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산책길
가로등 불빛아래 나뭇잎에 어린 그림자가 각기 다른 모양으로 빛이 난다.
녹색은 하나가 아니다.
벚꽃이 진 후
무성해진 잎사귀의 아름다움을 아는가
내 작은 스케치북위에
다 담을 수 있을까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저 아름다운 순간을 붙잡아 두고 싶어
머릿속에 새기고 또 새긴다
사랑하는 사람의 잠든 모습을 바라본다
사랑한다 그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어
마음속 사전을 뒤져본다.
그리고
쓰고
채운다.
찢고
지우고
고친다
같은 상황이라도 같은 상황이 아니다
같은 감정이라도 같은 감정이 아니다.
내 세상 속에 오롯이 새겨지는 천국이고
나만이 갖는 보물이다.
그런데,
다른 곳에도 내 세상이 그려져 있다
내가 말하지 않았고,
내가 알려주지 않았는데
너는 어찌 내 세상을 옮겨놓았는가.
나의 소중한 천국이
다른 누군가의 것으로 세상에 소개되고 있다.
너는 알 수 있는가
작은 돌 하나까지 그곳에 놓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혹여나 놓쳐버릴까 붙잡고 싶어도
어떻게 붙잡아야 하나 잊어버리면 어쩌나
애태우던 나의 마음을
어여쁘다 하면 좋았을 것을
같이 보아주면 좋았을 것을
너는 말도 없이
내 세계를 훔쳐 달아나 버렸구나.
아름다운 세상에
이제 울타리를 쳐야 하는가
뾰족한 철망을 치고
밤새 뜬눈으로 지켜봐야 하는가
나의 공간을 세워가는 일이,
행복했던 나의 시선이
절망으로 닫혀 예민한 가시를 내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