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의 미’ 하면 동양화나 서예가 떠오른다.
한때 나는 서예와 캘리그라피에 심취해서 있었다. 배우러 다니기도 하고 공모전에도 출전하는 등, ‘여백의 미’와 ‘흑과 백’ 두 컬러만으로 표현하는 예술 세계가 흥미로웠다.
큰 종이를 꽉 채우지 않는다. 적당한 위치에 점 하나를 콕 찍는다. 화선지 위에서 먹은 자연스럽게 번져 나간다. 나는 그것이 우연에 기대는 예술, 억지로 의도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예술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그 세계에 흥미가 뚝 떨어진 건 몇 번이 캘리그라피 공모전을 경험한 후부터다. 혼자 사부작거리며 공모전에 제출할 작품을 만들고, 한두 번 선생님께 조언을 듣고 제출한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작품이 전시된 전시장에 가보니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특정 선생님의 제자들 작품이라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작품을 낼 때 선생님이 작품 체본을 해주면 그걸 그대로 연습해서 작품으로 낸다 했다. 서예의 경우 정형화된 필체를 쓰는 것이기 때문에 그 방법이 이해가 되었지만, 각자 고유의 필체가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캘리그라피에서도 그런 방식을 취한다는 사실은 내 흥미를 크게 떨어뜨렸다.
그리고 또 하나 흥미를 반감시킨 것은, 다른 사람이 쓴 좋은 글귀를 예쁘게 표현하는데 그친다는 사실이었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글쓰기를 하지도 않았고, 내가 쓴 글로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못했던 때였다. 그래서 남의 글을 예쁘게 표현하는 작업에 점점 흥미를 잃게 되었다.
결국 개인적으로 흥미가 떨어져 이런저런 핑계를 붙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창작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의 것을 그대로 베끼고, 가르쳐주는 것만 반복해서 하는 일은 어느 순간 한계점에 다다르면 손을 놓고 싶어진다. 개인의 창작이 들어가지 않으니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 그리고 점점 오퍼레이터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알려주는 것을 배워 그것을 마스터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더 발전시켜 나만의 무엇으로 확장시키려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인지 후자는 생각이 너무 많다. 마스터한 이후에 고민해도 되는 내용을 한 발, 아니 두 발 앞서 고민한다. 고민을 하며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 탓인지 이런저런 핑계로 끝을 찍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나 역시도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요즘은 그 생각을 조금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연초에 읽었던 책 <렛뎀이론>을 다시 손에 쥐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여러 고민이 많을 시기에 <렛뎀이론>의 ‘내버려 두자’라는 말이 마음을 좀 편하게 해주었다. 나 혼자 동동거린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면,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그냥 내버려 두라는 작가의 말은 당시 고민을 조금 쉽게 내려놓게 했다. 지금 다시 그 책을 재독할 시점이 온 것 같다.
내 마음속, 정확히는 머릿속이겠다.
내 머릿속의 여백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조금 덜어내고 여백의 공간을 남겨두어야 할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