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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Apr 12. 2024

한가한 오후에는

소소한 일상의 기록

일정이 너무 없는 것보다, 어느정도 느슨하게 차있는걸 좋아하는 편이다. 오전 미싱 레슨이 끝나고, 오후 임산부 이유식 수업까지는 2시간 정도의 시간이 빈다. 좋아하는 까페에 들려,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책을 읽다 오랜만에 브런치를 켰다. 뱃 속에서는 하트가 방방뛰고, 오랜만에 햇살은 따뜻하니 기분좋은  한가한 오후다. 그리고 이렇게 한가한 오후가 별로 남지 않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모든게 다 그렇겠지만, 글이라는 것도 어떻게 이렇게 떠나기 쉬운지, 쉬던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일주일이 되고 금세 한달께가 된 것 같다. 모든건 역시 관성이다.


근황토크를 하자면, 이제 내일이든, 모레든 출산을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가능하다면 이번 주말이나, 36주 내에 출산을 하고 싶다. 요즘은 밤에 뒤척이느라 잘 자지 못하고, 사람을 많이 만나고 운동을 실컷 하고 있다. 컨디션은 여전히 좋고, 배는 아직 내려오지 않고 있지만 음식을 먹는 것도 훨씬 수월해졌다. 하던 영어공부는 꾸준히 하지 못했고, 적어도 3년간의 가정보육을 욕심내면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틈틈히 해보려 한다. 일을 하지 않는다는게 영 아쉽고, 시간이 아깝다. 육아를 하는 3년간 다른건 몰라도 운동과 영어공부는 열심히하자고 욕심내고 있다. 또 아이관련해서는.. 브이로그를 꼼꼼히 찍어두고 블로그에 기록하자고 다짐하고 있다. 물론 쉬는 기간에도 알알이, 매일 다른 일상들이 밀도높게 찰랑거리겠지만.


요즘은 독서도 많이 하지 않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도 조금 무심했다. 아, 블로그를 열심히 올리고 있다. 1일 1포스팅이 생각보다 번거롭지 않고, 효과는 꽤 좋다는걸 발견했다. 이쪽도 그쪽도 추억을 남기는 용이다. 또 옷을 열심히 만들고 있다. 이젠 테일러드 자켓도 혼자 쑥쑥 만들다니, 실력이 많이 늘었다. 뭐든 한 3년배우면 그래도 써먹을만 하다. 기회가 된다면 외국어 공부를 좀 이렇게 하고 싶은데. 외국의 두 세 나라에도 살아보고 싶고, 아기키우면서 일도 간간히 하고 싶고. 욕심이 많다. 살다보면 기회가 다, 차근차근 알아서 오지 않을까 싶다.


남편과의 관계는 좋다. 택이는 더 다정해지고, 올해 내 사업을 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최근에는 헬스장도 처음으로 다녀왔다. 8년만에 처음 다녀온거다. 그의 조그만 변화들이 기쁘고, 함께 설렌다. 곧, 셋이 되겠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걸을 날들이 기대된다. 힘들고 기쁘고 지치고 행복하겠지. 요즘 눈물의 여왕을 보면서 사랑이 뭘까, 결혼생활이 뭘까 자주 생각한다. 둘이 같은것 같지는 않고, 사랑은 더 빈번하고 잦은 개념인것 같다. 결혼생활은 각자를 잃지 않으면서 함께하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근데 눈물의 여왕은 양가 집안차가 너무 나니까, 아예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은 것 같다. 만약 내가 미혼인데, 이렇게 대단한 집안이 결혼을 하자고 한다면 나는 못할것 같다. 연애면 모를까..무엇보다  자유가 너무 없고, 주체적으로 꾸려나간게 아닌 세상의 증폭적인 확장은 너무 부담스러우니까.


요즘은 그냥 헐렁하게 쉬고 있다. 뭘 계획할 단계도 아니고, 해야하는 상황도 아니니까. 이 느슨함과 봄이 되어 내리쬐는 따뜻한 햇살들을 즐기고 있다. 살면서 이렇게 느슨할 수 있는 나날이 몇이나 될까. 가능하다면 내 삶엔 조금 더 자주 느슨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다른 사람에 비해 꽤 느슨한 순간들이 많았다. 물론 빡세고 바쁜 순간들도 너무 많았지만. 앞으로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가능하다면 아이와 함께 해외살이와 사업까지도 욕심내고 싶다. 곧 출산이고, 다들 엄청 바빠질 거라 말한다. 정신없이 바쁜지가 꽤 오래되서, 이제는 그 느낌도 반가울 것만 같다.


어릴때부터 왠지 아이를 28살에 낳고 싶었는데, 4년을 지각한 32살에 낳는다. 아이를 낳은 아줌마의 삶은 상상한적도 없었지만, 지금 나는 별로 이전과 다를게 없다. 어릴때 상상한 30대는 완전히 잘나가는 나였는데, 아직도 그런 미래를 꿈꾸고 있다. 언제나 손에 쥔 것은 작게 보이고 미래는 더 찬란하게 기대된다. 다만 내 삶의 속도에서 충실하게 한 걸음 걸음 걷고 있다. 다들 속도와 밀도가 다른거지 뭐.. 어릴땐 내가 세상에서 한 가닥하는 특별한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세상에 살고 있다. 겉나이는 들고 경험은 많아져도 알맹이는 어릴때 나 그대로인것 같다. 하루는 길고 일주일은 짧고, 한달과 일년은 더더욱 짧은 세상에 산다. 그냥 그렇게 가는지도 모르고 슉, 지나가버린다. 벌써 출산일이 다가온 것처럼. 삶에 아무것도 충실히 하지 않더라도 시간은 정말 충실히만 간다.


일년뒤 이맘때의 나는 어떨까.. 궁금해진다. 지금 예상으로는 얼추 비슷할 것 같은데. 훨씬 더 중요한 뭔가를 해내고 있는 나이기를 바란다. 그때도 이렇게 여유롭게 창 밖을 내다보고 있을까, 아니면 커피 한잔도 잊을만큼 바빠서 방방대고 있을까. 전이든 후든 행복할, 스스로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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