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닻은 어디에 있나요

by 공부하는 꽃사슴

김민수 과장은 지난해 억대 연봉을 포기했습니다.

잘 나가는 대기업 개발자였지만 연봉의 30%를 포기하고 스타트업으로 옮겼습니다.

“출퇴근 체크받는 순간, 신뢰가 아니라 감시구나 싶었어요.”

그의 커리어 앵커는 ‘자율성’이었습니다.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을 겁니다.

"연봉은 올랐는데, 왠지 만족스럽지 않다."

"사람들과 일하는 건 좋은데, 일 자체가 의미 없게 느껴진다."

"안정적인 자리는 고맙지만, 내 성장에는 도움이 안 된다."

같은 조건, 같은 대우를 받아도 사람마다 느끼는 만족도는 다릅니다.

이 차이는 각자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가,
즉, 자신의 커리어 앵커(Career Anchor)에서 비롯됩니다.



바다 위의 배가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닻이 필요하듯,
우리에게도 흔들림 속에서 방향을 잡아주는 ‘내면의 닻’이 필요합니다.
에드거 샤인은 이것을 ‘커리어 앵커(Career Anchor)’라 불렀습니다.


그가 말한 앵커란,

“외부의 보상이나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내가 일 속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뜻합니다.
누군가에겐 자유, 누군가에겐 안정, 또 다른 누군가에겐 성장과 영향력이 그 앵커일 수 있습니다.
커리어 앵커는 단순한 성향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일에서 의미를 느끼고 에너지를 얻는가를 보여주는 신호이자,

자신의 선택을 반복적으로 이끌어 온 핵심동기입니다.


조직심리학자 에드거 샤인(Edgar Schein)은 8가지 커리어 앵커를 제시했습니다.
• 전문가적 역량: 내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
• 총괄 관리: 다양한 사람과 기능을 통합해 조직을 이끄는 일
• 자율성: 나만의 방식과 속도로 일하는 자유
• 안정성: 예측 가능한 환경과 미래
• 창업가적 창의성: 새로운 것을 만들고 키워내는 즐거움
• 봉사와 헌신: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
• 순수한 도전: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스스로 한계를 넘는 일
• 라이프스타일: 일과 삶의 균형이 가장 중요한 가치


대부분 사람은 이 중 한두 가지에 강하게 끌립니다.

그리고 생애주기에 따라 변하기도 합니다.

이제 경력은 조직이 계획한 여정이 아니라, 조직과 함께 논의해야 할 ‘기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나 스스로 나침반을 들고 있어야 합니다. 그 나침반이 바로 커리어 앵커입니다.



“간략한 이력과 최근 3년간의 성과를 보내주세요.”
헤드헌터의 요청에 파일을 열었지만, 커서만 깜빡입니다.

회사명, 직책, 근무기간. 이력서 칸은 채웠는데

정작 “나는 어떤 가치를 만들어낸 사람인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한 줄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보고서, 프레젠테이션, 아이디어… 분명히 성과가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앞서 ‘커리어 앵커’가 “나는 이런 가치를 중시한다”는 자기 기준을 세우는 일이라면,

포트폴리오는 그 기준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내가 어떤 문제를 풀고 어떤 방식을 통해 가치를 만들었는지를 드러내는 살아있는 기록입니다.


심리적 계약의 성격이 달라지면서, 개인이 자신의 기대를 보다 명확히 인식하고

조직과 적극적으로 그 기대를 조율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개인은 자신의 가치와 조직에 바라는 기대를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가 생겼습니다.

"나는 조직에 이런 가치를 줄 수 있습니다"를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포트폴리오는 그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단순히 이직을 위한 자료가 아니라,

현재 조직과의 관계에서도 "나는 이런 방식으로 가치를 만드는 사람입니다"라고

나를 지속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도구입니다.


[프로젝트 기록 예시]
프로젝트명: 고객 이탈 분석
기간: 2025년 3월~4월
결과: 이탈률 15% → 8%
내 역할: 데이터 분석 + 고객 인터뷰 20건
배운 점: 숫자 뒤의 맥락 읽기


이런 기록이 열 개만 쌓여도,
6개월 뒤에는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인가”가 분명히 보입니다.
기록은 자신을 이해하는 가장 현실적인 거울입니다.

포트폴리오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작은 기록이 쌓일 때 비로소 자신이 보입니다.


처음엔 단순한 메모나 보고서처럼 보이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하나의 패턴을 드러냅니다.

“나는 늘 문제의 본질을 찾는 일을 해왔네.”
“나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일을 반복해 왔구나.”

그 패턴이 바로 나의 강점이고,

회사 밖에서도 이어질 수 있는 나의 정체성입니다.


나는 내 커리어 앵커를 바탕으로 어떤 가치를 만들어왔을까요?
그 과정에서 드러난 나만의 패턴은 무엇일까요?
지난 6개월 동안 남긴 성과와 프로젝트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요?


이 질문들에 답하는 순간,
조직과 나 사이의 새로운 약속은 훨씬 구체적인 언어를 얻게 됩니다.

다음 화에서는,
이 닻을 바탕으로 회사와 어떻게 ‘기대’를 조율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나의 닻을 알아야 하지만,

함께 나아가려면 그 닻을 드러내고 조율할 용기도 필요하니까요.

참고문헌


Schein, E. H. (1978). Career dynamics: Matching individual and organizational needs. Reading, MA: Addison-Wesley.

Schein, E. H. (1996). Career anchors revisited: Implications for career development in the 21st century. Academy of Management Perspectives, 10(4), 8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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