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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의 밤 Mar 03. 2023

부자란 무엇인가…

꼭 너 같은 딸 낳아라


드럼에 대한 글은 이제 그만 쓰려고 했다.

지금까지도 경험에 비해 너무 많은 글을 썼다고 생각했다. 해본 건 쥐꼬리만큼인데 글을 이만큼이나 썼다니 어떤 의미로 정말 대단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 카톡방에서 엄마가 ‘요즘 드럼 레슨을 받고 있어~’라는 말을 했다. 깜짝 놀라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교회에서 찬양 반주를 할 목적으로 최근 배우기 시작했다고.

엄마가 드럼을 친다고??? 갑자기??? 아니 대체 왜???



엄마는 10여 년 전에 투병을 했던 후유증으로 팔꿈치와 손가락, 그리고 다리 곳곳의 관절이 유연하지 못하다. 조금만 높은 턱이 있어도 넘어가는데 신경을 써야 하고, 자주 가는 길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넘어진다.

손가락도 유연하지 못해서 몇 해전에는 재활치료 삼아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싶다는 말을 용기 내어했으나 아빠의 반대로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조금만 흥미가 있어도


“나 저거 배울래. 저거 시켜줘.”라고 부모를 조르는 아이였다.  

집안의 경제적 상황, 곤란함을 알리 없는 나이였기에 조르고 졸라 어렵사리 등록한 학원도 지겹다는 하찮은 이유로 쉽게 그만두었다.


(그럴 때마다 “꼭 너 같은 딸 낳아라.”라고 내게 축복과 저주를 했던 부모님의 바람대로 일단 딸을 낳았으니 ‘나같이’되는 경우를 생각해서 돈을 많이 벌어놓으려고 한다.)


그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니 중학교 이후로는 뭘 배우고 싶다고 하기 전에 전투력을 한껏 끌어올려야 했다. 나에게 아빠는 무턱대고 반대하는 사람. “뭐 하러 그런 걸 배우냐”라고 화부터 내는 사람. 엄마는 불쌍한 얼굴로 “그런 걸 할 돈이 어딨 냐”라고 하는 사람.

내가 그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삐지기, 금식하기 뿐이었다.


그렇게 부모의 사랑과 걱정을 볼모로 떼쓰는 것에 성공하여 어렵사리 새로운 학원을 등록하면

발만 담그고 마는 새드 엔딩으로 이어졌다.


취미나 진로에 대한 것뿐 아니라, 성인이 된 내가 무언가를 결정하여 전할 때도

“뭐 하러 그런 걸 하냐!” 는 계속되었다.

어느새 내 속에서 부모는 내가 하려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게 당연한 형편, 그럴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결혼을 하고, 남편이 진로나 취미에 관해 시부모님과 이야기할 때

“저 요즘 이런 걸 하고 있어요”

라고 하면

“오 그렇구나. 재미있겠네. 열심히 해봐라.”

라고 답하는 진기한 풍경을 마주했다.


끈기나 꾸준함으로 치면 남편도 나와 비슷한 처지인 것 같은데 어째서 부모님이 반대하시지 않지?

역시 인심은 곳간에서 나오는 건가?

최근에 남편이 요리에 부쩍 관심을 갖고 유튜브를 통한 요리 레시피를 섭렵하기 시작했는데, 그런 얘기를 하니 어머님이 손뼉을 치며 기뻐하셨다.


“그래! 너무 좋다! 나는 요리하는 남자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이더라. 아들! 요리 열심히 해서 나중에 보니한테도 맛있는 거 해줘~!

너희 아빠는 다른 건 다 해도 요리는 못하시겠대. 네가 한다니까 너무 좋다.”


아버님은 손을 많이 쓰는 직업을 갖고 계신데 이상하게 요리만큼은 못하시겠다는 주의다. 그러면 회의적일 법도 한데

“오호~ 그래~? 다음에 엄마 아빠 맛있는 거 해줘. “라고 하신다.


지금까지 남편이 넉넉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크게 부러웠던 적은 별로 없었다.

는 거짓말이고 매사에 부러웠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부러움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리고 우리 집은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가 있지?






우리 회사는 입사하기 전 최종 면접에서 면접자에게 공통 질문 몇 가지를 던진다.

그중의 하나가 ”당신은 얼마를 가져야 부자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다.

부서와 업무 상관없이 예외 없이 모두가 질문을 받는다고 들었다.


나는 어쩐 일인지 그 질문을 받지 못했다.

(회사의 공통 질문을 물을 필요 없을 만큼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이리라… 하고 혼자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듣지 못해서 그 질문의 답을 가장 많이 고민하면서 사는 것 같다.

어떤 질문은 받지 못했을 때, 더 오래 머무는 것 같다.


‘얼마나 벌어야 부자일까, 나는 얼마를 소유해야 부자라고 느낄 수 있을까.’


나름의 답을 정해놓고, 계속 수정하고, 업데이트하면서 회사를 다닌다.

어느 날 문득 회사 대표님이 나에게 물어봐도(그럴 일 없음) 바로 대답할 수 있게.



남편은 상대적으로 넉넉한 집안에서 자랐다. 그런데 나는 10여 년을 그와 오빠 동생으로 지내면서 그 사실을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꼬질꼬질한 운동화와 늘 똑같은 티셔츠, 무릎이 나온 청바지, 다 떨어진 가방 같은 것들을 입고 또 입고 신고 또 신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은 신고 있던 슬리퍼가 찢어지는 바람에 검정 비닐봉지를 발목에 묶고 길을 걸었는데, 그 모습이 몹시 창피해서 멀찌감치서 웃으며 따라간 기억이 난다.

그래도 별로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어지간해서는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느 날은 가족들과 일 인분의 10만 원이 넘는 코스요리를 먹다가 다음 날은 아무렇지 않게 편의점 샌드위치를 먹는 그런 사람.



이번에 남편을 지지해 주는 시댁 식구들을 보며 깨달았다.


‘아 저 사람을 돌본 부유함의 정체는,

시행착오를 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다정함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몇 해전 베트남으로 해외여행을 가던 날,

남편이 혼자 여권을 안 가져와서 비행기를 놓치고

어렵사리 베트남에 도착했는데 택시에 핸드폰을 놓고 와서 며칠 만에 몇 백만 원이 깨졌을 때

어머님은 전화기 너머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네가 고생이 많다. 어쩌겠니..ㅎㅎㅎㅎ 웃자 웃어~~”


그리고는 바로 어머님이 핸드폰 값을 보내주셨다.

(물론, 남편이 갚았다.)


그 사건 이후로 남편과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거나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한숨을 쉬는 대신 이렇게 말한다.


“웃자 웃어~~~ 하하하 웃자 웃어~~~”

(물론, 잘못한 쪽이 적극적으로 어필한다.)


잃어버린 돈은 돌아오지 않고, 나빠진 상황은 단박에 좋아지지 않는다 해도

애쓰고 노력한 결과들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은 상황에도,

자알 생각해 보면, 어쨌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아주 아주 망한 것 같아도 자알 생각해 보면 완전히 망하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 나의 부모님을 소심하고 야박하게 만든 것은 그분들의 옹졸함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웬만해선 하면 안 되는 가난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최근에 업데이트된


‘부자란 무엇인가_최종_최종_최종_진짜최종’ 버전은

시행착오를 해도 되는 관대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다. 그 정도만 벌고 싶다.





한동안 드럼에 푹 빠져있던 엄마가 어제는

‘나 아쿠아로빅을 하기로 했어. 수영복은 어디서 사면 되니?’라고 연락이 왔다.


’드럼은 어쩌고! 위험하게 그걸 뭐 하러 해!!‘라고 하는 대신


‘오 좋네. 내가 수영복 사줄게~’라고 했다.


나는 이제 엄마보다 부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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