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업계에 있는 모든 업체들이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인한 매출 감소와 재고 증가로 긴장하고 있다. 업체들 내부적으로 이번 반도체 다운 사이클이 단시간 내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으라 생각한다. 그럼 이번 글에서는 업체별 재고 현황을 들여다보고 향후 전개될 시나리오에 대해 전망해보고자 한다.
삼성전자의 공시자료를 통해 작성한 삼성전자 DS부문(반도체 사업)의 매출 현황과 재고 자산에 대한 자료이다. 2015년~ 2016년 초까지 메모리 반도체 과잉에 따른 다운사이클 중임에도 불구하고 경쟁사들과 비교했을 때, 삼성전자의 타격은 경미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Wafer 패키징을 지연하면서 출하 물량을 조절했는데 이때 축적된 재고는 2016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데이터센터 모멘텀 기간 중 모두 소진할 수 있었다. 2017년은 삼성전자에게 있어 매출액을 한 단계 끌어올렸던 한 해였다. 급격한 매출 상승에 따라 재고는 최저치에 머물렀다.
2018년 3분기를 기점으로 반도체 사이클이 하락 반전하면서 2분기 동안 매출이 급감했다. 지난 글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일 년 치 생산 계획을 회계 연도 마지막 분기에 결정한다. 메모리 반도체 빅사이클에 따라 2018년도 생산 계획은 2017년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수립되었다. 2018년 3분기 반도체 사이클의 정점을 찍기 전, 이미 재고 자산의 급격한 상승이 선행했다. 고객사로부터 접수한 선주문 물량이 출하되면서 매출은 최대치에 도달했지만 발주 잔량이 감소하면서 재고가 쌓였기 때문이다.
2019년 미중 무역 분쟁이 격화되면서 세계 경기가 위축되었다. 이에 대한 선재 대응으로 2019년 생산 물량을 조절하면서 삼성전자는 2019년 3분기 동안 재고 자산을 줄여갔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 펜더믹을 거치며 2021년 반도체 시장의 단기 랠리와 공급망 이슈로 2022년 생산 물량을 대폭 증량했다. 하지만 전 세계 전자 산업이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재고 회전율이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일찍이 본 적 없는 재고 수준이지만 2022년 4분기에는 상황이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패키징 라인의 가동률을 낮춰 제품 재고 증가를 지연하고 있지만 Wafer Fab. 은 여전히 100% 가동률을 보이고 있고 생산을 위한 원자재도 지속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2023년도에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는 삼성전자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삼성전자에서도 내년도 Wafer 투입량을 줄일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이미 생산이 완료되어 Wafer상태로 보관 중인 물량이 상당하다. 2023년의 Wafer 투입량이 2022년과 비교해 수량이 줄더라도 패키징을 통해 시장에 출하할 수 있는 반도체 물량은 유지할 수 있다. 만약 삼성전자가 올해와 동일하거나 그 이상의 Wafer를 투입하여 제품화한다면 시장은 이를 모두 소화할 수 없다. 최악에는 삼성전자가 쏟아내는 물량에 놀란 경쟁업체들이 제조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대량 매도를 할 가능성까지 있다. 이는 DRAM보다 상황이 상대적으로 악화된 Nand Flash에서 벌어질 것이다. 이를 통해 헐 값에 메모리 반도체를 확보한 고객사들이 다음 발주 물량을 줄이게 되면 메모리 반도체 반등 시기는 늦춰질 수밖에 없다.
SK hynix 역시 지난 3분기 매출액과 재고자산이 데드크로스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8년 말 반도체 경기 하강 국면에서 재고 자산이 3조 원에서 6조 원으로 증가하더니 2021년 3분기부터는 수직 상승을 이어나가고 있다. 특히 2021년 4분기와 2022년 3분기에는 재고 증가율이 업계 평균치를 상회하는 35.09%와 23.46%에 달한다. 올해 의욕적으로 잡은 생산 목표가 시황과 불일치하면서 부담이 급격히 증가했다. 가공이 완료된 Wafer는 유효기간이 있기 때문에 패키징을 지연하며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 2023년도 생산물량을 감산하더라도 SK hynix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패키지 수량은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올해 SK hynix는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수준의 재고 증가를 기록하고 있다. 정황상 4분기에는 16조 원 이상의 재고를 보유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작년에 인수한 Intel의 Nand 사업부의 매출이 지지부진한데 이어 최근 미중 갈등으로 인해 지정학적인 리스크까지 떠안았다. 이는 분명 SK hynix 향후 사업을 전개하는 데 있어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연말연초,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Wafer 투입량이 감소한다는 뉴스를 접하더라도 패키징 원자재 업체들은 제품 생산을 위한 원부자재와 완제품 재고 확보에 대해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이미 3분기부터 쌓인 Wafer가 패키징 라인으로 넘어오게 되면 예상치 못한 시기에 패키징 소재 소요량이 증가할 수 있다.
Micron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Micron은 지난 반도체 사이클 변화 때마다 대응 시기를 놓쳐 과재고로 수차례 골머리를 앓았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 중 가장 먼저 생산 시설 투자 시기를 늦추고 Wafer 투입량을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통해 매출이 감소하더라도 재고가 늘어나는 것을 최소한으로 억제하겠다는 입장이다. Micron의 지난 분기 매출액은 66억 달러이지만 그다음 분기('22 9월~ 11월) 매출액 예상은 42.5억 달러로서 무려 35.6% 감소를 예상하고 있다. Micron은 SK hynix와 유사한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SK hynix의 4분기 매출 감소에 따라 적자 가능성이 점쳐지는 이유이다.
그동안 치킨게임을 통해 우리나라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해 나간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큰 수혜자를 꼽자면 미국의 Micron이다. 2000년대 삼성전자가 주도한 메모리 반도체 치킨 게임으로 인해 일본과 독일 그리고 대만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은 큰 타격을 받아 무너졌다. 일본의 엘피다, 엘피다와 대만 PowerChip과 합작사인 Rexchip, 독인 Qimonda와 Nanya의 합작사였던 Inotera까지 모두 Micron이 인수했다. 시장이 정리되면서 DRAM 시장에는 삼성전자, SK hynix, Micron만이 남아 3개사 합산 96% 달하는 시장 점유율을 갖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치킨게임은 DRAM이 아닌 Nand에서 발발할 것으로 예상한다. 만약 2023년을 기점으로 Nand에서 치킨게임이 시작되면 어떤 양상으로 흘러가게 될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SK hynix와 Nand 단일 사업을 하는 Kioxia와 WDC의 재정적인 타격이다. WDC의 경우, Hard Disk라는 본업이 있기 때문에 Nand 사업 악화로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Kioxia가 적자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늉을 하면 그 틈을 비집고 Micron와 WDC의 Kioxia 인수 제안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 2021년부터 Micron과 WDC가 손잡고 Kioxia를 인수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에서 또다시 판을 벌여준다면 이들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일련의 과정에서 SK hynix가 보유하고 있는 Kioxia 지분은 매각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미국 정부에서 Micron 연합(Micron-WDC-Kioxia)의 지원책으로 대중국 반도체 산업 제재 강도를 높이게 되면 중국에 Nand 공장을 가진 삼성전자와 SK hynix만 타격을 받게 된다. Nand 시장이 재편되어 삼성전자, SK hynix, Micron연합으로 3 분할되면 Nand 사업 확대를 위해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던 SK hynix가 궁지에 몰릴 수 있다. 각각의 업체로 나뉘어 있을 때는 업체별로 각개격파가 가능한 상황에서 자칫 거대 미국 기업 한 곳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그래서 치킨게임으로 인해 만약의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면 Nand시장에서 우리나라 업체들의 시장 장악력이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대만의 Nanya는 DRAM에만 편중된 사업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도체 사이클 변화에 따라 매출액 변화 진폭이 크다. Nanya의 주요 고객사들 중, 대형 전자업체들의 비중이 낮다 보니 경기 변동에 따라 발주량이 먼저 감소하고 반등 시에는 발주량이 이른 시기에 늘어난다. 이번 다운사이클에서도 DRAM 업체들 중, 가장 먼저 매출액 정점에 다다랐다. 그래서 시장을 예측하는 데 있어 좋은 길잡이로 활용하고 있다.
Nanya는 3분기 매출이 급감함에 따라 재고 자산 비중이 큰 폭으로 치솟았다. 재고 회전율이 0.58에 근접하면서 역대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가슴 아픈 얘기이지만 현재 Nanya의 상황이 1~2분기 이후, 우리나라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경험할 미래일 가능성이 높다. Nanya를 통해 닥쳐올 시련의 크기가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대만 반도체 업체들의 월간 리뷰 시, Nanya의 현황을 면밀히 추적하고 있다.
업체별로 현황을 살펴보느라 설명이 장황했다. 종합하자면 경기 하강에 따른 재고 자산의 급증으로 재고 자산의 축소가 급선무가 됐다. 과재고로 인해 내년도 메모리 반도체 가격의 반등 시기를 확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비관적인 시각으로만 시장을 바라봐서는 안되지만 내년 2분기부터 갑작스레 메모리 가격이 반등한다는 낙관적인 시각에 매몰되서도 안된다. 이런 긴박한 시기에 삼성전자가 내년도 Wafer 투입량을 늘려 치킨 게임을 자초한다면 시장 붕괴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기초 체력이 튼튼하거나 정부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업체들이 아니라면 업계 재편의 소용돌이 속에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로 인한 시장 재편이 우리나라 업체들이 생각하는 데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 또한 높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2023년도 생산물량이 어떻게 확정될지, 시장이 어떤 식으로 변화할지 아직 미지수이지만 모쪼록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