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도 손흥민을 보고 싶었겠지?

전화위복 해야 하는 한인 노동자 체포

by 최현정 Hyunjung Choi

"이럴 줄 알았으면.. 소고라도 가져올걸!!"


9월 6일 한국과 미국의 국가대표 친선경기가 열리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 스타디움에 들어서며 후회가 밀려왔다. 요란한 마칭밴드 악기들을 앞세워 미리 경기장 주변을 누비며 기선을 제압하고 있는 수백 명의 미국 응원단 무리를 보며 든 생각이었다. 훌리건은 유럽에만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최대 수용 인원 25,000명인 미 메이저리크 사커(MLS) 소속 뉴욕 레드불스 홈경기장은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 직후임에도 전광판이 집계한 공식 관중이 24,750명이라고 뜬다. 오랜만에 꽉 찬 스타디움의 우측 관람석을 가득 매운 USA 마크의 쩌렁쩌렁한 응원단 북소리는 경기 초반 한국 응원단을 넘어 우리 선수들의 기선을 제압하기에 충분한 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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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실력으로 제압한 평가전


조마조마했던 초반 몇 분이 지나고 한국팀의 전력은 금세 안정됐다. 패스는 환호가 나올 정도로 정확했고 슈팅은 절로 박수가 나올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압도적인 손흥민. FIFA 랭킹 15위 미국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절묘한 패스와 드리블이 오가다 어디선가 쏘니가 보이면 경기의 축은 어김없이 우리에게 넘어왔다. 내 양 옆에서 The Star-Spangled Banner를 힘차게 부르던 젊은 미국인 커플들은 형광밴드를 팔에 찬 선수가 뛰기 시작하면 절규를 했다. 이동경의 추가골과 골키퍼 조현우의 선방까지 전반 중간부터 미국팀 응원단이 내던 시끄러운 소음은 점점 줄어들었다. 대신 경기장 안엔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가 리드리컬한 박수소리와 함께 가득 찼다.


환상적이고 시원하고 아름다왔던 90여분의 경기였다. 미처 자리를 뜨지 못하는 한국 응원단들에게 주장 손흥민은 선수들은 데리고 그 큰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며 인사했다. 주장의 '차렷, 인사~'란 말이 내가 있는 자리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미 경기 내용만으로도 감사한 관중들은 선수들의 답례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현우 골키퍼는 누군가 흔드는 노란색 유니폼에 다시 돌아와 사인을 해줬다. 어린 꼬마부터 90대 노인까지 이런 기량과 인성의 선수들에게 환호하지 않을 이는 없었다.


"메릴랜드에서 4시간 운전하고 왔어요."

"시카고 사는데 비행기 타고 온 보람이 있네요."


훌륭한 경기는 팬들의 수고로움쯤은 다 잊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무엇보다 거만하고 시끄럽던 미국 응원단을 고요하게 만들어 준 선수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비록 FIFA 랭킹으론 8단계나 아래지만 엄청난 플레이를 보여준 오늘 한국팀의 승리엔 어느 누구도 이견이 있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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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에 묶여 체포된 노동자들


최고 기량의 한국 국대 축구 경기를 눈앞에서 직관했다는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는 경기장을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는데 앞사람의 대화가 들렸다.


"다음 주 내슈빌 경기도 대단하겠다. 근데 거기 가려던 사람 중에 ICE에 잡혀간 사람들도 있겠지?"


이틀 전 조지아주 엘라벨에 위치한 현대차-LG 에너지 설루션 합작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의 불법 이민자 단속 얘기다. 불법 고용협의로 총 475명이 구금됐고 이 중 한국 국적자는 300여 명으로 알려졌다. 트럼트 대통령 두 번째 임기 중 단일 규모 사업장 단속으로는 가장 큰 규모로 지금 미 언론에서도 메인 뉴스다.


친구가 대답한다. "그러네. 손흥민 본다고 나처럼 며칠 잠도 못 자고 좋아했을 텐데..."


9/9일 두 번째 국가대표 친선전이 열리는 내슈빌은 그 건설현장에서 차로 7시간 정도 떨어졌다. 풋볼 본다고 12시간 운전해 본 사람으로서, 이 날 꽤 많은 이들이 차를 나눠 타고 경기가 열리는 지오디스 파크 Geodis Park에 갈 계획을 했을 것이다. 한국인 노동자뿐 아니라 멕시코 등 히스패닉 노동자들도.


오늘 훌리건 같던 미국 응원단들의 행동이 불편했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싶었다. 같은 세금을 내고 같은 법규를 지키며 동등하게 사는 이웃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날 쇠사슬에 묶여 단속되는 인종 프로파일링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분노가 그들의 행동을 고깝게 보았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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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노동자에게만 주어지는 E-3 비자


"B1 비자나 ESTA를 이용해 입국해 장기 근로를 했다면 불법 근로가 명백하다."

"한국 기업들이 단기 비자나 무비자 입국 제도를 노동에 활용한 것은 '꼼수'고 이는 한국 기업과 정치권의 안이한 한미 동맹 인식의 결과다."


공화당 극우 정치인을 비롯해 미주중앙일보와 한국 쪽 여러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한국 기업과 우리 정부의 안일함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미국의 복잡하고 까다로운 비자 정책을 익히 아는 교민으로서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 이런 분석들이 옳은 걸까? 물에 빠진 아이에게 왜 물가에 갔고 수영은 안 배웠는지 혼내는 것보다 더 급한 건 아이를 구해내고 정상이 아닌 이 상황을 인지하고 어떻게 벗어날지 중의를 모으는 게 더 급한 것처럼 말이다.


TIME Magazin은 트럼프 행정부의 '모순된 정책'을 지적한다. 한국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면서 한 편으로 이민 단속을 강화하는 것, 이것은 한국 기업들의 불안을 초래해 향후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잡지는 경고한다.


블룸버그도 이번 단속이 트럼프가 치적으로 내세웠던 제조업 투자와 일자리 창출 사업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단기 비자로 들어온 숙련 기술자. 엔지니어가 포함된 단속 대상자들이 미국 현지에서 부족한 기술을 설치. 전수하고 있다며 이는 공장건설 지연 및 생산 비용 증가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AP 통신도 경고한다.


미국 조지아주 AFL-CIO 노조도 이번 단속이 '테러 분위기'를 조성해 노동자 착취를 용이하게 만든다 비판했고 American Immigration Coouncil은 노동자들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키워 노동력 부족 심화와 경제 안정을 위협한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미 주요 언론과 노동단체 등은 지금 ICE 단속의 무모함과 야만성을 성토하고 있다. 흑인 노예시절에나 횡행했던 쇠사슬 수갑에 놀라고 분노하는 미국인들과 함께 내 탓을 하며 개인화하는 오류보다 더 나은 대안을 찾아야 한다. 분명의 미국 제조업과 노동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이 과정에서 그 어느 때보다 당당히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계기로 만들어야 할 때다.


호주와 미국 간엔 FTA에 따라 오직 호주 국적자만 신청할 수 있는 E-3 비자가 있다. 전 세계 다 합쳐 85,000개밖에 되지 않는 H-1B 비자 쿼터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애원할게 아니라 미국 고용률을 높여줄 공장을 짓는 한국 노동자들에게 미국정부는 E-3 같은 특별 워킹 비자로 보호해 줘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대미 외교의 터닝포인트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와 무엇을 함께 협력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절대 협상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중 '멕시코의 주권'은 협력 대상이 아닙니다."


지난 7월, 트럼프의 대 멕시코 30% 관세 통보에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대신 마약밀매 단속 강화 등 실직적 조치를 하며 미국과의 협상에 당당한 했던 멕시코 대통령은 멕시코를 비롯한 전 세계에게 박수를 받았고 협상 상대방에게 '훌륭한 여성'이란 얘기를 듣기도 했다.


멕시코와 함께 북중미 축구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 포체티노는 아르헨니타 출신이다. 주장은 크로아티아계, 네덜란드와 라이베리아 출신도 있고 독일 출신 클린스만의 아들도 뛰고 있다. 압도적인 한국팀에 패배했지만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실력 있는 선수들이 USA란 이름하에 FIFA 랭킹 15위를 만들었고 팬층을 넓어나가고 있다. 독일인 아버지를 둔 옌스가 태극마크를 달고 축구장을 뛰듯, 부친이 나이지리아인 나마디 선수가 사상 첫 한국 계주 금메달을 땄듯 다양한 미국 국대 선수들을 보며 미국의 파워를 생각했다.


ICE에 의해 대규모 구속이 벌어진 다음 날, 현대차-LG에너지설루션 합작 전기차 배터리 공장 앞 Genesis Drive에선 지역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이 모여 피켓 시위를 벌였다. 시민들이 들고 있던 팻말 속에 적힌 문구들에 눈물이 났다.


"이민자는 미국의 적이 아니다."

"당신이 어느 나라에서 왔던 우리는 이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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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력 있는 기회의 땅이라는 매력으로 전 세계 인재들을 끌어모았던 미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기울어져가는 미국이란 국가에 대해 우리는 지금 어떤 선택들을 해야 하는 걸까? 분노와 경악과 기쁨이 교차한 요 며칠간의 복잡한 심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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