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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마음

매일글쓰기 1일차

by 밤비



9월이다. 1월을 시작으로 12월이라는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평범한 한 해의 굴레겠지만, 직업 특성상 내게 시작이라는 의미를 붙이기 좋은 달은 따로 있다. 1학기가 시작하는 3월, 2학기가 시작하는 9월이 보다 더 의미있다. 그럼 너에게 1, 2월은 대체 무엇이냐 묻는다면 글쎄, 동면기에 해당하겠다. 본격적으로 한 해를 활짝 열고 시작하기 전 아직은 달큰한 겨울잠에 폭 잠긴 다람쥐 한 마리에 가깝다. 올해 3월을 기점으로 봄바람에 꽃잎이 활짝 기지개 켜듯 분주히 또 열정적으로 살았다. 1월부터 달렸을 이들의 꽁무니를 얼른 따라잡기라도 해야 되는 것처럼 퍽 가열찬 삶이었다.


9월이 되면 다시 또 3월과 같은 심정으로 두 번째 시작을 맞이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3월이든 9월이든 (개강일로 지정되는) 첫 주 월요일에 정확히 '시작' 스티커가 붙는다. 그러니까 올해는 2024년 9월 2일, 오늘이 한 해의 중반부 시작일인 셈이다.


어제 밤, 강의 준비를 마무리 하던 그 순간부터 까무룩 잠이 드는 순간까지 심장이 요동치는 걸 고스란히 느끼며 뒤척였다. 알람 소리에 눈을 뜨자마자 다시 또 요동친 건 안 비밀. 10년 가까이 이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매번 개강일 전 날이 되면 이상하리만치 달뜬 마음이 나를 휘젓는다. 첫 소개팅을 앞둔 소녀의 마음 같기도, 중요한 면접을 앞둔 취업 준비생의 마음 같기도,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 우주인의 마음 같기도 하다. 차분하고도 정갈하게 몸을 씻어 내리며 무수한 걱정들은 비누 거품에 실어 흘려보냈다. 설렘, 기대, 용기 같은 몽글몽글하고 상쾌한 것들만 온 몸 가득 충전하는 마음으로 고요 속의 샤워를 마쳤다.


양손 가득 짐을 챙기고도 욕심껏 시원한 커피 한 잔을 텀블러에 담아 연구실로 출근했다. 학교 근방에 다다르자 그간 자취를 감추었던 학생들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방학 내내 널널하던 캠퍼스가 인파로 그득하다. 어디로 시선을 돌리든 시야가 북적북적, 소란스럽게 들어찬다. 3월의 생기와는 또 다른 9월만의 색채다. 봄의 싱그러운 생기와 가을의 노을빛 충만함이랄까. 고유의 멋과 에너지가 부러워 다소 흡족한 표정으로 소란스러운 정기를 찬찬히 바라보다 말고 업무에 집중한다.


9월 2일, 오늘, 새로이 시작하는 마음. 일순간 두근세근 요동치던 심장이 착 가라앉는다. '세상에, 맞아. 나 한 해를 두 번씩이나 새로이 살 수 있었네! 참 복 받은 생이다. 그것으로 되었다.' 하는 마음이 뭉근하게 퍼진다. 괜히 눈물이 날 것도 같다. 강의 10년 만에 온 이 부끄러운 깨달음을 기록하지 않고는 안 되겠다. 긴장과 걱정을 덜어내고 현재 있는 그대로의 것들에 눈을 돌리니 그제야 선연해지는 시작의 찬란함. 나와 닮은듯 다른듯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무엇이든 시작하는 마음들에 내 몫의 응원까지 그득 실어 보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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