기는 뭐길래,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실컷 오고 원하는 사람에게 그리도 가지 않는 걸까. 요즘 기 박사를 만나면 매일 기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 기 센 친구들을 추려보니 공통점이 있기도, 없기도 했다.


딴 사람들은 아 모르겠고, 일단 내가 기 쎄 보이는 요인에 대해서 천천히 정리해보려 한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닿아 팍팍한 세상살이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세상을 선하게 사는 것이 제일 강한 것이라 믿는 사람이다. 기가 센 것보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선행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사람이지만 뭐 원리원칙부터 따질 마음의 여유가 없고 갈급한 사람도 분명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굉장히 차분하고 클래식한 편이다. 기가 세다고 하면 흔히 연상되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꽤 멀다. 옷도 주로 무채색, 최대한 무난하게 입는 편이고 머리도 그저 까맣고 말투도 아주 차분하다. 눈빛이 살아있다는 말을 꽤나 듣는 편인데 이건 내가 스스로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라 모르겠고 아이컨텍은 잘하는 편이다. 낯을 가리지 않아 처음 보는 누구에게나 말도 잘 걸고, 친화력도 좋다.


기 박사는 딕션이 좋은 것을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파도 같은 억양으로 귀에 딱딱 꽃힐 정도로 딕션이 좋은 편이다. 목소리가 크진 않지만, 힘을 많이 쓰는 편이고 문장의 첫 단어와 마지막 단어를 힘줘서 말하는 편이다. 장나라를 짱나라처럼 말하는 습관은 전라도 사투리 때문이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마지막 동사까지 힘줘서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마지막 단어가 깔끔하게 들린다면 조금 더 완성도 있는 느낌이 든다.


살면서 웅얼거리거나, 주제를 돌려 말했던 적은 잘 없던 것 같다. 모르겠으면, 그쪽 부분 모르겠는데 확인 후 다시 연락 준다고 하면 된다. 웅얼웅얼 댈 일은 그냥 없다. 상대가 애매모호하거나 웅얼대며 말하면 명확히 말해주라는 요청도 자주 한다. 이 부분은 말 자체보다는 애초에 생각이 확실해서 그렇다. 고민하는데 쓰는 시간이 아까워서 뭐든 별로 고민하지 않는 편이다. 성인이 굳이 애처럼 말할 일은 더군다나 없다.


그러니 기가 세지고 싶다면, 말부터 또이또이 해보는 게 어떨까. 포인트는 문장의 마무리까지 힘줘서 잘 끝내야 한다. 입을 정확히 벌려 발음을 명확하게, 어휘는 최대한 어른스럽고 다양하게.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는 명확히 하는 것이 좋고 뭔가 유아틱 한 단어들은 쓰지 않는 게 좋다. 지역문화센터 같은 곳에는 다양한 스피치 강의들이 있으니 참고해봐도 좋다.


우리의 길고 긴 이야기 속에, 좋은 방법들을 아주 많이 찾았으나 오늘은 글이 너무 길어질까 싶어 여기서 마무리하려 한다. 팁을 하나만 더 주자면 침묵도 표현이다. 말의 한 도구로 유용하게 사용해보면 좋겠다. 기쎄다고 꼭 공격적일 필요는 없다. 물론 건강한 공격성도 때에 따라 필요하지만, 먼저 조금 더 명확해지는 연습을 하자. 아, 만약 이 글이 나중에 출판이 된다면 기 박사에게 인세를 따로 떼서 줘야 하나 고민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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