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인 Jun 30. 2015

싼 똥 안 싼 똥

몇 주 전, 한 장의 고지서가 날라왔다. 


층층마다 다른 주인들의 세입자들이 모여사는 이 건물에 '00빌라 건물주 앞'이라는, 도저히 알 길 없는 수신자 앞으로 배달된 그 고지서. 누구네 집에 두어야할지 우체부 아저씨도 고민이 됐었는지 처음엔 아랫집, 그 담에 왔는데도 안가져가니까 우리집, 우리집도 안가져가니까 윗집 이런 식으로 한 칸씩 이동이 되더니 결국은 이 건물에서 가장 오래산 윗집 경숙이 언니가 뜯어보기에 이른다. 


고지서는 '정화조 청소비'에 관한 것.


한 평생 아파트에서만 살아본 나는 정화조가 뭘 말하는 건지, 이걸 왜 같이 내야하는 건지도 몰랐다.

승우한테 물어보니....한마디로 우리가 싼 똥통을 치우는 값이라고 -_-;;

그 동안 변기와 오폐물 처리시설이 실시간으로 연결돼 있는 줄 알았던 나의 무지함이 충격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충격1.  일년에 한번 치운다는 것

- 1년 동안이나 그걸 묵혀놔도 되나? 

- 5세대가 일년 동안 눠 온 분량이 다 들어갈 정도로 통이 크단 말인가?


충격2. 청소비용은 치워 봐야 나옴

- 우리처럼 주인은 없고, 연락처도 모르는 세입자들끼리 모여있는 공용주택에서, 산정도 안된 돈을 어떻게 걷지?

- 1년 안채우고 나가는 세입자의 경우, 그간 눠왔던 것들에 대한 총량과 값은 어떻게 계산한단 말인가



작년에는 정화조비로 총 5만 얼마가 나왔으니

올해도 일단 한집당 15000원씩 내서(일년 가까이 공실인 아랫집 제외) 정화조 청소업체를 부르고, 만약 남으면 돌려주는 것으로 하자고

정화조 청소 연락하고 계산하는 것은 유일하게 낮에 집에 있는 본인이 맡겠다고, 

어쩌다보니 총무가 된 경숙이 언니가 총대를 맸다. ㅠㅠ

대신 지하층 남자 세입자에게는 승우가 가서 얘기하기로..


그리하여 어젯 밤, 정화조 고지서와 산정 기준표를 들고 B01호에 다녀온 승우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문을 뚜드리고, 여차여차 이러이러하니 만오천원을 내달라고 차분하게 설명했더니 B01호 남자는 대뜸


"싫은데요."


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1년 전에 정화조비 내라고 아랫집 할머니가 하도 난리를 쳐서(얼마나 들들 볶였을지 이건 나도 이해한다..) 

자기는 이사오자마자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냈고,

내일 이사나가니 더더욱 낼 필요가 없다는 것. (나가는 마당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라고 들림..)

 

필요하면 자기 집 주인에게 받아 내라며

실실 쪼개면서 버티더라나. 이누무 쉐키..


그 사람 입장에선 그런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그래도 니가 싼 똥 값은 내고 가야지..작년에 니가 낸건 너의 전 세입자가 싼 똥 값이었잖아!!! 차라리 그걸 집 주인에게 받아내!!'


'너는 떠나 버리고, 집주인도 안내겠다고 버티면 우린 어쩌라고?'



..라고 퍼부어 주고 싶었으나 이미 때늦은 생각. ㅠㅠ


집 주인에게 말해놓겠다곤 했는데, 과연 전달이나 했을지

전달했어도 집주인이 "내가 싼 것도 아닌데 왜 내냐" 배째라고 나오면 어떡하지.


그까짓 15000원 남은 세 집에서 나눠서 내자고 할까 싶다가도

남이 싸고 간 똥값을 왜 내가 치우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억울해 진다.


다른 것도 아니고, 똥이라 자꾸 더 이런 생각이 드는 걸지도..ㅠ_ㅠ


전출입이 잦은 다른 공용주택들은 대체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건가효.


매거진의 이전글 폭설 온 다음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