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둘에 팀장을 달았다.
제법 빠른 편이었다. 나는 내 팀을 만들었고, 팀원들도 직접 구성했다. “같이 해봅시다”라고 말할 때마다, 그 문장이 누군가의 생활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단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해낼 수 있다’는 쪽에 가까웠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보여야 한다고 믿었다.
일은 잘 해냈다.
마케팅은 숫자와 반응으로 증명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 언어를 꽤 잘 썼다. 문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팀장은 처음이었고, 어린 나이에 달았던 ‘팀장’이라는 직함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말 한마디가 지시가 되고, 표정 하나가 분위기가 되고, 결정 하나가 누군가의 야근이 되는 자리. 그 사실을 나는 뒤늦게 배웠다.
그 시절의 나는 조용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감정을 드러내는 편에 가까웠다. 일이 잘 풀리면 기세가 올라갔고, 막히면 얼굴이 굳었다. 회의실에서 내가 흔들리면 공기가 먼저 흔들렸다. 나는 그걸 몰랐다. 아니,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팀을 책임지는 사람은 늘 그 정도 긴장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프로젝트가 흔들리던 어느 날이었다.
일정은 촉박했고, 요구는 늘었고, 책임의 경계는 흐렸다. 회의는 길어졌고, 말은 쌓였고,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불안했고, 그 불안은 종종 정리라는 얼굴로 튀어나왔다.
“일단 이렇게 가죠.”
그 문장은 편했다. 결론을 만들어내면 불안이 잠깐 사라졌으니까. 나는 그걸 추진력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팀원에게서 편지 한 장을 받았다.
종이가 두툼했고, 글씨는 조심스러웠다. 단정하게 눌러 쓴 문장들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편지를 갖고 있다. 책상 서랍 깊은 곳에, 쉽게 버릴 수 없는 것들 사이에. 그 내용은 지금도 선명하다. 흐려질 틈이 없었다.
“팀장님이 흔들리면, 저는 너무 불안해요.”
“그런데 팀장님이 너무 많은 걸 혼자 떠안으려고 해서 더 불안해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 편지를 한동안 접지 못했다.
종이를 들고 있다가 내려놓고, 다시 들고, 또 내려놓았다. 이상하게도 그 문장들이 나를 비난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풍경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는 팀을 지킨다고 생각했는데, 그 방식이 팀을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팀장이 모든 걸 떠안는 모습이 책임감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는 걸. 누군가에게는 그게 ‘우리는 믿지 않는 건가요’로 읽힐 수도 있다는 걸. 무엇보다, 내가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척할 때, 그 가면의 틈새로 새어 나오는 감정이 팀을 더 흔든다는 걸.
그날 이후 내게 숨을 고르기는 성격 교정이 아니었다.
생존 기술이었고, 관계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나는 늦추는 법을 배우고 싶었던 게 아니라, 정돈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반응하기 전에 한 번만 나를 거치는 법. 감정이 먼저 튀어나오기 전에, 숨을 한 번 들이쉬는 법.
처음엔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했다.
말이 튀어나오려는 순간 입술을 다물었다. 딱 한 번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속으로 물었다.
지금 내가 던지려는 건 정리인가, 아니면 내 불안의 배출인가.
지금 내가 떠안으려는 건 책임인가, 아니면 혼자 버티려는 고집인가.
숨을 한 번 고르면, 이상하게도 다른 것들이 보였다.
사람들의 말 뒤에 숨어 있는 두려움이 보였고, 회의실 공기 속에 섞인 확인되지 않은 전제가 보였다. 그리고 내가 던져야 할 말이 사실은 결론이 아니라 질문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가 지금 합의한 건 뭐죠?”
“이 결정으로 누가 제일 힘들어지죠?”
질문은 결론보다 느리지만, 덜 상처를 남겼다.
나는 여전히 흔들리는 사람이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흔들릴 때마다 더 크게 버티는 척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팀장의 무게는 감정을 숨기는 데 쓰는 게 아니라, 감정을 정돈하는 데 써야 한다는 걸 조금씩 배웠다.
서른둘의 나는 혈기가 있었다.
지금의 내가 보기엔 어설픈 자신감도, 급한 정리도, 과한 확신도. 하지만 그 혈기 한가운데에서 나는 처음으로 배웠다. 숨을 고르는 일은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덜 망치는 일이라는 것을.
그 편지는 내게 그런 말을 해주었다.
당신이 다 떠안지 않아도 된다고.
당신이 숨을 고르는 순간, 우리도 숨을 고를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지금도 종종,
회의가 길어지고 공기가 흔들릴 때면
가장 먼저 숨부터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