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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별 Apr 09. 2019

[애둘맘] 엄마가 되어가는 날들

2. 나는 고아야


전업주부가 되고 나서 어디서 먹은 뭐가 맛있었다, 엄마의 무엇은 이렇다, 아빠가 한겨울에 끓여주던 김치밥국은 맛있다... 같은 추억의 맛을 거슬러 종종 요리하게 되는데 아무리 따라 해도 따라 할 수 없는 것들이 좀 있다. 그래도 거의 대부분 추억을 재현하고 이제는 내 방식대로 만들어먹기도 하는데 콩나물국 같은 기본적인 국은 아무리 끓여도 그냥 콩나물 삶은 물 같은 맛이 났다. 엄마처럼 무, 멸치, 북어대가리, 다시마, 새우, 파뿌리 등등으로 육수를 정성스럽게 내서 그 물에 콩나물을 삶아도 말이지....
“나는 고아야.” 몇 년 전에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고아로 성장한 건 아니었지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꽤 되었고 엄마에겐 이젠 부모가 없으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엄마가 임신했을 때, 어디 아플 때 외할머니 밥을 못 얻어먹으니 더 사무친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그랬었는지,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서울에서 혼자 감기 기운에 어둡고 축축한 방에서 혼자 골골거리며 누워있다가 겨우 일어나 만들어먹던 경상도식 소고기뭇국이 어딘가 엄마가 끓여주던 맛이 나면서 며칠 내에 감기도 낫곤 했던 기억이나,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가까이에 포항을 오기 전엔 늘 엄마에게 먹고 싶던 음식을 해달라고 “주문”하고 집에 가면 반갑게 그 음식 한 그릇 뚝딱 해치웠던 나를 생각하면 “나는 고아야.” 하며 엄마가 던진 작은 조약돌의 무게는 상상할 수 없이 무거운지 아직도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떨어지고 있다.



어제 우연히 콩나물 봉지에 적힌 대로 물에 콩나물을 넣고 소금 간을 하며 콩나물국을 끓였다. 근래 들어하게 된 수많은 고민과 후회와 걱정들을 생각하니 내 나이의 엄마가 세 아이를 키우며 해보지 않았던 장사를 하고 기댈 곳 없는 울릉도에서 살아가며 많은 사람들을 챙기며 나아갔을 상황이 그려져 가슴이 꽉 막혀 왔다. 소금을 넣고 맛보고 넣고 맛보고, 또 넣고 맛보다 고개를 저었다. 기대고 싶고 투정 부리고 싶지만 그럴 대상이 없다는 것, 있다고 해도 할 수 없는 나이가 돼버린 것... 내 나이의 엄마가 요즘 많이 생각나 책임감이 더 느껴진다. 그때의 긴 파마머리 엄마는 참 젊고 아름답고 씩씩했던 것 같다. 엄마품에 안기면 나던 분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다행히 콩나물국은 간이 잘 맞았고 생각이 길었던 만큼 오랫동안 푹 끓이니 맛있었다. 저녁에도 먹고 오늘 아침에도 먹었다. 후루룩 소리를 내며 그릇째로 마시니 아들이 꺄르륵 웃으며 좋아한다. 똑같이 그릇을 입에 물려주니 벌컥벌컥 흘리며 마신다. 맛있다는 증거다. 절로 웃음이 났다. (이 사진은 그 콩나물국이 아니다^^;)..
드디어(?) 콩나물국을 끓일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 비법은 엄마 생각하며 푹 오래오래, 내 인생의 짠 기억만큼 소금 많이 넣기. 그리고 남은 생에 대한 기대만큼 마지막에 약간의 다진 파 올리기.

#내 나이_서른여덟 #우리 엄마 #콩나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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