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일 뿐
아침 10시 34분. 생일날 아침이었다. 눈을 떴지만 침대에서 좀 더 미적거렸다. 암막 커튼이 쳐진 방에서 잠금해제된 핸드폰 화면만이 내 얼굴을 비추었다. 화면 아래 카톡 알림이 눈에 띄었다. 알림 수만큼 마음이 무거워졌다. “생일 축하해!” “행복한 하루 보내길 바라 :)“ 이런 다정한 말들이 기다리고 있을 걸 아는데도 말이다. 메시지에 하나하나 답장해야 하는 다음 수순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생일이란, 언제부터 그런 날이 되었다. 축하를 받는 기쁨보다 부담스러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날. 그래서 잠수를 타고 싶어지는 날.
기쁜 생일날 왜 잠수를 타고 싶어지는 걸까. 생각을 해보면, 주목을 받는 게 힘들어서인 것 같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부끄럽고 부자연스러운데, 어느 하루의 주인공이 된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한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마지못해 생일주인공의 자리를 버틸 때도 당연히 있었다. 이를 테면, 담임을 맡은 반 아이들이 깜짝 생일파티를 준비해 줄 때처럼. 일찍 등교한 프로 지각러를 복도에서 마주치면 조회 전까지 교무실에서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그리고 조회 시간에 맞춰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머 어떻게 알고 준비했어. 너무너무 고마워~~”하며 기쁨의 손사래를 쳤다. 약간의 멋쩍음을 숨기고 능청스러운 연기를 선보이는 나였다.
정말 혼자 동떨어져 보낸 생일도 있었다. 2017년 베를린에서의 생일. 당시 혼자 여행중일 때라 가족도 친구도 곁에 없었다. 외롭지 않겠냐며 걱정하는 목소리들도 있었지만 정작 나는 설렜다. 생일날 일탈을 하는 기분. 날이 밝자마자 가족들과 남자친구(현남편)에게 생존신고를 하고 나머지 축하 연락은 미뤄둔 채 오로지 나만을 위한 하루를 보냈다. 필요한 건 아주 소소했다. 그저 과자 몇 봉지와 <효리네 민박>. 케이크도 미역국도 필요가 없었다. 베를린에서 그날이 내 생일인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말 그대로 오롯이 혼자 보낸 생일이었다. 어찌나 평온하고 고요했던지 이따금씩 그립기도 하다.
올해 생일도 그러면 좋겠어서 남편에게 둘만의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미리 이야기를 했다. 과연 2017년의 고요함을 재현할 수 있을까.
햇살 드는 거실로 나가니 남편이 없었다. 부엌에서 사부작사부작 소리가 들렸다. 쌀 씻는 소리, 밥솥 설정하는 소리, 가스레인지 켜는 소리로 분주했다. 나를 졸졸 따라온 고양이가 발치에 앉아 ‘야옹-’했다. 이 작고 귀여운 생명체는 오늘이 내 생일인 줄도 모르고 어제처럼, 그제처럼 밥타령을 하고 있었다. 귀여워. 어제처럼, 그제처럼 집사의 역할을 다하고 소파에 앉았다. 고요하고 따사롭고 평온한 게 남은 하루도 이 같았으면, 싶었다. 핸드폰은 방구석에 던져두고 우리끼리 꽁냥 거리다 하루가 다 가도 좋겠다, 싶었다. 밀린 답장은 내일 하면 되지 않을까.
갑자기 주방 문이 열리더니 미역국 냄새와 함께 남편이 빼꼼 나왔다.
‘자기야. 카톡 확인했어? 엄마가 용돈 보내주신 거 같던데.‘ ‘아, 확인할게.’ 갑자기 현실로 소환되었다. 그렇다, 답장은 내일로 미룰 수 없었다.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 중에 시부모님께서 보내신 메시지가 있을 거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다. 재빨리 고양이가 깔고 앉은 핸드폰을 찾아 카톡 앱을 실행했다.
’그리고 이따 오후 5시쯤 부모님이랑 영상 통화 괜찮아?’ ‘일단 엄마는 언제 괜찮은가 물어볼게. 양가 부모님 겹치지 않게 조정을 해보자.’ 또 부정할 수 없는 현실. 결혼을 하면 가족과의 시간을 최우선적으로 챙겨야 한다는 사실. 남편과의 시간뿐만 아니라, 친정부모님과의 시간, 시부모님과의 시간까지 항상 공평하게. 지금은 영상통화로 대체되지만 한국에 들어가면 따로따로 식사를 하게 되려나. 생일이 더 바빠지겠다.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기 전 남편이 마지막 한 발을 날렸다. ‘그리고 00께서(남편의 지인 분) 자기 생일이라고 같이 저녁 먹자고 하시는데 오늘이나 내일 저녁 어때?’ ’엥? 그렇게까지 챙겨주실 필요는 없는데. 감사하긴 한데, 좀 부담스럽네.‘ 며느리뿐만 아니라 남편의 아내로서도 축하를 받게 되는구나.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지만 친절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다. 생일 당일 저녁은 양가 부모님들과 여유 있게 통화를 하고 식사자리는 다음날 갖기로 했다.
남편의 순수한 3 연타에 나의 현재가 실감되었다. 눈 뜨자마자 느낀 부담은 갑자기 너무 작은 것이 되어 있었고 차라리 7교시 내내 학생들의 축하를 받는 게 더 쉬울 것 같았다. 능청스러운 선생님이 되기까지 10년이 걸렸는데 그런 며느리이자 제수씨가 되려면 또 몇 년이 걸릴까. 그 롤에 익숙해져 가길 바랄 수밖에 없다.
그건 그렇고 일단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잠수를 타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