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날 쓸날
노트북을 연다.
나는 한동안 동상처럼 앉아 있다. 점멸하는 커서만이 소리없이, 현재를 떠밀어 과거로 치환하고 미래를 당겨 그 자리를 매운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마감. 그래도 지켜져야 하기에 적어 내려간다.
일물일어를 지키고 주술관계에 유의, 단문 단문 장문 단문 장문, 리듬을 살려라, 음악을 연주 하듯. 그러다 마무리에 방점을 딱. 독자는 결론만 기억하는 법이니까.
노트북을 닫고 산책을 나선다.
누군가 물었던 것 같다. 왜 글을 쓰냐고. 그럴때면 나는, 멋진 일이잖아요, 성의없이 대답하곤 했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은 있는 법이다. 내게는 글쓰기가 그렇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의 연속이다.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한 고전을 읽었고, 신문 칼럼 속에서 메시지를 찾으려 했으며, 유명 작가의 수필집에 웃고 울었다. 대하소설을 읽으며 서사를 배웠고, 한때는 클래스까지 수강했다.
그렇게 누구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 날들이 지나갔다. 그리고 왜 글을 쓰는지, 어떤 심정으로 시작했는지, 조금 알 것 같다.
그저 혼자이고 싶었다. 아침이면 서로 반갑게 인사하는 직원들, 감사한 고객들, 친구와 가족, 사월의 햇살로부터, 붙어있지 않고 떨어지고 싶었다.
관심을 가져야 하고, 돌봐야 하고, 움직이게 만들어야 하는 모든 대상들, 그 잘난 관계 속에서 나를 갉아먹던 그 모든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혼자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바랄 것도 해줄 것도 부흥할 것도 받을 것도 없는. 어쩌면 그것은 자유다. 나는 행복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자유를 원했다. 그렇다고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글쓰기는 나에게 그런 것이다. 글자를 조립하고, 해체하고, 배열하고, 때로는 그림을 그리듯, 때로는 노래를 부르듯, 끝없이 이어진 백지 위를 내키는 대로 둥둥 떠다니며 헤엄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산책을 마치고 노트북을 다시 연다. 지어놓은 것 중 조금은 덜어내고, 조금은 더 쓴다. 저장을 누른다. 그리고 파일을 휴지통에 버린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누구도 읽지 않을 글을 쓴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지 모르겠다.
하나, 나는 더 움직여 보려한다. 더 곁에 두려 한다.
무한히 펼쳐진 고요한 우주의 한 점에서, 나도, 고요히, 거리낄 것 없이 허우적 대려 한다. 무중력을 만끽하며.
누가 알겠는가. 그러다 보면 ‘그럴싸한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물론 행운이 따른다면 말이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아직 살날이 남아 있고, 쓸 날도 그만큼 남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