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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llare J Mar 06. 2020

끊임없는 변하는 발끝

마리 탈리오니의 포인트슈즈

*찰나의 시간을 위한 포인트슈즈

 역사상 ‘첫 포인트 슈즈’로 인정받는 마리 탈리오니의 포인트슈즈입니다. 다소 생소한 형태의 이 슈즈는 지금의 포인트슈즈와는 구조와 강도 면에서 꽤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는 포인트슈즈는 모두 발끝이 단단하고 평평합니다. 발을 균형감 있게 잡아주고 지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토박스(toe box)’가 있기 때문이죠. 덕분에 우리는 토박스에 체중을 실어 발을 끝까지 세울 수 있게 되었고, 그 위에서 온갖 화려한 동작을 구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탈리오니의 포인트슈즈는 토박스가 없고 발끝이 뾰족합니다. 발을 받쳐주는 일종의 틀없이 어떻게 발을 세웠나 싶지만, 가죽 재질로 슈즈 옆과 끝부분을 두껍께 꿰매고 발가락을 고르게 모아주는 정도의 구조였습니다. 결국 발을 보호할 수 있는 형태의 구조가 전혀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발끝 대신에 발바닥을 단단하게 만들었나 싶지만 그것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부드러운 새틴(satin) 재질에 유연한 가죽 재질로 바닥을 덧댄, 아주 약한 강도의 신발이었습니다. 대단한 힘과 테크닉을 가진 마리 탈리오니도 이 슈즈를 신고 찰나의 시간 동안만 포인트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하죠. 그에 비해 요즘에는 유연하면서도 뻣뻣한 재질을 여러 겹 덧댄 밑창을 사용하여 무용수의 아치를 받쳐주고, 동작 중에 발을 효율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더 나아가 각각 포인트슈즈마다 여러 단계로 강도를 나누고 개개인의 발 힘, 취향 등에 따라 고를 수 있기까지 하니 이와 비교하면 1800년대의 포인트슈즈는 생각보다 허술한 신발이었습니다.



*토박스(toe box)와 크(shank)의 보급

 이렇게 허술하던 포인트슈즈는 많은 무용수의 발을 거치며 조금씩 더 견고하고 강한 슈즈로 끊임없이 변형, 개조되었습니다. 두꺼운 종이로 된 여행 가방을 잘라 발끝에 덧대기도 하고 마분지로 안창을 깔기도 하였죠. 슈즈 앞부분을 신문과 밀가루 풀로 막고 단단하게 만들어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초연을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모두 여린 슈즈 속에서 발을 보호하고 동시에 고난도 테크닉을 구사하기 위함이었죠. 이처럼 19세기 말의 무용수들은 딱딱한 물체를 포인트슈즈 앞부분에 넣어 강도를 높였는데, 이 방법이 널리 쓰이게 되면서 토박스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무용수들은 더 오랜 시간 발끝으로 서있을 수 있게 되었고 테크닉 수준도 함께 높아졌습니다. 1893년 <신데렐라> 공연에서는 피에리나 레냐니(Pierina Legnani, 1863~1930)가 강화된 포인트슈즈를 신고 32번의 푸에테(Fouettés)를 처음으로 선보여, 고난도 테크닉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좌 : 피에리나 레냐니(1895년) /  우 : 안나 파블로바와 그녀의 포인트슈즈(1924년)


 시간이 흘러 포인트슈즈의 구조는 또 한 번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두 번째 변화는 백조 그 자체로 불린 안나 파블로바(Anna Pavlova, 1881~1931)의 타고난 발 때문이었죠. 당시만 해도 슈즈에 의지하지 않고 온전히 발 힘으로만 발끝을 서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에게 포인트슈즈는 너무나도 불편한 존재였습니다. 그녀의 발등은 너무 튀어나왔고 엄지발가락은 매우 컸기 때문이죠. 지금은 발등 즉, 고가 높은 발이 발레에 최적화된 발로 알려져 있지만 여린 포인트슈즈를 신던 당시에는 부상 위험이 높은 발로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의 발을 제대로 지탱해줄 수 있도록 포인트슈즈의 바닥 부분을 개조하게 됩니다. 포인트슈즈를 부드럽게 길들인 다음, 안창 아래에 딱딱한 가죽을 부착시켜 강도를 높이고 발 아치를 제대로 지지할 수 있도록 말이죠. 바로 이 딱딱한 가죽이 포인트슈즈의 크(Shank)가 되어 지금의 구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포인트슈즈는 1832년 마리 탈리오니가 처음으로 신고 춤추기 시작한 이후부터 끊임없이 발전해왔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발을 보호하고 테크닉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지금의 포인트슈즈에 모두 담겨있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아마 지금도 포인트슈즈는 계속 변하고 있을 겁니다. 누구는 실로 꿰매고, 누구는 천을 덧붙이고, 또 다른 누구는 새로운 재질로 포인트슈즈를 만들어보면서 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몇십 년 뒤에 포인트슈즈는 어떤 모습일까요?


[참고]

김수연.『발레 포인트 슈즈의 시대적 발달사』. 한양대학교대학원 무용학과 석사학위논문. 2008

국립발레단. 『즐거워라 발레』. 범조사. 2001

이은경. 『발레 이야기-천상의 언어, 그 탄생에서 오늘까지』. 열화당. 2001


여기저기서 직접 경험하고 읽고 배운 내용들을 정리한 글이기 때문에 저와는 다르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댓글을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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