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예찬론자

by Balbi




서울이 좋다.

언제부터인가 서울이 너무 좋아졌다.


과거에는 사람 많고 복작거리는 서울이 싫었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풍경이 있는 곳에 더 마음이 갔다. 서울로 출근하며 지옥철에 몸을 실어야 하는 현실도 버거웠고, 아이들이 어려 항상 큰 짐가방을 들고 다녀야 하는 일상도 힘들었다. 서울이 싫었던 것이 아니라, 그때의 삶이 버거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서울은 그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을 뿐이다.


출퇴근에서 멀어지고 아이들이 커서 짐가방이 사라진 지금은 서울로의 외출이 즐겁다.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과 최신 유행이 한곳에 모이는 서울은 갈 때마다 설렘을 주고, 나에게 에너지를 충전해 준다.


한때는 나이가 들면 도시를 떠나 넓은 산과 들이 보이는 곳에서 신선놀음하듯 살고 싶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마음이 완전히 바뀌었다. 남편이 TV에서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 나는 타박을 하기 일쑤다.


“처자식 버리고 산속에 들어가 혼자 사는 게 부러워? 왜 자꾸 봐? 저렇게 사는 게 뭐가 좋다고?”

“아니, 그냥 채널 돌리다 보게 된 거지…….”


남편의 고향은 서천이다. 시골 출신들이 노년을 고향에서 보내는 게 꿈이라고 종종 말하는 것과 같이 남편도 가끔 고향에서의 노년을 이야기 한다. 예전에는 맞장구를 쳐주었지만 지금은 정색을 하며 말한다.


“난, 서울이 좋아. 절대 도시 떠나지 않을 거야. 난 공연장, 전시장 가까운 곳이 좋아. 지방에서 서울 올라와서 공연 한번 보려면 돈이 얼마나 깨지는데. 그리고 늙을수록 병원이 가까워야 한다잖아. 난 서울로 이사하는 게 꿈이야.”


둘째도 서울 사랑에 빠졌다. 나와 함께 공연을 다니고 홍대거리 구경을 하며 서울의 매력에 흠뻑 빠진 것이다. 바람을 넣은 것이다. 내가 서울 예찬을 하면 딸아이도 옆에서 말한다.


“나도 서울이 좋아. 서울로 이사 가고 싶어.”


어제도 서울로 외출을 다녀왔다.

토요일 오전 늦잠을 포기하고 바이올린 레슨은 다음 주로 미루며 일찌감치 서둘렀다. 공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금기숙 기증특별전’을 전시 종료 전에 한 번 더 보기 위해서였다.


전시가 입소문이 나면서 주말 오후에는 관람객이 몰려 입장 지연이 발생한다는 안내가 있었다. 그래서 오전 일찍 찾았지만 전시장 안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았다. 22일까지 연장된 사실을 모르고, 원래 마감일이었던 15일 전에 서둘러 온 관람객들이었다.


전시장을 전세 낸 듯한 분위기에서 작품을 보고 싶다는 기대는 사라졌지만, 그녀의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그저 행복했다. 하나하나 천천히 보고 싶었지만 둘째는 연신 “빨리, 빨리”를 외쳤다.

전시 종료 전 평일에 한 번 더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전시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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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나선 우리는 공예박물관 뒤편 윤보선 길로 산책을 이어갔다.

서울의 이런 작은 골목길이 사랑스럽다. 이 골목길에는 아기자기함, 모던함을 뽐내며 카페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사이사이 아담한 갤러리들이 근사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었다. 따뜻한 봄날의 햇살을 등지고 카페와 갤러리를 구경했다. 그러던 중 한 갤러리에 걸린 작품에 시선이 머물렀다. 잠시 후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갤러리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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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경 작가 <적적한 시간의 위로>


멀리서 봤으면 그것이 한지인줄 어찌 알았을까.

그녀의 작품은 한지를 차곡차곡 쌓아 그 단면으로 완성된 작품이었다. 상상도 못 할 정성과 노동이 들어간 작품이었다.

작가들의 작품에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 작가만이 갖고 있는 고유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예술 작품에는 작가만이 가진 철학이 담기고 그 철학을 바탕으로 작품을 표현하는 특수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일반적인 회화 작품보다 이러한 작품에 조금 더 끌린다.

그녀의 여러 작품을 보고 작품에 대한 내용이 궁금해서 입구에 준비되어 있던 리플렛을 들고 왔다. 한지를 직접 염색하고 채색한 뒤, 다시 잘라내어 캔버스위에 한 겹씩 쌓아 완성된 작품이라니! 작품에 대한 설명을 보니 그녀의 작품들이 더 대단해 보였다.

그녀의 작품이 더 유명해 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 느꼈다.

나는 서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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