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나는 뒤늦게 들어간 대학생활이 즐거웠다. 쏟아지는 과제에 힘들다며 투정을 부리는 어린 동기들이 많았지만, 그 틈에서 맞장구를 치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다.
‘이 정도가 뭐가 힘들어? 하고 싶은 공부 하러 들어온 거잖아. 이 정도 과제, 재밌지 않아? 힘은 좀 들어도 난 재밌는데.’
과제량은 생각보다 많았다. 일주일에 2~3일은 밤을 지새워야 겨우 해낼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 힘들다는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그래도 그런 밤샘마저 나는 즐거웠다. 그렇게 바라던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었으니까.
오래전부터 미대 디자인과에 가고 싶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나의 꿈은 일찌감치 접어야 했다. 지금이었다면 여러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입시미술 학원은 필수 코스라고 생각했고 다른 선택지를 떠올리지 못했다. 여러 해가 지나고, 나는 결국 원하던 과에 입학했다. 돌고 돌아 자신의 길을 찾아간 것이다. 비록 원하던 학교는 아니었지만 당시 현실에서 나는 만족스러웠고 그 생활에 충실했다.
때마침 폭삭 망한 집, 풍족했더라도 애초에 뒷바라지를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도 성적은 늘 상위권을 유지했다. 때로는 지독하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학과 공부에 매달렸고, 성실함을 인정받았다. 그 성실함의 인정으로 과TOP을 경험하기도 했다. 과내에서 그 누구도 그 결과를 ‘교수에게 잘 보여서, 운이 좋아서’라고 치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나 스스로도 나만큼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재능이 7, 노력이 3이라 여겨지던 미대에서도, 열심히 하면 그 비율을 뒤집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졸업 작품을 준비하던 때 흔들렸다. 복학한 한 학번 위 선배 A가 있었다. 졸업 작품을 준비하는 그녀는 성실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늘 설렁설렁 작업했고, 중간 점검에서도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최종 결과물을 마주한 순간, 나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마추어 학생들의 졸업 작품 중에서 그녀의 작품만이 기성품 같았다.
완성도가 압도적이었다.
높은 완성도에 질투가 먼저 올라왔다.
‘남친이랑 CC였다던데, 남친 도움 받은 거 아니야?’
스스로도 민망할 만큼 비겁한 생각이 스쳤다.
그럼에도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작품은, 잘 만든 작품이었다.
열심히 하면 재능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믿음이 그때 무너졌다.
그녀의 불성실함을 질타했던 교수들조차 더는 말을 보태지 못했다.
‘역시 재능만이 답이구나! 라는 생각에 맥이 빠졌다. 그동안의 열정이 조금 사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밤을 새우며 쌓아온 시간들이 헛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날, 조용히 정리했다.
’너의 재능은 8, 나의 재능은 6이구나.‘
각자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녀가 가진 재능이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성실함이라는 무기로 시간을 쌓으면 언젠가는 그녀의 재능을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졸업 후 나는 오랜 시간 현업에서 일했다. A가 전공을 살려 그 길을 계속 걸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오랜 시간 일을 하며 느낀 것은 재능도, 성실함이 없으면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
그날 이후 나는 재능을 부정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