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보내고
비슈케크의 여름은 유난히 덥고, 느리게 흐른다. 이른 새벽부터 떠오른 해는 저녁 아홉 시가 다 되어야 자취를 감춘다. 어둠이 찾아오고도 식지 않는 더위에 매일밤이 열대야다. 그런 여름, 방학을 맞거나 파견 기간이 끝난 지인들은 하나둘 떠났고, 나는 그 속에 남겨진 채 무기력함과 싸우고 있다. 휴직한 지 벌써 일 년 반이나 지났다. 그 기간 동안 특별히 이루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던 것도 아니지만 이 정도로 한 게 없을 줄이야. 한국에서는 꾸준히 쓰던 일기마저 놓아버린 지 오래니 당장 지난주에 뭘 했고 지난달에 무엇을 했는지조차 기억해 내기가 어렵다. 이따금씩 공허해지는 요즘이다.
그러던 중 깜짝 소식을 들었다. 친구 부부가 갑자기 한국에 갔다는 소식. 미리 계획한 것도 아니었는데 갑작스럽게 그리 됐다고 한다. 친구는 결혼하고 키르에 온 지 3년 정도 되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곳의 삶에 만족해했었다. 그랬는데 돌연 한국행이라니. 연락을 해보니 잠시 바람 쐬러가 아니라 최소 1년 정도 머물 예정이란다. 벌써부터 키르가 그리워져서 꼭 돌아올 거라는 그녀의 말, 당연히 조금도 의심하지 않지만 어쩐지 씁쓸했다. 키르를 너무 좋아해도 이곳에서 살아가는 게 녹록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녀만큼 키르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어쩐담.
유일한 또래 부부였던 그들이 떠난 여름은 더 길고 더 무덥게 느껴진다. 그녀는 벌써 키르가 그립다는데, 나는 지금 이곳이 무료하고 심심하기만 하다. 그녀가 그리워하는 키르는 대체 어떤 키르인 것일까? 답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키르를 떠나고 싶거나, 한국을 가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비슈케크의 여름이 잠시 권태로워진 것뿐인지, 아니면 남몰래 힘들게 견디고 있는 건지.
지난날에는 늦잠을 자느라 러시아어 수업을 빼먹었다. 심지어 수업료도 내야 하는 날이었는데. 눈을 떠보니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야 할 시간이었다. 허둥지둥 선생님께 연락을 드리고 나니 허탈감이 몰려왔다. 유일한 스케줄이거늘 그것 하나 소화를 못하나 하는 자괴감도 함께. 소파에 기대 짜증스럽게 발차기를 해대는 나를 보더니 남편은 웃었다. “그래도 잘 잤나 보네.” 거울 속 나는 정말이지 평소보다 개운해 보였다. 선생님의 답장이 도착했다. “걱정하지 마. 괜찮아. 다음 주 월요일에 보자.” 나만 허탈한 건가 싶게, 별일 없었던 것처럼 하루가 흘러갔다.
이 뜨거운 여름 속에서도 사람들은 굴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간다. 인파에 섞여 그들과 함께 걸으면서도 어쩐지 나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게 신경 쓰여 조바심이 난다. 조바심이 나는데 방향을 정하지도 못하고 있어서 더 미치겠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늦잠 속에도, 허탈한 마음속에도, 모두가 떠나버린 여름 속에도 내가 여전히 이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편 말이 맞다. 복직을 하게 되면 분명 이 여름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어디로도 가지 않았지만, 계속 걸었던 이 여름을. 무기력했어도 됐던 이 여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