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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렌 Jun 02. 2021

무책임한 성인 자녀와 부모들이 주는 자아성찰의 기회

세상에 당연한 게 어디 있나.

#1.


만 26세인 그는 1년 남짓 다닌 대기업을 그만두고 시골 부모님 댁으로 내려갔다. 회사를 그만두는 걸 반대했던 아버지는 말이 없다. 그는 아버지를 설득하려고 하지만 되지 않고 답답하다. 그가 회사를 그만둔 건, 미래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월 400만 원을 받았지만 주 60시간 가까이 근무하는 환경과 사내 수직적인 구조가 힘들었는데 그런 곳에서 참고 일한들, 언제 어떻게 나아질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월 150, 200만 원을 받아도 좋으니 주 40시간 근무하는 회사를 다니고 싶다 한다.




#2.


한 여성 부사관이 목숨을 끊었다. 성추행을 당했고 그에 대한 정당하지 못한 군의 대응과 상관의 태도들, 그리고 피해자만 계속 피해를 보는 것 같아 괴로웠던 것 같다. 언론의 기사에 따르면 군인인 남자 친구와 혼인신고를 한 날 세상을 떠났다.(아마도 사망일자는 다음날인 듯)




#3.


세상을 한 달 넘게 들썩이게 하는 그 의대생과 친구는 밤에 술 마시러 나가서도 부모님에게 문자를 몇 차례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친구는 집에 들어왔다가 부모님과 다시 한강공원에 나가 친구를 찾았단다.




#4.


오래 전, 세상이 디지털로 바뀌고 모바일이 일상화된 후 고교 은사님과 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동창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학생들이 선생님이 체벌하면 사진 찍고 영상 찍고 고발하고, 엄마들이 학교에 찾아와서 선생님한테 언어폭력 등을 하는 일이 잦다 하는데 어떠시냐 물었었다. 선생님은 당시 애들이(약 8년 차이) 우리들 때보다 훨씬 순하고 더 온실에서 큰 것 같아 언론이나 세상에서 말하는 것과 달리 우리 때에 비해 별로 말썽도 없다 하셨다.




#5.


국립대학교 교수인 그는 5년 전에 내게, 요즘 대학교가(?) 이상하다면서 시험을 보고 나면 학부모가 전화를 하고 학교에 찾아와서 성적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정정 신청을 한다 했다. 대학원 진학 때도 학부모가 와서 진학상담을 한단다. 고등학교도 아니고 대학교에 왜 '학부모'가 등장하는지 도대체가 이해가 안 된다며 그런 부모를 둔 애들이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하면 하지 말라고 말린다 했다.




#6.


한 남편이 지하철에서 성추행하는 사람을 신고해서 아내가 알게 되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아이들이 있는 가장이 어떻게 그리 경솔하게 행동하여 가족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냐고 울고불고 난리를 친 모양이다. 아내는 부모에게도 이야기해서 장인 장모가 사위를 호출해서는 애가 없었으면 이혼시켰을 거라며 혼을 냈단다.  






어떤 사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한 때 청년으로 겁 없이 세상을 살았고, 불혹이 지난 지금 성공도 실패도 아닌 그저 인생의 한 과정의 삶을 사는 학부모이자 부모, 그리고 성인 구성원 입장에서 여러 생각이 든다.


성인이 된다는 건 대학생이 되거나, 사회에 나가 돈을 벌거나 결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무언가를 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기가 하는 행동이 어떤 일인지 명확히 자각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며 사는 거라고 생각한다.


대학에 가고 군대를 제대하고 사회에 나와 취직을 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준비하고 이직을 하든 자기 일을 하든 혹은 백수라도 자기 앞가림은 자기가 하며 뭘 도모할 일이지 기껏 한다는 게 시골 부모님 댁에 내려가 빌붙어서 내 방 아직 있으니 거기 들어가나. 그러면서 부모에게 자기 마음을 알아 달라고? 사회가, 구조가 불만족스럽고 불평등하며 미래가 없다고? 앞뒤 없이 직장부터 때려치워놓고 부모에게 기생하며 미래가 어쩌고 사회가 어쩌고 집 장만이 어렵네 뭐네 하는 소리만 늘어놓는 미숙아여서는 안 된다.


현직 검사가 얼굴을 내놓고 미투 운동을 하는 마당에 왜 성추행당한 걸로 목숨을 끊나. 그까짓 거 직장일 뿐이고 정히 부조리하면 관두고 민간인 신분으로 다 뒤집어엎어버리면 그만이다. 왜 자발적으로 군대까지 가는 여성이 그만한 강단도 없는가. 왜 그 부모는 딸을 남성문화가 지배하는 군대에, 직업군인으로 가는 마당에 그만한 일에 대한 대처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보내는가. 혼인신고를 한 날 자살을 하면 그 남편은 어찌 살라는 말인가. 왜 그리 약하고 무책임한가. 군대 가면 두들겨 맞을 수도, 불공평한 일에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닌가. 이제 갓 십 대인 우리 아이들도 군대 가면 맞을 수도, 왕따를 당할 수도 있고 신고하면 외려 더 당할 수도 있으니 알아야 하며 그게 바람직하든 불공평하든 사람이 사는 사회란 동물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항상 숙지시키고 있는데 왜 군인이 그런 선택을 하는가, 요즘 세상에. 그까짓 직장 관두면 될 일이고, 전쟁에 나설 군인이 되었으면 불합리한 사회에 맞서 싸울 용기쯤은 갖추고 씩씩하게 연대해서 싸웠어야 한다.


성인이 되가지고 술을 마신다고 나갔으면 술 마시고 뒷 감당 정도는 할 수 있어야지 술 마시고 인사불성 되고, 그 과정을 일일이 부모에게 보고하며 마시고, 집에 와서 친구 찾는답시고 부모랑 같이 친구 찾아다니는 건 초등학생 때 놀다가 집에 갈 시간 놓친 아이들이나 할 일이다. 부모가 도대체 왜 성인이 된 자녀의 친구 찾으러 새벽에 집을 나갈 일을 만들고, 자녀를 그런 아이로 키운단 말인가. 의대생이 되면 뭘 하나,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몸만 크고 방종이나 즐기는 미숙아로 만들고는.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의대 가고 그게 어른이 되는 길이 아니잖나. 성인이 된 자녀들 인사불성 된 친구 찾으러 새벽에 부부가 아들 데리고 나가는 일 따위가 일어나게 가정교육을 하며 자녀를 키워서는 안 될 일이다.


그저 집에서 공부시키고 오냐오냐 키우고 학원 보내고 대학 가면 성인이 되는 게 아닌데 왜 부모들은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키우는지 모르겠다. 인간 역사 수십만 년 중 언제 인간이 평등했고 자유가 당연했는지 따져볼 일이다. 자녀를 키움에 있어 세상은 평등하고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는 가치를 알려주는 것은 중한 일이지만 그걸 그렇게 가르치는 와중에 인간 역사상 그런 적은 없으며 현재도 대다수의 국가들이 평등하지 않아 싸우고 갈등하며, 자유를 구속하는 자들과 자본에 의한 불평등과 차별이 존재함을 가르쳐야 하지 않나. 인간은 아직도 전쟁 중이며, 모든 사람들은 남에 대한 잣대와 스스로에 대한 잣대가 달라 갈등하고 다투고 빼앗기고 빼앗고 산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는 사회가 아니기에 그걸 강조하고 지키자는 것이지, 그게 이미 실현된 가치라면 다른 가치를 부르짖을 것이다. 이 당연한 걸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하는 게 부모의, 전 세대의 역할이 아닌가.


자녀를 키웠으면, 자녀가 성인이 되었으면 우선 스스로 부딪히고 이겨내는 온전한 성인이 되게 할 일이지, 스무 살이 넘고 서른이 넘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도 계속 끼고돌고 감싸고 어디에 걸려 넘어지면 기다리지 못하고 손부터 내밀어 일으켜 세우고 그러면서 어찌 자녀가 성인이 될까.


언론은 이 젊은 세대가 불쌍하다며 위로하기만 바쁘니 젊은이들은 자기들이 무슨 정말 저주받은 세대 인양 인식하고 자기들이 사는 사회가 가장 부조리하며, 인간은 당연히 마땅히 평등과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부모님 세대는 전쟁을, 그 전 세대는 일제강점기를 겪었고 그 이전에는 평등이니 자유니 따위는 수십만 년 동안 없었던 일에 불과하고 그 투쟁과 죽음과 고난의 열매를 먹고 있으면서 앓는 소리나 하고 있다. 그리고 그걸 나무라면 꼰대니 라떼니 하며 비난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미얀마 사태를 보며 응원하는 젊은이들은 그걸 겪은 우리 부모 세대를 존중하는 게 먼저일 것이고, 이스라엘을 보며 선진국도 아직 전쟁에 휘말리는 세상이라는 걸 알 일이고, 대학생이 되어 인사불성 할 정도로 술 마시고 부모님한테 혼나고 살고 실직하고 부모님 집에 방 빌려 살 거라면 그냥 찍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하고 살 일이다.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고 싶으면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스스로 자립해 살며 생계를 유지하면서 자기 앞가림하면서 하길 바라고, 부모들은 몸뚱이만 큰 아이들을 찍어내는 걸 좀 그만 둘 일이다.


약자를 보호하고 불합리함과 부조리에 맞서는 사람을 만들기 전에 그걸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러야 하는 세상인지 적나라하게 가르쳐줄 필요가 있다.


부정부패나 불합리를 조장하는 인간은 어떤 삶을 살며, 그에 맞서는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는 행동은 어떤 이유로 하는 것이며, 그랬을 때 어떤 일들이 생길 수 있고 감당해야 하는지 똑똑히 가르쳐주고 배우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지진 나는 나라에 살면 지진 후 대처하는 방법은 알려주고 살아야 하고, 운전을 시작하면 교통사고 대처법은 자동으로 실행할 수 있어야 하고 본인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성폭력을 당하면 대처하는 방법도 숙지해야 한다. 교통사고도 대처할 줄 모르면서 운전면허 따고 운전하고 다니는 건 임신이나 성병, 피임에 대한 생각도 없이 섹스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린 그걸 무책임함이라 부른다. 혹은 방종.


안전함이 당연한 나라나 사회는 없다. 인간 역사에 그랬던 적이 없는데 왜 지금 사회는 이런 걸 당연시하기만 하고, 아무 준비 없이 키우고, 또 성인이 되었다고 그 권리만 누리나.


대가 없는 자유 없고, 대가 없는 정의도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미래에나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부모나 자녀들이나 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그리고 그만큼 희생과 대가를 치르며 그 가치들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존중하게 된다. (누가 친일파가 되고 누가 독립운동을 할지, 그건 애국심이 아니라 이런 행동에서 알 수 있다고 본다. 범법자를 보고 가능성도 현저히 낮은 자기 가족 안전의 위협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제 강점기에 친일파가 안 될 리가 없고, 자녀가 목숨 내놓고 독립운동하겠다 할 때 장하다며 응원하고 용기를 북돋워줄 부모일리 없다.)


저런 일들을 보며 안타깝고 때로 한심하고, 경계하게 되고 돌아보게 된다. 나는 지금 아이들이 19살이 되면 스스로 앞가림을 할 수 있게 키우고 있는가.


돈, 성공 그 따위 거 말고, 한 생명체로 생태계 안에서 독립된 개체로 살 수 있게 키워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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