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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9시간전

충동성에 관하여

오늘도 충동에 졌다

나는 충동성이 꽤 높은 편이다. 일에 관해서는 계획해서 하기도 하지만 의무가 없는 일은 대부분 충동적으로 흘러간다. 충동적으로 한 일들은 아무래도 퀄리티가 많이 떨어진다. 대신 프로토타입처럼 시범적으로 덤벼봤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다행이 책임감은 있는 편이라서, 하기로 쉽게 뱉은 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하긴 한다. 이중 일부는 여러번을 거쳐 고퀄리티로 변하기도 한다. 나는 생각이 들면 일정만 확인하고 바로 움직이는 편이라서, 선택이 정말 빠르고 후회가 없다.


사람에게도 굉장히 충동적으로 구는 편이다. 썸이나 연인관계인 사람들에게는 더군다나. 해야할 말은 꼭 해야만 했고, 갑자기 떠오른 것들도 연락해서 말하는걸 즐기는 편이다. 갑자기 떠오른 친구들에게 연락하거나 전화를 하고, 갑자기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고 싶으면 바로 카톡 선물하기를 켠다. 그 누군가가 부담스러운지 아닌지는 내가 알바가 아니다. 그러고 또 너무나 쉽게 잊는다. 맞다, 사실 연애에서.. 아니 이별에서 이 충동적인 행동들은 거의 좋은 결과가 없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솔직하고 확실한 내가 매력적이라서 다가왔고, 같은 이유로 질려 멀어졌다. 엄마는 남자들이 얼굴보고 왔다가 성격보고 떠난다고 놀렸지만, 어쨌든 반 이상은 성격때문에 갔고, 그중 반 이상은 충동성으로 간게 맞긴 맞았다. 사실 남자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그랬고, 아마 지금도 그러고 있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수많은 선물을 받았다. 이미 아이를 낳은 친구들이 주는 꽤 무거운 선물들도 있어 부담스러웠다. 도대체 왜이러냐고 묻자 받은게 있어서 준다고 했는데, 난 그들에게 뭘 줬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충동적으로 줬을꺼다. 그냥 지나가던 플리마켓에 담요가 예뻐서, 마침 어린이날에 단체톡에서 마주쳤다는 이유로, 내가 하는 문화활동에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이 있고 키트가 남았다는 이유로. 이런 이유들은 수많아서 늘 스쳐지나간다.


어릴때부터 엄마는 나에게 뭔 말을 못하겠다고 했다. 말만 하면 당장 하자고 졸랐기 때문이다. 마시멜로우 시험을 내가 어릴때 했었더라면, 말이 끝나자마자 꺼내 먹지 않았을까. 난 기다리는것에 취약하고, 불확실한것에 더욱 취약하다. 그래서 장기간의 프로젝트에 굉장히 불리하다. 예를 들면 다이어트나 외국어공부같이 착실하고 성실해야만 하는 것들. 좋아하는 것들은 당연히 자연스럽게 오래 하게 되지만, 딱히 그러지 않는데 꾸준히 해야하는 것들은.. 부끄럽지만 성취해본적이 없다. 그 흔한 토익점수 한 번 없으니.


대신 충동성은 낭만을 가져온다. 난 우연을 믿고 기회를 믿는다. 지금 내가 하는 유일한 재테크는 착하게 사는 것일 정도로. 대부분의 나날들은 평범하고 하릴없이 흘러가지만, 가끔은 충동적으로 한 일이 더 재밌는 무언가를 가져올때도 있다. 자극없는 일상의 도파민을 만나면 그렇게 재미있을수가 없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뭔가 뉴프로젝트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 대신 아니다 싶으면 포기도 빠르다.


한번쯤은, 계획적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다. 특히 다이어트와 영어공부가 그렇다. 늘 시도하지만 다시 충동적으로 튕겨나가는 것들. 싫은것도 참고, 관성도 느껴볼 줄 알아야 하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아 내일 시도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걸 알면서도 나는 오늘 하고싶으면 잠도 참아가며 굳이굳이 한다. 사실 퀄리티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 마음이 훨씬 중요한거다. 당연히 늘 비효율적이고 시간도 돈도 낭비하는 편이다. 내 삶에 효율이라는게 존재하긴 할까?


그래서 어쩔수 없이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산다. 별로 좋아하지 않고, 심지어 책임도 없는 일이라면 언제고 충동적으로 튕겨져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시끄럽거나, 시각적으로 정신없거나, 사람이 많은 고자극을 싫어하는 걸까. 이미 마음이 시시각각 정신없으니까.. 나이가 들면 더 계획적으로 변할 줄 알았는데 충동성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강한 충동성을 품고 산다는게 꽤 쉽지 않다. 어릴때도 공부는 재밌었는데, 학교다니는게 너무 힘들었다. 똑같은 반 친구들과 매일을 보며 같은 시간표에 산다는게 초중고 내내 힘들었고, 대학생때도 힘들었고, 교생때도 힘들었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학원은 또 재밌어했다. 당연히 서비스직 알바도 힘들었다. 일하는건 좋아했지만, 회사를 다니는 것도 힘들었다.


이제는 충동성을 인정하고 맞는 라이프스타일을 찾아가고 있다. 오히려 관심없는 것들에는 늘 관심이 없기때문에 질리지않고, 충동도 생기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에 더 충동이 자주 생기는 편이다. 예를 들면 물건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에 쇼핑욕구가 없다. 충동적으로 물건들을 엄청 산적이 거의 없다. 그런 충동은 들지 않는다. 충동적으로 옷을 만들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거나, 책을 읽는건 아주 일상이다. 아니 전시회 준비를 제외하고는 충동적인 마음이 들지 않아서 시작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내가 하는 일들은 대부분 마음이 시킨다.


그래서 요즘은 예술가나 작가는 타고나는걸까.. 싶다. 남들은 이 마음의 소리가 없다고? 하고 놀라기도 한다. 내가 바쁘든, 피곤하든, 시간이 있든없든 마음의 소리는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냥 지 의사 밝히면 땡이다. 그리고 나는 충동성에 빨려들어가 잠을 덜자면서 결과가 엉망이라도 어찌저찌 해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했기 떄문에, 그 저퀄리티의 무언가를 삭제하지 못하고 사용한다. 이 말하면 상대가 기분나빠할거 같은데도 떠올랐기 떄문에 연락해서 하는 거다. 하지 않으면 할 때까지, 마음의 소리는 내 마음속에서 점점 더 커져가고 나는 잠을 잘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매일 마음에 진다.


나이가 들면서 그래도 점점 이 충동성과 친해지고 있다. 여전히 내 이런면에 놀라는 사람이 많지만, 친한 사람들은 어느정도 캐릭터를 인정해주기도 한다. 이제는 조금은 서로를 다루는 방법을 안다. 내게 충동성은 꽤 피곤하지만 ... 늘 가능성과 함께 있는 재밌는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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