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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한 마음

매일글쓰기 2일차

by 밤비


제한된 시간 내에 해야만 하는 일이 많을 때면 어김없이 마음이 뾰족해진다. 청량하게만 들리던 풀벌레소리가 천둥번개만큼 거슬리고,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신체의 특정 부위가 갑자기 불편해지는가 하면, 아무 의미 없는 상대의 말투나 단어 하나에 꽂혀 골몰하게 된다. 모두 뽀족한 마음이 하는 일이다. 잔뜩 날을 세운 고슴도치가 따로 없다.


가만히 호흡을 고른다. 초능력을 발휘하지 않는 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곱절로 늘어나는 일도, 해야 할 일을 빠르게 해치우는 일도, 혹은 해야 할 일이 없어지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일들 앞에서는 그러려니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일단 해야 하고,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된다는 마음으로 뾰족한 마음을 살살 달랜다. 평소에 잘 먹지 않는 달콤한 젤리 두어개도 입에 털어넣고, 기분이 산뜻해진다는 연주곡들도 잔잔하게 틀어두고, 잔뜩 긴장한 어깨도 툭툭 털어 힘을 뺀다. 괜찮아, 괜찮아. 이 또한 지나갈 거야.

이런 날은 최대한 말을 아낀다. 가능한 필요한 말만 한다. (할 수만 있다면 혼자 있고 싶다.) 뾰족한 마음이 담긴 말이 튀어나가지 않도록 애쓴다. 뾰족한 마음이 미간으로, 한숨으로, 눈빛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몇 번이고 꽁꽁 싸매둔다. 뾰족한 마음은 내 것, 하나면 충분하다. 그런고로 오늘만큼은 내 마음을 당신과 나눌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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