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왜 대나무예요?

<브런치에 남기는 첫 글>

by 대나무씨

"왜 대나무예요?"

"속이 없어서요. 그리고 소나무는 작으니 이왕이면 대나무가 좋지 않겠어요"


20대 후반 어느 날 책을 번역할 기회가 생겼다. '그래 래퍼에겐 랩 네임이 있고, 격투가에겐 링 네임이 있고, 글쟁이에겐 필명이 있으니 나도 그런 비스꼬롬한걸로 만들어보자'라고 생각했다. 부모의 가장 좋아하는 도시 이름을 딴 패리스 힐튼처럼, 아빠 데이비드의 정자와 엄마 빅토리아의 난자가 만난 도시의 브루클린 베컴처럼, 자신이 태어난 동네 이름을 가진 내 친구 프랭클린처럼 나 역시도 나와 연관된 동네 이름으로 내 필명을 짓고 싶었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죽리 마을

어렴풋한 기억에 신작로('새로 만들어진 길'이라는 사전적 의미완 다르게 비포장 도로를 의미하는 용도로 쓰였던 길)로 유치원을 가야 했고 20여 가구 중에 TV의 화면에서 컬러를 알 수 있는 집이 딱 한 집이었던 시골 중의 시골, 깡촌중의 깡촌이 바로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이다.

마을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겠지만 우리 마을은 냇가의 동쪽에 있었으며 대나무 숲으로 이뤄진 마을이었다. 각각의 집들을 울타리처럼, 가로수처럼 막아주던 대나무 숲은 단순히 풍경만이 아니라 땔감으로, 농기구로, 낚시도구로, 심지어 아이들 채벌용 도구로도 쓰였다. 이렇게 유용하고 푸근한 대나무는 나의 필명이자 별명이 되었다.


번역에 참여했던 프로젝트는 어그러졌지만 필명은 여전히 남아있다.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서류상 이름이 아닌 것에 "손대나무", 혹은 "대나무씨" 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그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들은 질문,

"왜 대나무예요?"

"속이 없어서요. 그리고 소나무는 작으니 이왕이면 대나무가 좋지 않겠어요"

그러면 사람들은 하하 웃는다.

나는 나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대나무가 되고 싶다.


행복하고 싶습니다.
남에게 아픔을 주며 얻을 수 있는 그런 행복이 아닙니다.
남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행복이었으면 합니다.

꿈을 좇아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실패 투성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꿈이라는 목표가 있기에
기꺼이 실패를 받아들입니다.

나약한 인간입니다.
쉽게 상처 받고 눈물도 많으며 가슴도 쉬이 무너집니다.
그래도 열심히 살고자 합니다.
신이 나에게 주신 하나의 장점이라면
옳은 길을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나무처럼 언제나 푸르르고 싶습니다.
대나무처럼 언제나 곧고 싶습니다.
대나무처럼 욕심의 속이 빈 채로 살고 싶습니다.
대나무처럼 타인의 고민에 공감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가장 아름답게 필 대나무 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