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얽힌 추억
초등학교 아니, (내게는) 국민학교 시절... 나는 울릉도에서 동해 바다를 매일 보며 살았다. 인구 1만 명이 넘는 작은 섬에서 저 멀리 성인봉에 눈이 녹으면 관광객들이 슬슬 몰려오던 나물이 맛있는 봄, 오징어 배가 바다를 가득 덮는 태풍이 무시무시했던 여름, 노랗고 빨간 은행잎과 단풍이 우수수 떨어지는 군청 앞에서 장난치던 가을, 아빠 무릎, 내 허벅지까지 눈이 쌓이 쌓여 발이 푹푹 빠지던 겨울을 온몸으로 보고 맛보고 느끼면서 자랐다.
특히 가을이면 고모네 농장은 수확의 소식이 들려왔다. 울퉁불통 자갈길을 따라 내려가면 농장 입구 옆 우측에선 노랗고 탱자가 따가운 가시덤불 속에서 진한 향기와 함께 제 모습을 뽐냈다. 거기에 탱자와 다른 향에 크기도 몇 배는 큰 모과도 함께 가져와 집이며 차에 몇 개씩 뒀었다. 늘 육지에서 사 먹는 과일이라고 생각했던 주먹보다 조금 컸던 돌배도 있었고,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고모를 따라 뭔가 캤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시기상으로는 맞지 않지만 감자를 캤던 것도 같다.
더불어 이제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옥수수를 가득 수확해 농장 마당 가득히 껍질이 쌓이면 나와 동갑인 육촌 오빠, 인석이와 침대처럼 푹신한 그 껍질 위에서 까르르- 뒹굴다 누워서 하늘을 보며 '가을 하늘은 정말 파랗다.'라고 숨을 고르며 어린 나이에도 감상에 젖었던 순간만큼은 명확하다.
그때는 알았을까? 그 순간의 행복함이 이렇게 수십 년이 갈 거라고.
지하철에도 가을이 찾아온다. 내 앞에 앉은 그녀의 옷에도 얼굴에도 가을이 가득하다.
제목 13) 가을여자 (부제: 가을에 얽힌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