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도시, Hoboken
"도대체 시장은 어디 간 거야?"
트럼프 시절, 연일 최고를 기록하는 코로나 사망률을 대통령은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로 대응했다. 여기저기 아시안에 대한 공격 뉴스가 속출했다. 아시안 혐오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고 그것은 트럼프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그 열기가 내가 사는 동네 Jersey City에도 왔다. 볕 좋은 일요일 아침, 시청 앞에서 아시안 헤이츠 반대 집회가 열렸다. 집회엔 나 같은 아시안뿐만 아니라 흑인, 백인, 히스패닉 등 다양한 지역 주민들이 유모차를 끌고 가족들의 손을 잡고 참가해 그 열기가 높았다.
그런데 정작 저지시티 시장은 보이지 않았다. 시장을 대신해 비서 중 한 명이 연설을 하는 도중 한 젊은 아시안 여성이 소리쳤다. "도대체 이 중요한 행사에 시장은 어디 간 거야!". 사람들의 야유소리가 높아졌고 '불쌍한' 그 비서는 연설의 마무리도 채 못하고 연단을 내려가야 했다. 유대인인 저지시티 시장은 그 주말 집안 모임에 참가 중이었다.
집회장 한 편의 인도인 가족
그날 열린 행사장 한편에 터번을 쓴 어린 아들과 아버지, 아내와 딸 등 한 가족이 눈에 띄었다. 행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함께 손뼉 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조심히 물어봤을 정도였다. 그리고 한참 후 나는 그가 옆 동네 호보컨(Hoboken) 시장 Ravi Bhalla이란 걸 알았다.
2017년 11월 인구 5만 8천여 명의 호보컨 시는 라비 발라(Ravi Bhalla)를 시장으로 선출했다. 터번을 쓴 전형적인 시크교 인도인이지만 그는 뉴저지에서 나고 자랐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왁 작은 로펌에서 일하며 26살에 처음 호보컨 시에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는 학교의 무작위 약물검사에 항의하는 고등학생들을 변호하고 수염과 터번 착용 문제로 해고된 노동자를 대신하는 등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높였다. 그리고 세 번의 호보컨 시의원직을 마치고 2017년 시장으로 선출 돼 현재 두 번째 임기를 수행 중이다.
그날 집회에서 라비 가족과의 만남 이후 난 호보컨에 대한 이미지가 부쩍 좋아졌다. 낮은 지형과 오래된 수도관으로 인해 로컬 뉴스에서 홍수 소식을 종종 듣던 곳에서 90%가 65세 이하 인구로 구성된 젊고 친환경적이고 개방된 도시라는 걸 알게 됐다. 주민 56%가 매일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해 미국 최고의 대중교통 이용률을 자랑하는 곳이라는 것도.
이 지역에 살고 있던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담배 파이프의 땅'이란 뜻의 호보컨은 포화상태가 된 맨해튼의 대안으로 개발이 시작한 곳이다. 호보컨 언덕에 자리 잡은 미국 최초의 기계 공학대학 스티븐스 공과대학(Stevens Institute of Technology)은 19C초 이곳을 맨해튼 휴양지로 개발한 스티븐스 대령의 유지를 바탕으로 시작됐다. 맨해튼과 이곳에 세계 최초 상업용 증기 페리를 운행하기도 한 그의 부지와 재산이 지금의 명문 공대의 토대가 됐다. 학교 안엔 에드가 앨런포우 단편 <마리 로제의 신비>에 나오는 시빌의 동굴(Sybil's Cave)이 있다. 호보컨엔 Maxwell House, Lipton Tea 그리고 베이커리 회사 Hostess가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세계 최초의 야구 경기도 이곳에서 열렸는데 1846년 맨해튼에선 찾을 수 없는 너른 운동장을 찾아 건너온 것이 이유였다.
1, 2차 세계 대전을 전후로 흥망성쇠를 겪던 항구도시 호보컨은 1927년 홀랜드 터널 완공으로 차량을 이용해 뉴욕과의 이동이 용이해지며 다시금 주목받게 된다. 패전국이 된 독일 인구가 현격히 줄고 그 자리를 카리브해, 흑인 이민자들이 차지했다. 허드슨 강 개발 이후 현재는 백인 인구가 82%, 히스패닉, 라틴계가 15%가 된 상태다.
매년 여름 야외 영화제가 열리는 호보컨 항구 A 지역의 다른 이름은 프란크 시나트라 도로(Frank Sinatra Drive). 1915년 생인 시나트라는 이곳 호보컨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가수, 영화배우, 프로듀서로 이름을 날렸다. 이민자 출신의 노동자 정서에 허드슨 강 건너 맨해튼의 문화적 세련미와 부가 The Bongos나 Yo La Tengo 같은 얼터너티브 락밴드로 발현되었다 싶다.
도시와 문화 그리고 정치
And now, then end is near: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My friend, I'll say it clear,
I'll state my case, of which I'm certain.
이제 거의 다 왔네.
그건 내 앞에 있어, 나의 마지막 커튼이....
친구야, 이건 분명해.
내가 확고하게 지켜온 나의 인생을...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를 유려하게 부르던 우리 동네 시의원이 있었다. 해마다 두 번씩 지역 노인들을 모시고 식사와 음식을 제공하는 자리에서 DJ 반주에 맞춰 부르는 마이웨이가 그의 삶과 닮아 있어 박수가 절로 나왔다. Ravi Bhalla처럼 한국인 최초로 Jersey City 시장을 하면 참 좋겠다 생각했었다. 그는 지난 코로나 초기, 의회 회의 중 감염돼 몇 주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의회는 1년 넘게 버츄얼로 진행됐다. 뉴스에 난 그의 사망 기사에 난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헌신적으로 현 시장의 방만함을 비난하고 주민들을 위한 입법에 애썼던 분이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가시다니 싶어서. 코로나 셧다운 기간 내내 나의 마음도 희망도 기대도 셧다운 되었었다.
CNN 캡쳐
허드슨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호보컨을 가면 답답했던 몸과 마음이 시원해진다. 인권 변호사로 살아온 유색인 시장이 있고 능력과 연륜을 보고 그를 뽑아 줄 수 있는 시민들이 있고 미국 최고의 대중교통 이용률을 자랑하고 친환경적인 시스템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버스로 Path로 자전거와 Ferry가 잘 뚫려있는 것 등등. 그 시원함은 단순히 허드슨 강에서 불어오는 강바람 때문만은 아니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