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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 Apr 27. 2024

회사 점심시간은 양치 시간 포함일까?

우리 회사의 점심시각은 12시부터 1시까지다. 

사실 좀 짧다는 생각이 들지만, 하루 8시간의 업무 시간을 채우려면 9시까지 출근하여 12시부터 1시 30분까지 점심시간을 갖고 6시 30분에 퇴근하는 것보다 짧은 점심시간을 보내고 6시 칼퇴를 하는 것이 더 좋긴 하겠다.


어쨌든, 대부분의 직원들이 12시가 되면 밥을 먹으러 나간다. 조금 뭉그적 대다 보면 5분이 훌쩍 지나고, 같이 밥 먹으러 가는 직원 중에, '엘베 기다리는 동안 화장실 좀' 혹은 '먼저 내려 가요~'라고 말하고 화장실로 뛰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매정하게 그냥 갈 수가 없어서 그를 기다리다 보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기까지 족히 10분은 소요된다. 


올해부터 회사에서 지급하는 식권을 사용할 수 있는 식당은, 회사 바로 건너편 건물이다. 뷔페식 한식당. 흔히들 '함바'라고 부르는 곳이다. 근처 다른 회사 직원들이 무리를 지어 삼삼오오 모여든다. 주변에 공장이 많은지 대부분 남색 점퍼를 입은 사람들인데 식판을 향해 줄 지어 서 있는 모습이 마치 개미떼처럼 보인다.  그 개미의 무리에 후다닥 줄을 선다. 그리고 잠깐의 수다시간. 식판을 기다리며 나누는 대화는 사실 별 이슈가 없다. 대부분 흘깃 바라본, 다른 이의 식판 위에 올려진 '오늘의 반찬'에 관한 궁금증이거나 누군가의 의상에 관한, 영혼 없는 칭찬의 말들이다.


식판줄은 흑미밥 줄과 백미밥 줄로 나뉜다. 흑미밥 줄이 훨씬 더 긴데,  나도 한결같이 흑미밥이다. 그냥 허여멀건 흰 밥보다 괜히 맛있어 보인다. 그런데 간혹 생각지 못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줄이 짧은 백미 줄에 서서는 주걱을 잡는 순간 손을 뻗어 흑미밥을 퍼 담는 '예의 없는'사람. 그런 광경을 목격하면 어이가 없어 한소리 하고 싶지만 참는다. 


어쨌든, 채식주의자인 나로서는 밥 다음 놓여있는 육류를 패스해야 하는데, 앞사람들이 욕심내어 그득 육류를 담아내는 동안, 그들을 건너뛰고 야채 반찬으로 먼저 갈까 매번 고민을 하다 차마 그러 질 못하고 인내심 있게 기다린다. 


육류는 모르겠지만, 이 식당은 튀김과 연근 조림, 새우 마늘쫑 볶음 같은 밑반찬 맛집이다.  이런 반찬들이 나올 때면 나도 욕심껏 담아본다. 마지막으로 국을 받아 들고 회사 직원들이 줄줄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가 앉으면, 대부분 개중에 가장 빠르게 먹는 사람의 속도를 쫓아 먹게 된다. 


밥을 늦게 먹는 타입도 아닌데, 쫓기듯 밥을 먹는다. 아니 어쩜 그들은 밥을 마시는 건가. 속도가 어지간히도 빠르다. 목구멍에서 밥과  반찬을 밀어 넘기기 바쁘게 꾸역꾸역 다음 밥과 반찬을 밀어 넣다가, 누군가가 다 먹고 잔반을 한데 모으는 광경을 보게 되면, 그냥 그만 먹고 싶다는 생각에 이른다. 


목이 콱 막히고, 그닥 밥에 욕심이 나지 않는다. 사실 밥을 먹을 때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꾸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고갤 끄덕이는 정도의 액션만 취하는 편이다. 그렇지 않고선 밥 먹는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다. 줄줄이 일어나 식판을 정리하고 물 한잔 마시고 나면 30분 전후다. 와~ 대단하다. 밥을 먹는데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꾸역꾸역 밥을 먹었으니 속이 편할리 없다. 비바람이 불지 않는 한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단골 커피숍으로 간다. 이사님이라도 만나면 얻어먹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누군가가 결제해주길 바라는 눈치다. 그런 눈치 보는데 익숙지 못한 나는 찰나의 침묵을 견디지 못해 먼저 카드를 키오스크에 꼽곤 한다. 가끔은 내가, 자선을 하려고 이렇게 일을 하는 건가. 현타가 오기도 한다. 


단골 커피숍은 작은 가게인데 반해 손님이 많다. 여기서 음료를 주문하고 내 것을 받아 들면 50분이 가까워진다. 여유롭게 커피를 한잔 마시며 수다 떨 시간은 없단 얘기다. 천천히 음료를 들고 마시며 걷다 보면 1시 땡 하고 회사에 도착한다. 


이렇게 여유로운 듯 여유롭지 않은 듯한 한 시간의 점심시간이 끝나면, 고민의 순간을 맞닥뜨린다.


양치를 하러 가도 될까?


하필, 대표님 자리와 대각선에 놓인 내 자리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점심을 잘 거르는 대표는 높은 파티션에 위로 동동 하얀 머리칼만 보이며 앉아 있다. 그 하얀 머리가 눈치를 보게 만든다. 


1시가 되기 몇 분 전이라면 양치를 하러 가지만, 1시를 조금이라도 초과해 자리에 돌아온 날은 망설여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궁금증이 생겼다. 회사의 점심시간이라는 건, 양치 시간까지 포함된 것일까.  



AI에게 물어봤다. 명확하게 규정 돼 있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AI는 5분 정도의 시간을 제안했다. 회사 점심시간에 양치를 할 때 5분을 기준으로 상황에 맞게 조절하기, 그리고, 빠르게 칫솔질할 수 있도록 소프트한 칫솔을 권하기도 했다. 


2019년 한 대기업 임원이 점심시간 외의 시간에 양치하는 것을 금지한 적이 있으나 이것은 개인의 의견일 뿐이라며 회사의 규정 및 팀 관습에 따라 조절하라고 귀띔해주기도 하고. 하하.


우리 회사 규정을 살펴보니, 점심시간에 '양치시간'을 포함한다는 규정은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직원들이 1시 전후로 양치를 한다. 그래서 나는?


그날그날 분위기에 따라 다르긴 한데, 대표님의 하얀 머리카락에 좀 심하게 눈치가 느껴지는 날이나, 점심시간을 살짝이라도 오버 한 날에는 바로 양치를 하러 가지 않는다. 그럼 어떡하냐고? 


일을 시작하고 2시가 가까워지면 화장실을 가고 싶은 순간이 온다. 그런 때 조용히 칫솔을 들고나간다. 그리고 다소 여유롭게 양치를 한다. 눈치챘겠지만, 소심한 직장인의 땡땡이 순간이다. 


양치 인파로 붐비던 세면대도 한산하고, 무엇보다 혓바닥을 마음껏 씻어낼 수 있어 좋다. 줄줄이 치카 행렬이 있을 때는 아무래도 혀를 내밀고 닦아내는 게 민망하더라. 여유롭게 볼일을 보고, 양치를 하고 거울도 한번 바라보고, 가끔은 사무실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셀카도 한 번씩 찍어본다. ( 액세서리를 나눠주길 좋아하는 친구가, 나눠준 액세서리를 착용했을 때 선물해 준 친구 보람 되라고 나는 착용샷을 선물로 남긴다) 그러다 보면 AI가 권한 5분의 시간은 지나지만 그렇다고 10분 이상 소요되진 않는다. 또, 답답하고 나른하던 상태도 환기가 되고 말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나는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급하게 양치를 하는 것보다, 일하던 중간 양치를 하러 가며 나름의 땡땡이시간을 보내는 걸 선호하게 됐다. 꾸벅꾸벅 졸거나, 졸음을 쫓으려 안간힘을 쓰느라 업무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보다, 여유로운 양치로 잠깐 땡땡이 시간을 갖는 편이 훨씬 업무 효율을 높인다는 생각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양치 시각은 언제인가? 회사 점심 시각에 양치 시간이 포함된다고 생각하는가? 혹은 양치 시간은 별개라고 생각하는가? 점심의 칫솔질은 귀찮아 건너뛰는 편인가? 


어쨌거나, 자신만의 양치 시간을 찾자. 땡땡이는 적당히. 모두의 슬기로운 직장 생활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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