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순수하면서도 어리석고 어찌 보면 비겁하기도 했던 어린 시절 첫사랑의 기억이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1990년대 초중반의 첫사랑 이야기이자, 야동 하나 본 적 없던 평범하고 어리숙했던 청소년 남자아이의 추억이자, 나의 아이들은 겪지 않길 바라는 경험이기도하다.
중3 시절, K가 나를 좋아하는 걸 안 것은 1학기 중반을 지나갈 때쯤이다. 매주 제비뽑기로 짝을 정했는데 뽑으면 난 항상 그 애와 앉거나 그 애가 내 앞뒤에 있었고, 그 애는 언제나 빨간 얼굴로 나를 정말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을 걸곤 했다. 그러다가 여름방학이 왔을 때 난 K로부터 첫 손편지, 러브레터를 받았다. 방학기간에는 가끔 K가 집전화로 내게 전화를 해서 전화통화를 했다. K 부모님과 달리 우리 부모님은 그다지 간섭하거나 막거나 눈치를 주지는 않으셨기에 주로 K가 가능할 때 내게 연락을 했다.
방학이 끝나고부터 항상 내 짝은 K였다. 편지는 일주일에 서너 번 받게 되었고 나도 매번 답장을 했다.선남선녀 축에 속하던, 공부도 운동도 무엇이든 제법 잘하는 편이었던 우리는 언제나 같이 앉으니 모든 선생님들의 주목을 받았다. 원래 공부를 잘했던, 언제나 1등이던 K는 하지만 나 때문에 성적이 떨어졌고, K에게 너무 뒤떨어지는 성적이면 부끄러울 것 같던 나는 반대로 성적을 계속 끌어올렸다. 덕분에 당연히 외고를 갈 것 같았던 K는 담임선생님에게 찍혔고 선생님이셨던 엄마가 학교에 불려 오는 일도 생겼다. 우리는 공인된 커플이었지만 그 당시 분위기는 그저 마음만 전하는 게 전부였을 뿐이고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편지만이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전해주는 메신저였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나빴다고 해야 할지 우리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K는 남녀공학으로 갔고 나는 남자학교로 갔다. 서로 꽤 떨어진 학교였는데 다행히 이 세상에 삐삐라는 게 나왔고 덕분에 우리는 공중전화와 삐삐로 연결될 수 있었다. 고2 여름이었나. 여름의 어느 날 밤 어떤 독서실 앞 건물 1층 계단에 앉아 우리는 겨우 처음 손을 잡았다. 태어나서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고 동시에 마지막이었다. 1시간이 훌쩍 지나고 2시간이 넘도록 -솔직히 그 이상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숨만 겨우 붙은 채로 새빨간 얼굴을 하고 손을 쥐고 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탈진한 것 같은 기분이었고 그때까지도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처음 손을 잡은 그 날 이후로 우리는 매일 만나지 않으면 병이 날 것처럼 더 가까워졌고 나는 학교가 끝나면 곧장K네 집 근처로 향했다.우리는 만나면 꼭 손을 잡고 지하철 두어 정거장을 같이 걷고 내내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사람이 안 다니는 길을 찾아 다녔다. 나는 사복을 입었지만 K는 교복차림이었고 당시에 교복차림으로 남녀 학생이 손 잡고 걷는 것은 나도 본 적 없고 보여서도 안 될 것 같아서 우리는 그렇게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길들만 찾아서 손을 잡고 다녔다.
그러다 고3이 되었고 우리는 어느 날 지하철 역 승강장과 출구 중간층의 아무도 없는 곳에서 처음 서로를 안아보았다. 그냥 손잡고 기둥에 등을 기대고 이야기를 하다가 그냥 그렇게 되었다. 그저 포옹일 뿐인데 우리는 한창 전기가 올라 또 그렇게 오랜 시간 꼼짝도 않고, 아니 못하고 부둥켜안고 저녁이 되었다.
그리고, 우린 헤어졌다. 당시 생각에 나는 이러다간, 대학교를 못 가지 싶었다. 아무리 학력 수준 최상위 학교라고는 해도 반에서 5등 안에도 못 드는 상태라면 연대 경영학과는 무리였다. 물론 고3 때 나는 고1, 고2 때와 달리 스스로 공부를 하기 시작해서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었지만K는 듣자니 계속 곤두박질이었다. 사실 나는 그저 K를 만나기에 떳떳한 학교를 가야될 것 같아서 책을 들었던 것뿐인데 K는 그게 잘 안 되었던 것 같다. 동시에 나는 K를 만날 때마다 손 잡고 싶고, 안고 싶어서 죽을 것 같았고, 난 그게 사랑이 아니라 더러운 육체적 욕망 일지 모른다고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런 천박한 욕구와 사랑을 구분하는데 자신이 없어졌다. 이런 상황과 고민에 끝내 난 일방적 이별을 통보했고 우린 각자 고3 여름 방학을 맞았다.
방학, 내 생일에 갑자기 그 애가 집 앞에 찾아왔다. 장미꽃을 들고 왔다. 사실 나도 K가 너무 보고 싶었던 게 사실이라 바로 나갔고 우리는 어떤 복층구조 찻집의 2층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또 손을 잡았다. 그날 우린 서로 좋은 대학교에 가자고, 그렇게 다짐했다.
시간은 빨리 흘렀고 수능이 끝났고, 다짐과 달리 둘 다 시험을 망쳤지만 재수는 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점수로 대학에 가기로 했다. 수능이 끝나고 짐을 벗어던진 그해 겨울 우리는 가능하면 매일 보다시피 했다.
그때는 비디오방이라는 게 생겼고, 우리도 이젠 곧 탈고교생이니 예전보다는 당당하게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거리를 걷고 밥을 먹고 영화를 보자며 비디오방에 가는 게 일상처럼 되었다. 우리는 비디오방이라는 공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서로를 탐닉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서로를 만지는 것이 전부였다. 가끔 옷 속으로 손이 들어가기도 했지만 우리에겐 금기의 선이 있었고 언제나 K가 나를 제어했다. 나 역시도, K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고 그냥 그대로 좋았다. 끝이 어딘지 뭔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서로 만질 수 있고 몇 시간이고 안고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정신은 이미 아득했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가 지났고, 우리 나이로 스무 살이 되었던, 어느 정도 학교도 정해지는 것 같았던 새해 어느 날.
여전히 추운 겨울이었다. 우리는 여느 때보다 늦게 만나 압구정동 어딘가를 걷다가 누가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파트 옥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K가 내게 모든 걸 허락했다는 느낌을 받았다.('얘도 날 원하는구나'가 아니라 '허락'했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제대로 성교육을 받지 않았음을, 남녀를 동일한 성의 주체로 보고 있지 못했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나는 서른 지나 깨달았다.) 그녀는 나를 제어하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해도 막지 않았다.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여전히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난 처음으로 그녀를 만졌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헤어졌다.
날 멈추지 않았던 그녀를 느끼고 난 숨을 몰아쉬며 멈춰 섰다. 머리가 팔팔 끓는 것 같았다. 우린 그냥 서로 안은 채 시간을 보냈다.압구정역 지하철에서 헤어져 집으로 갔고 그날 밤 난 다시 이별을 통보했다. 일방적인 메시지로.
난 무서웠다. 우리는 콘돔을 살 줄도 몰랐고, 모텔이나 다른 어디에 관계를 맺으러 가는 건 더더욱 상상도 못 했다. 난 그 순간 두려움에 멈췄고, 집에 와서는 내가 그녀를 임신시키고 부부 대학생이 되고 인생이 망가지는 미래가 떠올랐다. 재수한 형 때문에 속이 상했던 엄마가 세상 무너지는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이었던 그녀 어머니께서 질타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고, 나 때문에 인생을 망친, 귀한 그녀의 배부른 대학생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난 멍청했고 어리석었다. 요령도 없었고 아는 것도 없었다.
난 그저 대학을, 이제야 학창 시절이 다 끝났는데 나 때문에 우리가 인생을 망칠 것이 두려웠다.
넷플릭스 모 드라마에 나오는 고등학생들이 벌이는 행각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야동이 클릭 한 번으로 쉽게 구해지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였다. 그게 1990년대 평범했던 어린 학생의 사랑의 끝이었던 것 같다. 물론 모두가 나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K와 처음 만났던 중3 시절엔 전교의 같은 학년 남녀 학생 800명 중 커플이라고는 두어 커플뿐이었고, 고교 시절에도 50명 한 반에 이성친구와 사귀는 애는 한둘뿐이던 시절이라 다른 경우를 알지 못했고 조언받을 친구나 형도 없었다. 그런 걸 물어본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제대로 알았다면 학교에서 성인이 될 아이들에게 제대로 교육을 해주었다면, 나의 부모님과 어른들이 이런 부분을 상세하게 잘 가르쳐주었다면 어땠을까.
성교육이 관념적이고 현실에서 동떨어진 수준에 머무르고, 계속해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감추거나 몰랐으면 하고 바라는 주제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핸드폰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걸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성교육이 적나라하지 않으면 무슨 수로 그 적나라한 행위의 행복과 기쁨, 책임과 무게를 가르친단 말인가.
남성상위인 저 그림도 굳이 따지자면 문제지 싶은 게 지금 사회 아닌가.
내가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지금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 아들을 보며 오늘도 내일도 조금씩 미루며, 걱정하며, 고민하며 알려줄 방법을 찾는 중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 또한 고민이다.단순히 성관계나 섹스만이 문제가 아니다. 젠더에 대한 균형 잡힌, 바람직한 사고관이 필요하다.
확실한 건 내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때 나와 달리 자연스럽고 안전하게 성을 접하고,상대를 인식하고 관계를 맺으며 성장할 것이라는 점이다. 또 먼 훗날 이 아이들도 나중에 비슷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이 선순환 과정이 지금 나와 젊은 부모들이 해야 하는 작고 어려운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