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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렌 Aug 18. 2020

작가님.

어울리지 않는 옷.

내가 쓰는 물건과 내가 어울리는지 본다. 나는 그 물건을 쓸만한 자격이 있는지 생각한다. 물건이 나한테 과한지, 내 주제에 맞는지 생각한다. 내가 그것을 사용할 때 내가 빛이 나는지 그 물건이 빛나는지를 본다. 그리고 그 물건은 단순히 명품인지 내 취향인지 생각한다. 아파트든 차든 의류든, 대부분의 경우 브랜드는 내게 고려 대상이 아니다. 소위 명품과 브랜드, 혹은 노브랜드 물건을 살 때의 나는 그 라벨과 무관하게 동일 선상에 놓고 따지는 편이다.(마케팅, 브랜딩 차원에서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 따위는 재미와 흥미의 요소일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검소한 사람이거나 절약하는 사람은 아니다. 난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따라다니며 하는 쇼핑을 좋아했고,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내 옷은 내가 골랐다. 질 낮은 싸구려를 싫어하며 좋은 물건을 잘 골라 사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비싼 것들이 집히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난 물건을 오래, 잘 사용하는 편이다. 처박아두는 물건이 별로 없다. 그래서 아내는 나의 지름, 나의 소비를 어지간해서는 막지 않는다. 사다 놓고 잘 쓰니까. 그게 어떤 물건이든 어울리는 걸 사서 잘 쓰니까 막을 명분이 딱히 없는 거다(!). 난 클래식한 가치를 갖고 그 자체로 클래식이 될 수 있는 물건이라 판단하면 좋은 걸 구입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다만 난 언제나 내가 보는 그 물건의 본질적인 기능과 필요성, 그리고 사치품은 아닐지 생각해보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나와의 어울림을 생각한다. 그래서 내 주제에 맞지 않는 물건을 탐내지 않는다. 그런 물건은 소유할 때 잠깐은 좋아도 짐이 되고 결국 불편하다.


이런 내게, 내게 온 지 십수 년이 지났는데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것이 있다.


그것은 물건이 아니라 호칭이다.


작가님.


사람들이 나를 불렀던 호칭 중 가장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 바로 작가님이다. 난 작가님이란 단어에 약간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나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에게 불만은 없다. 그저 그 단어 자체가 나랑 어울리지 않는, 내가 그 단어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참고로 작가의 정의를 찾아보면, '문학()이나 예술()의 창작() 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이라고 나온다.)


처음 그렇게 불렸던 것은 약 15년 전쯤이다. 내가 사진을 하던 시절에 찍는 사진과 일의 성격에 따라 기자님 내지 작가님이라 불렸다. 기자일을 할 때 기자님은 불편하지 않았다. 같잖은 프리랜서 기자였어도 처음부터 기자님은 괜찮았다. 그런데 작가님은 달랐다. 난 사진가로 불리는 것이 편했다. 포토그래퍼라든가 사진가 필렌, 이건 괜찮은데 필렌 작가님... 이라 불리면 극히 불편했다. 난 내가 생각하는 '작가의 사진'을 찍지 못하고 있고 작가로서의 자각도 부족한데 사람들은 그저 나를 존중해주려고 작가님이라 불렀다.


글과 책으로 보자면 출간 작가니까, 전시회도 했었으니까 따지자면 작가 맞다. 그렇지만 나는 작가님은 어색하고 불편하다. 심지어 출판사에서 인세 보고 메일에 담당자가 업무적으로 작가님이라 적는 것도 민망하다.


 작가의 정의와 비슷하게, 전업작가로 창작활동을 하는 경우만 작가님이라 불리는 게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가라면 작품이란 단어를 들을 때 부끄러움이나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이것은 그저, 순수한 내 개인적 생각이고 느낌일 뿐이다. 문제는 나는 타인에게도 이렇게 생각해서 누군가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 작가님이라고는 못 부르겠다. 이건 순전히 내 문제다. 난 사진으로나 글로나 작품이라 할만한 결과물을 내본 적이 없다. 언젠가 수필을 써서 출간을 해도 수필가 필렌은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지만 작가 호칭은 어지간해서는 쉽사리 소화하지 못할 것 같다.


사업을 하면 크든 작든 사업가이고, 사장님이고 대표다. 이렇게 불리거나 부르는 것은 나이가 적든 사업체 규모가 작든 상관없다. 거래처에서든, 클라이언트로부터든, 심지어 사정이 나빠져 대출 받으러 가도 그렇게 불리고 그것은 자연스럽다. 대표로서, 사장으로서 너무 젊어서 어딜 가나 '젊은 나이에' 소리를 듣던 나는 하지만 사업가로서의 호칭에는 언제나 당당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렇지만 작가라는 타이틀이나 호칭은, 어쩐지 어렵다.


아마 진짜 이유는 내가 정말 '작가'가 되고 싶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가에 나의 꿈을 실었었기 때문에 그 꿈을 이루지 못해서 그 말을 듣고 받아들이기불편한 것 같다. 부끄럽고 민망한 거다.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서.


하지만 괜찮다. 후회하거나 아쉬울만큼 쏟아붓지 못한 것에 대한 당연한 결과니까 받아들일 수 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그만큼의 노력을 하지 못했다. 그저 한편으로 작가가 아닌 나도 이렇게 대중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시대라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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