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우리 집 소울 푸드는 콩국수였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나의 소울 푸드다.
어릴 때부터 고소한 서리태를 넣고 밥을 하면 밥보다 콩을 더 많이 골라 먹을 만큼 콩을 좋아했다.
더운 여름 음식하면 떠오르는 건 ‘냉면’, ‘콩국수’, ‘삼계탕’인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건 콩국수다. 콩 100%의 국물은 왠지 냉면보다 더 영양가가 높을 거 같다는 생각과 삼계탕보다는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한 끼 식사로 내놓아도 정성을 들인 거 같아 식구들에게 덜 미안한 메뉴 중 하나다.
우리 집 구조는 주방의 조리대쪽이 거실에서 ‘ㄱ’ 자 구조로 꺾여있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엔 거실에서 에어컨을 켜도 너무 덥다. 그 더위에 불을 사용하는 요리는 너무 힘들다. 그래서 최대한 불을 적게 사용하는 요리를 하려고 메뉴를 고민했다. 그래서 고른 게 콩국수다.
콩국수의 핵심은 콩국물이다. 하얀 콩_백태 보다는 검은콩_서리태로 콩국물을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검은콩_서리태가 고소함이 더 진하고 뽀얗고 하얀 국물보다 카키색의 국물이 더 맛있어 보여서 좋다.
검은콩_서리태를 2회 깨끗이 씻은 후 콩이 다 잠기도록 물을 부어 콩을 불린다. 3~4시간 정도 충분히 불린 후, 큰 냄비에 넣고 콩을 삶는다. 소금도 약간 넣어 간이 살짝 되도록 삶아준다. 콩을 삶을 때 가장 중요한건, 덜 삶아 콩 비린내가 나지 않게 하는 것과 콩을 너무 푹 삶아 뭉개질 정도로 해서 메주 내가 나도록 하면 안 된다. 그 중간의 맛있는 지점을 찾기 위해 물이 끓어오르면 중간 중간 콩을 하나씩 먹어본다. 콩이 익어 ‘살캉살캉’ 식감이 살아 있으면서 고소함이 입안에 확 퍼져 콩만 숟가락으로 퍼먹어도 맛있을 때가 가장 맛있는 지점이다. 이것이 나의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별거 없는 비법이지만 지금껏 실패한적 없었다.
콩국수를 만들어 먹을 때마다 매번 콩을 삶아 콩국물을 만들어 먹는 건 너무 번거롭다. 그래서 콩을 삶을 때 한꺼번에 많이 삶아 그 삶은 콩을 소분해서 냉동한다. 그런 후 먹을 때 마다 냉동한 삶은 콩을 믹서에 생수를 넣고 갈아주면 얼음을 따로 넣지 않고 시원하게 먹을 수 있다.
소면을 삶기 전에 달걀도 완숙으로 삶은 후 껍질을 까서 반을 잘라 준비해둔다.
그리고 고명으로 올릴 오이는 곱게 채를 썰어 준비한다. 나만의 콩국수에서는 곱게 채를 써는 게 중요하다. 투박하게 채 썬 오이는 식감도 뚜걱거리고 소면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곱게 채 썬 오이가 소면과 함께 먹을 때 어우러져 식감도 좋고 콩국수의 고소함 속에 상큼함이 느껴져 좋다.
삶은 소면을 큰 대접에 담고 콩국물을 넉넉히 부은 후 곱게 채 썬 오이와 삶은 달걀을 올리고 깨를 뿌려주면 먹음직스러운 한 끼가 완성된다.
우리 집은 간수를 뺀 천일염을 프라이팬에 살짝 볶아 식힌 후 곱게 갈아 사용 하는데, 그 소금을 콩국수에 넣어 간을 해서 먹으면 다른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아도 고소함이 극대화 되어 너무 맛있다.
지난여름 이 방법으로 10번도 넘게 콩국수를 해먹은거 같다. 국수를 삶을 때만 불을 사용하니 세상 편할 수가 없었다. 여러 번 반복되는 메뉴에 아이들은 비빔국수로 메뉴 변경을 하기도 했지만 크게 거부하는 메뉴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아이들이 거부까지는 아니지만 찾아서 먹는 메뉴는 아닌 콩국수.
아이들이 식탁에서 먹을 게 없다며 반찬 투정을 할 때 마다
“그럼 오늘 저녁 또 콩국수 한다.” 협박성 발언을 하며 여름을 버텼다.
또, 가끔은 저녁으로 콩국수를 내놓으면 또 콩국수냐고 투덜거려
“콩 100% 콩국수가 얼마나 비싼데, 그리고 집에서 직접 콩국수 만들어 주는 엄마가 어디 있냐? 다른 집은 다 사서 먹는거 집에서 정성스레 해주면 감사한줄 알아!”
내가 좋아서, 다른 음식 하기 귀찮아서 매번 선택한 메뉴임에도 아이들에게 온갖 생색을 내며 콩국수를 내놓았다.
아이들에게 콩국수는 어떤 음식으로 기억될까?
여름에 엄마가 지겹도록 해줬던 음식, 먹기 싫었지만 해주니까 억지로 먹었던 음식으로 기억할까? 아니면, 엄마가 좋아해서 영양가 높으니 먹으라고 해준 음식으로 기억할까?
당시에는 안 좋았던 음식과 기억이 시간이 지나며 좋은 추억으로 변화되기도 하니 먼 훗날 아이들은 이 콩국수를 어떤 음식으로 기억할지 참으로 궁금하다.
나이를 먹고 보니 특별한 날의 잔치 음식들이 기억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일상에서 먹었던 엄마가 해주었던 음식들이 기억난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일상의 음식이 더 생각나는 듯하다.
내가 좋아하는 콩국수가 아이들의 소울 푸드로 기억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