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그 엄마들이랑 친하게 지내지 말아요

by Balbi

01 그 엄마들이랑 친하게 지내지 말아요


유난히 길었던 여름이 밀려나고 10월. 달력은 가을을 가리켰지만, 낮의 공기는 여전히 후텁지근했다. 어딘가 계절이 고장 난 듯한 날이었다.


"안녕하세요! 10월인데도 왜 이렇게 더워요?"


준영엄마가 놀이수학 학원 문을 열며 들어섰다. 문에 달린 도어벨의 경쾌한 소리와 그녀의 목소리가 학원 로비를 가득 채웠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 아래로 볼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아이와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 듯했다. 안내데스크 선생님들에게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며, 도어벨만큼이나 경쾌했던 그녀의 목소리는 스스로 에너지를 끌어올리려 애쓰는 듯했다.


아이들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엄마들 중 그녀와 친하게 지내는 영호엄마와 호태엄마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어, 준영이 수업 왔구나. 안녕."


그녀들 옆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할머니가 힐끗 준영 엄마를 쳐다봤다. 영호와 호태의 수업이 끝나자 그녀들은 아이들을 챙겨 다음 스케줄을 위해 급히 놀이수학 학원을 빠져나갔다.


넓지 않은 로비는 벽면을 따라 의자들이 배열되어 있었고 중간엔 타원형 소파가 놓여져 있었다. 촘촘하고 비좁은 그 공간에서, 벽면의 의자와 소파에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는 쉽게 전파되었다. 교육 정보를 나누는 엄마들 사이에서, 어떤 엄마들은 무심한 척 귀를 기울여 듣기도 하고, 또 어떤 엄마들은 철저하게 자신만의 정보를 숨기려 했다.


준영이를 수업에 들여보낸 후, 로비에 자리를 잡고 앉은 준영엄마에게 할머니가 사탕 하나를 주며 말을 걸었다.


"좀 전에 나간 엄마들이랑 친해요?"

"네. 애들이 같은 반이라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저기... 이런 말 하면 실례일 수도 있는데... 그 엄마들이랑 친하게 지내지 말아요. 내가 이 말을 할까 말까 몇 번을 망설였어요. 노인네 오지랖이라고 할까봐."


‘그 엄마들이랑 친하게 지내지 말아요.’ 어르신의 그 한마디에 이마의 땀이 스르르 식었다. 순간, 에어컨 바람이 오싹하게 피부를 스쳤다. 계절에 맞지 않게 틀어진 실내 공기처럼, 가슴 깊숙이 서늘하고도 답답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할머니는 학원에서 자주 뵀던 분이다. 입구와 로비가 한눈에 보이는 구석의 지정된 좌석에서 항상 조용히 책을 보고 계셨기에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다. 책을 보시던 눈빛이 가끔 누군가를 깊이 관찰하는 듯했고, 가끔 오가다 눈이 마주치면 살짝 눈인사를 했을 뿐이다. 어르신의 충고에 준영엄마는 잠시 무슨 의미로 하신 말씀일까 궁금했지만 금방 답을 얻었다.


'아, 아까 내가 들어올 때 나를 힐끗 보며 그녀들과 나를 번갈아 보셨지. 그녀들이 내가 오기 전 준영이에 대해 험담을 했구나. 그러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에게 인사를 한 거고… 할머니가 이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다고 하는 걸 보니 한 두 번이 아니었구나...'


기분 전환 삼아 입에 넣은 사탕에서 강한 계피향이 퍼졌다.

잠깐 달콤한 듯하더니, 이내 맵고 쓴맛이 혀끝을 찔렀다. 그 순간, 입 안의 사탕이 쪼개지며 지난 봄, 그녀들과 함께 했던 일식집이 떠올랐다. 룸 입구에서 우연히 들은 대화에서 그녀들의 저변에 깔린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언니 아까 그 얘기... 준영이랑 아리랑 싸웠다는 거.”

“그게 어떻게 싸운거야. 일방적으로 준영이가 괴롭힌거지. 아깐 준영엄마 있으니 그냥 싸웠다고 표현한 거지.”

“아리엄마가 학교 쫓아가서 엄청 난리 쳤데요. 나 같아도 가만 안 있지.”


분명 준영이와 아리랑 싸운 내용을 아는 그녀들이었다. 그래서 함께 이야기 할 때는 준영이의 억울함을 들어주고 했으면서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준영이 험담을 했다.


준영이는 개구쟁이다. 옛날식 표현으로 말하면 그렇고, 요즘 기준으로는 산만한 아이였다. 단지 호기심이 많고, 목소리가 크고, 행동이 클 뿐인데 말이다. 오래전 아이를 키웠던 할머니들 기준에서는 밝고 건강한, 에너지가 넘치는 남자아이였지만, 지금 시대의 잣대는 달랐다.


이제는 남성성이 강한 아이보다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가 더 '바람직한' 아이로 여겨지는 세상. 기관 교육에 고분고분 따르고, 나이에 맞지 않게 점잖고, 유순한 아이들이 정상으로 간주되는 분위기에서 준영이는 문제아처럼 보일 수 있었다.


여러 기관을 보내며 주변의 이런 따가운 시선에 준영엄마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상담 기관도 찾아가고, 아동 정신과 상담도 받아봤다. 그러나 결론은 한결같았다.


"ADHD 아닙니다. 지극히 정상이에요."


그럼에도 세상은 준영이를 너그럽게 봐주지 않았다. 준영엄마의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밀물과 썰물이 넘나드는 파도와 같이 일렁였다.

준영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고민이 많았던 그녀는 담임선생님과도 여러 번 상담했다.


"어머니, 준영이 잘 지내고 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들이 다 그렇죠.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선생님의 말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문과 시선들은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럴 때마다 영호엄마와 호태엄마는 말했다.


"남자애들 다 그래."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녀들은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아 준영엄마보다 연상으로, 영호엄마는 준영엄마와는 띠동갑이고, 호태엄마도 준영엄마보다 다섯 살 많은 엄마들이었다. 사회에서 만났다면 친구가 되기 어려운 사이지만, 같은 반 엄마로 만나면서 가까워졌다.


영호엄마는 모델을 했던 이력답게 키가 크고 눈에 띄는 체격이었다. 커트머리에 각진 얼굴형, 도드라진 광대뼈까지 더해져 멀리서 보면 카리스마 넘치는 남성으로 착각할 만큼 강한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런 외양과는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나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웠고, 푸근하게 웃는 얼굴에서는 묘한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녀가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갈 때면 사람들은 말했다.

“기린이 지나간다.” 혹은 “코뿔소가 돌진한다.”

같은 장면을 놓고도, 사람마다 그녀를 보는 시선은 참 달랐다.


반면, 호태엄마는 작고 아담한 체구였다. 그 작은 몸으로 아들 셋을 낳고 키웠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긴 생머리에 원피스를 즐겨 입는 그녀는 40대 중반임에도 20대 후반으로 보이곤 했다. 여리여리한 외모와 달리, 그녀의 말투는 차갑고 단호했다. 말끝마다 맺고 끊음이 명확했고, 그 톤에서는 실수와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 기운이 묻어났다.


이렇게 성향도, 외모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가까워진 건 아이들이 같은 유치원을 다니면서부터였다. 친하게 지내며 종종 브런치를 함께 하던 그녀들은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고 같은 반이 되면서부터 더욱 급격하게 친밀해지며 오랜 시간 붙어 있게 되었다.


이런 그녀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준영엄마. 같은 반, 같은 학원, 같은 동네라는 이유만으로 그 틈에 끼어 함께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놀이수학 학원 로비에서 할머니가 건넨 말 한마디는 준영엄마의 마음에 작은 균열을 냈다. 보이지 않는 그 균열은 조금씩 커져갔다.


'그 엄마들이랑 친하게 지내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