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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박 Aug 07. 2023

모서리

모서리를 찾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어떤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되거나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다시 한번 그곳을 방문하고 싶을 때, 혹은 어떤 문장의 출처를 알 수 없는 감동에 이끌릴 때 삐뚤빼뚤 밑줄을 그어대거나 책의 모서리를 꼬집어 놓는다.


언젠가 어떤 책에서 봤던 어떤 단어를 메모장에 급하게 적어두고는 그 이유를 까먹었는데, 분명 그 페이지의 모서리를 꼬집어놨던 것 같아서 책장 앞에서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의 모서리는 많이도 꼬집혀서 퉁퉁 부어올랐다.


모서리들을 실컷 넘겨본 후에야 그 단어를 찾았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 속에는 분명 수많은 모서리가 접혀있겠지. 하지만 언젠가 그 모서리를 다시 방문하겠다고 다짐하고는 다시 책을 집어 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완만하게 접혀진 모서리를 넘어 다니다 보니 그곳에는 그 당시의 감동과 차가운 슬픔, 사랑의 순간과 의미심장한 깨달음 같은 것들이 담겨있다.


누구든지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의 모서리를 잔뜩 꼬집어둘 수 있다. 하지만 그 모서리를 다시 들추어내는 것은 책장 앞으로 다가갈 수 있는 적당한 의지와 모서리에 대한 적당한 관심,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써 내려갈 수 있는 적당한 용기가 있어야만 비로소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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