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3살, 임용공부를 결심한 이유

by 다다쌤

병이 도진다는 말이 있다.

'한 번만 더 하면 합격할 것 같은데...'

나는 장수생이 걸린다는 고질병에 걸렸다. 24살부터 임용고시에 도전했고 연달아 낙방했다. 햇수로만 4년이 넘었다. 정말 최선을 다했고 교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지만 돌아온 결과는 "탈락"이라는 두 글자다.


그러다 정말 병에 걸렸다.

그 해에도 임용고시에 "툭" 하고 떨어졌지만 새 생명이 우리에게 찾아왔기에 남편과 나는 매우 기뻤다. 산부인과 선생님은 조금 독특한 분이셨다. 임산부의 첫 진료에서 초음파로 다른 부위를 함께 진찰했다. 여기저기 살펴보던 선생님은 굳은 목소리로 말씀했다.


"... 정밀진찰을 위해서 큰 병원에 가보셔야 해요. "


임신 중에 수술을 했다.

출산 후에 할 수도 있지만, 의사 선생님은 임신 중 수술을 더 권유했다. 아기를 낳고 수술하려면 지금부터 최소 10개월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수술을 하면 회복기간 동안 아이를 볼 수 없다. 선생님은 안정기에 하는 수술은 태아에게 위험하지 않으니 안심하라며 나를 다독였다.


그동안 임용공부에 몰두한다고 체력을 많이 소모한 탓에 병에 걸린 것 같아 자책했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더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겁먹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제 나는 엄마니까.





아이와 함께



아이가 태어나고 3살이 되었다.

수술 후 건강도 회복했다. 임신 중 수술이라는 사건이 있긴 했지만 다행히 아기는 여느 또래처럼 건강했다. 그렇지만 이따금씩 허무함, 공허함이라는 감정이 내 속에서 올라왔다. 아이도 무럭무럭 잘 크고 있고, 우리 세 식구 함께 지낼 보금자리도 있는데.. 내가 왜 이러지..


어느 날 아침 욕실에서 세수하던 중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쳤다.


‘ 학교 다닐 때 너는 공부를 참 잘했다 ’

...

‘ 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반에서 2등을 했을 땐 엄마가 정말 좋아하셨지. '

...

‘ 우리 집은 가난했었어. 그래서 내가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엄마께 효도하려고 했었지 '

...

‘ 너는 있잖아. 선생님이 꿈이었어. '

...

' 잊은 건 아니지..? '


" 잊은 적 없어. "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임용고시를 공부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합격할 자신이 없었다. 결혼 전 20 때에 1년 동안 공부만 했을 때도 떨어진 시험이다. 누군가 내게 합격을 위해 눈 딱 감고 1년만 고생해서 공부해 봐라고 얘기한다면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뒤에 "합격"이라는 녀석이 나를 기다리고 서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이 3살에 또 한 번 임용고시에 도전하는 걸 선택했다.

어린이집에도 아직 가지 않는 아이였다.

임신 중에 수술을 한 일이 있어서 그런지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다시 시험을 보기로 결정한 건 5월이었다. 시험까지 7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 도전해 보고 싶었다. 한창 아이를 양육해야 할 시기에 임용고시 공부를 선택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아이 때문이기도 했다.


" 엄마는 말이야. 교사가 꿈이었어. 하지만 시험에 여러 번 떨어졌었지. 그래서 포기했어. "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아이한테, 나는 꿈이 있었는데 포기했노라고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교사가 단지 직업을 갖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여겨왔다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았을 거다.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있고, 어느 것 하나 소중한 뜻을 품고 있지 않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 '교사'는 단순한 직업으로서의 의미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려온 나의 '꿈'이었다. 비교과인 탓에 작게 뽑는 인원수를 탓하며 돌아서고 싶지 않았다. 어린아이를 키운다는 엄마라는 내 환경 탓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내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만 다하고 싶었다.


5월, 시험이 채 7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나는 다시 한번 임용고시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