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자의 공간기획 체크리스트

을지로 공간희희 인테리어 리뷰

나는 디자인도, 색채학도, 건축학도, 인테리어의 인자도 모르는 인간이다. 그런 사람이 벌써 두 번째 공간을 직접 디자인하고 뚝딱뚝딱 오픈했다는 것을 신기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번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당신도 할 수 있다고 꼭 말해 주고 싶어서.


#첫번째, 기쁨곡간

2018-2020 운영한 창신동, 기쁨곡간
이 스틸 거울은 왕십리에서 주워 창신역까지 전철로 들고 온 아이.

처음 공간기획을 제대로 해 본 것은 27살에 열었던 기쁨곡간부터였다. 예산을 짜 보니 딱 55만 원을 쓸 수 있었다. 그 돈이 공간에 필요한 집기들과 인테리어를 하기엔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조차 못한 뜨내기였다고 해야 하나. 말 그대로 열정 하나로 공간을 채워나갔다. 황학동 가구거리를 열심히 돌아다니고, 당근마켓 어플을 손에 쥐고 살고, 심지어 길 가다가 장롱 문짝에서 떼어진 스틸 거울까지 주워오기도 했다.


‘톤앤 무드’라는 것은 사치인 공간이었는데 희한하게 오는 사람마다 “곡간은 뭔가 곡간만의 특별한 분위기가 있어서 너무 좋아요.”, “묘하게 자주 오게 되는 따뜻함이 있어요.”, “딱 김은지 너네.” 등의 칭찬을 하며 2년 동안 참 많이 아껴 주셨다. 8할은 주황 불빛 아래 제대로 보지 못한 탓일 것이다.(기쁨곡간의 형광등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간접등만을 켜 두었다.)


말하자면 남의 자본 셀프 인테리어

그 후 어쩌다 회사에서 아파트 집 하나를 맡아 꾸미는 TF가 되어 ‘20대, 크리에이티브한 딸’ 방을 맡아 본격적으로 소소한 자본이라도 갖추고 인테리어를 하기도 했다.


#두번째, 공간희희

‘공간기획’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에는 많은 것들이 있다. 사실 하나하나 따로 떼어 설명해야 하는 것들이지만 이번 글에선 간략히 만 정리해 보려고 한다.

(*아래 내용은 공간희희를 운영하는 희희 시스터즈 셋 중 하나인 희피리의 개인적 견해일 수 있음을 밝힌다.)


01. 공간의 목적, 방향성

공간희희는 ‘나와 우리가 더 기쁜 오늘을 만들기 위한’ 장소이다. 내가 기뻐할 수 있는 일을 마음껏 시도해 볼 수 있고, 서로의 기쁨을 지켜내고 발전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함께해볼 수 있는 곳이다. 기쁨을 먼 미래의 성취로 유보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일상’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로 살아내는 것이다.

공간의 목적과 방향성에 따라 공간의 구성도 공간을 채울 콘텐츠도 운영자의 애티튜드도 정해야 한다.


02. 공간의 타겟

이 부분에 대해선 희희 시스터즈 내부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정의 내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우리의 정체성이 묻어나 자연스레 결이 생길 순 있지만, 이렇다 저렇다 먼저 정하지 말아 보자고. 만나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한 가지 공통점 정도라고 해두자면 20~40 내외의 청년들 그리고 기쁨을 추구하는 희희의 행보에 관심이 있는 분들 정도?


하지만 일반적으론 공간을 주로 이용할, 이용하면 좋겠는 타겟층 설정과 이에 대한 사전 분석이 필요하다. 경영학과라면 혹은 관련 수업을 들었다면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을 STP(segmentation: 세장세분화, targeting: 표적 시장 선정, positioning: 위치화)라던지, 마켓 리서치등까지 구구절절 설명하기에 폰을 쥐고 태어난 세대는 이미 배우지 않아도 안다.


손님들이(손님이 되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SNS 채널에 계정을 개설해 적절한 언어로 꾸준히 소통해야 하고, 그들에게 자주 바이럴 되는 관심사가 무엇인지 빠르게 캐치해 공간이나 공간이 제공하고자 하는 서비스에 녹일 수 있어야 한다. 타겟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관계 형성은 어떤 전략으로 설명해도 부족하지만 '정성'은 어떤 방법으로든 필수적이다. 최소 인풋 최대 아웃풋이 아니라, 들이는 만큼 얻는다고 생각해야한다. 정성에 요행은 없다.


03. 공간 구성

공간희희의 공간 구성 초안

•기본 구성: 공간 계약을 하기도 전에 도안을 먼저 그렸다. 거창하게 말해 도안이지만, 공간의 목적을 고려해 최소한의 가구들과 공간이 주로 이용되는 상황의 동선을 반영한 메모 정도이다. 나는 스케일감이 좋은 편은 아니라 최초의 구성안을 희희 언니들에게 컨펌받은 후에는 희대표님의 지휘 하에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던 물건들을 조금씩 바꾸어 가며 함께 주문했다.

•컨셉: 술집과 고깃집이 많고 ‘을지로스런’ 요란한 분위기 속, 공간희희 문을 열면 전혀 다른 공간에 들어온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원래는 문짝을 책장으로 하고 싶었다. 책장 하나로 합의를 보았지만.) 풀이 많고 책이 많아 마음이 차분해지는 곳. 그러나 너무 가라앉지 않게 아기자기한 생명력이 있는 곳. 그러다 보니 크고 작은 식물을 많이 들였고 여기저기에 적지 않은 책을 두었다.

•컬러: 을지로 동네를 자주 돌아다니다 보니 을지로 옛 건물들의 창틀이 짙은 초록색임을 발견했다. 우리 공간도 그랬고. 냉큼 ‘을지로 그린’이라고 명명했다. 을지로라는 동네에 자리 잡기 위한 연결고리 하나를 브랜딩 한 것이었다. 창틀 색에 맞추어 굳이 굳이 문을 칠한 것도 그런 이유이다.


컬러를 고를 때는 메인 컬러와 서브 컬러를 나누어 줄 수도 있고 메인 컬러를 2가지 사용할 수도 있는데, 공간희희는 톤을 눌러 주기도 하고 식물들과도 어울리는 다운 컬러 그린 메인으로 잡되, 희희의 로고인 노란색을 포인트로 군데군데 활용했다. 특히 소파는 처음에 산 것이 품절되어 희대표님이 새로 득템 한 것이 공간을 밝힌 한 수가 되었다. 그 외는 알록달록한 패턴이 있는 아이템들을 배치해 공간이 경쾌한 리듬감을 갖게 했다.

을지로 그린 색의 창틀과 노란 HEEHEE

•소재: 전체적인 가구는 따뜻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책방과도 어울리는 우드로 정했고, 너무 통통 튀지 않고 너무 무겁지도 않은 중간 색감의 나뭇결을 골랐다. 의자도 다 똑같으면 재미없으니 디자인과 색감을 두 가지로 사용했다.(다크 우드 원목과 초록 가죽 쿠션이 붙은 라탄)

•기능적 포인트
공간의 한 벽에는 이런 책장이 붙어있다. 월별로 희희 시스터즈가 추천하는 책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들에 대한 소개는 또 하나의 콘텐츠가 되어 희희 홈페이지에도 소개될 예정인데, 오프라인 공간에서 보는 무언가가 온라인과 연결되는 지점을 공간에 두는 지점이다.

•쓸데 많은 디테일
나는 공간이 스스로 말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내가 있는 어떤 공간이든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은다. 거기다가 작은 색조명으로 포인트를 주어 누구라도 주목할 수 있게 하고 곡간에서 이사해 온 나무 인형으로 하트 끼를 부려 놓았다.

공간의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작은 바 테이블에는 공간희희에서 만난 소중한 이들의 창조물을 전시/소개하고 있다. 조이님들이 만든 굿즈, 희희에게 선물해 주신 것, 희희와 함께 만든 것(앞으로!) 그리고 희희 시스터즈의 소소한 기록들이 모아진 곳이다. 대부분의 조이님들이 공간에 오면 이곳을 둘러보며 “와, 이거 너무 예쁘다.”, “이건 뭐예요?”, “디테일 보소. 역시.”와 같이 희희 시스터즈가 신이 나서 입을 뗄 말을 먼저 걸어 주신다. 의도대로 낚여 주신다고나 할까.


04. 공간의 운영자

희희한 희피리

공간만큼, 아니 공간보다 공간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생명이 되는 것은 공간을 지키는 주인장이다. 공간은 공간을 만든 이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그의 세계관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고정적인 것이 아니고 주인장을 따라 숨 쉬며 바뀌고 성장할 수 있다.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인테리어를 하고 공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만큼이나 공간에 가장 많은 손 때를 묻히는 주인장들의 매력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사람을 불러들이는, 모여서 공간을 충분히 누리게 하는, 다시 오고 싶게 하는 매력을 늘 흘려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공간희희는 '기쁨'을 키워드로 하는 공간이니 희희 시스터즈가 하하호호희희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핵.심.

사람과 공간과 메세지가 같은 방향성을 같는 것!

공간과 어울리 지 않는 그림이 붙어 있던 에어컨을 가리기 위해 주문 제작한 패브릭 포스터

더불어 우리는 ‘Welcome’, 환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때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공간 곳곳에도 축복의 메세지를 남겨 두었다. 고맙게 발걸음을 해준 손님들과의 추억을 인스타에 올려 기록하고 공유하거나 받은 선물들에 대해 잊지 않고 감사 표현을 하는 것도 다른 방식의 환대이다. 그리고 공간희희에서 받은 환대의 기억이 또 누군가를 환대할 작은 씨앗으로 움트길 기대한다.


05.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

희희홈페이지 heeheeco.com 에서 신청가능했덨. 프로그램들

프로그램, 커뮤니티, 이벤트, 서비스 판매, 경험 제공 등 다양한 것들이 있다. 공급자가 먼저 무언가를 만들어내 제공하는 방식도 있겠지만, 공간희희의 경우 희희 시스터즈의 내부적 필요(주로는 "나 이거 하고 싶어!") 혹은 희희를 좋아해 주는 이들(조이님이라고 부르고 있다.)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커뮤니티나 서비스로 만들곤 한다.


희피리의 건강한 루틴 클럽도 희피리에게 그간 꾸준히 있어왔던 문의들이 노하우 공유차 프로그램화된 것이고, 곧 시작할 작기모는 희희시스터즈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자, 최근 만났던 이들의 필요를 위해 여는 것이다.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기획의 시작점이다.


콘텐츠는 프로그램이나 커뮤니티적인 것만이 아니라 공간 그 자체에도 묻어날 수 있다. 아까 설명했던 공간 입구에 조이들의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테이블도 그렇고 공간 자체가 방문자들에게 말을 걸 수 있다면, 하나하나에 감동할 것이 많다면 사람들은 공간에 좋은 감정과 기억을 갖게 된다. 공간 운영자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지향하는지 적절히 드러내는 것은 마음에 머무를 이야깃거리가 된다. 공간희희에는 많은 식물들이 있고, 모든 식물엔 ‘이름’이 지어져 있어서 식집사와의 ‘관계성'과 애정을 보여준다.


06. 공간 운영 방식

공간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느냐, 어느 정도의 BEP(손익분기)를 설정했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를 수 있다. 그에 따라 초기 투자 자본(임대료, 인테리어비) , 월 고정비(월세, 유지비 등), 공간을 오픈하는 시간 주기, 서비스의 판매 가격 등 많은 부분이 달라진다. 공간희희의 경우 생계유지의 수단은 아니지만 지속가능성을 위해 월세나 유지비, 투자비 등은 벌어야 한다.


현재 희희는 각자 직장을 다니며 퇴근 후나 주말에 공간희희를 운영하고 있다. 어떻게 그런 체력이 나오냐고 묻고 싶겠지만 사실 우리는 꽤 전략적으로 생존하고 있는 셈이다. 세 명이서 각자 하는 프로그램들이 있고, 세명이 모두 함께 하는 시간도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일주일 내내 공간에 나올 일은 드물 것이다.(물론 6월엔 오픈으로 많은 일정이 차있었기 때문에 주 5일, 6일을 나오곤 했다.) 이렇게 서로의 에너지를 아껴줌으로써 공간이 유지될 수 있는 순환주기를 조율할 수 있다.

을지로, 힙지로 한복판에 놓인 공간희희 입간판

공간희희를 기획하며 생각한 간략한 내용들이 다양한 상황과 목적으로 공간을 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그건 너라서, 너희라서 할 수 있었던 것이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공간을 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내 꿈은 내 공간을 여는 거야!'라고 마음속에 소중히 품어두고 펼치지 못하는 꿈일만큼 위대하고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공간엔 목적이 있다.

목적에 따라 알맞는 것들을 채워나가는 순간순간은 참으로 복되다. 남들이 예쁘다는, 요즘 유행한다는 것이 아니라도 그 공간의 목적다운 것, 더도말고 덜도말고 바로 그 공간다운 것. 내 작은 책상 위도, 이제 들어가 몸을 뉘일 방도 그리고 우리의 하루와 인생에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당신의 공간이 있다.

오늘도 문이 활짝 열린 ]공간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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