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정기적 외출 (1) 요가

삶의 노를 찾아서

by 바미

월요병, 출퇴근은 더 이상 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없는 삶이 시작되었다. 일어나면 간단히 집안일을 하고 소파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무슨 드라마를 정주행 했는지 혹은 남편과 만들어먹은 저녁 메뉴가 무엇이었는지 정도가 유일한 에피소드가 될 만큼 깨어 있는 15시간은 단조롭게 흘러갔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로 있다 보니 창밖 하늘의 색깔로 혹은 남편이 현관문을 여닫는 소리로 시간의 흐름을 알아차릴 뿐이었다. 휴직은 그런 것이었다. 자유와 권태로움의 망망대해에 두둥실 떠 있다 보면 어느새 일주일이 흘러 있는. 누군가는 그 여유를 누리라고 했지만 내게는 무기력에 가까웠다.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킥이 필요했다.



마음에 드는 요가원을 찾은 건 3월 중순, 그러니까 신혼집에 이사를 오자마자였다. 지도에 저장을 해두고는 한 달 정도 인스타그램 피드만 들락날락했다.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모든 게 낯설 것 같았다. 요가를 등록한다는 것은 마트에 가서 물건을 계산하거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정기적으로 출석하다 보면 어떤 관계가 형성되고 자연스러운 소통을 하게 될 텐데 나는 러시아어를 거의 못하지 않는가. 남편도 없이 나 홀로 그곳에 걸어 들어가는 순간 바로 외딴섬이 될 것 같아 두려웠다. '에라 모르겠다.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집을 나선 건 4월 중순이 되어서였다.


요가원 ‘Ёga hall’은 비슈케크 시내에서도 고급 카페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에 있었다. 집에서는 도보로 40분 거리. 부쩍 따뜻해진 4월의 한낮은 걷기 좋았다. 키 큰 가로수가 드리운 그늘을 따라가다 나뭇잎 사이로 만나는 햇살은 거실 소파에서 맞는 햇살보다 훨씬 따사롭고 다정했다. 카페테라스들을 지나 주상복합 아파트의 상가 2층으로 올라가니 요가원 입구가 나왔다. 회색의 두꺼운 철문을 열고 들어서니 리셉션 직원이 "즈드라스트부이쩨(안녕하세요)"하고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그녀를 향해 웃어 보이며 나도 "즈드라스트부이쩨"했다. 신발을 벗어 벽면의 신발장에 가지런히 올려두고 리셉션 데스크까지 살금살금 걸어갔다. 직원이 노트북에 회원 정보를 입력하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데스크 뒤로는 요가 매트, 요가복, 인센트 스틱과 홀더 등을 진열해 둔 장이 있었다. 데스크 맞은편에는 탈의실로 들어가는 문이 두 개 있었고 문 사이의 작은 탁자에는 인센스 스틱이 조용히 타고 있었다. 소란스럽지 않고, 요란스럽지도 않은 정갈한 공간이 벌써 마음에 들었다.


12회에 4000 솜(한화로 6-7만 원)인 5주 회원권 등록을 마치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캐비닛 대신 책장 같은 선반과 행거들이 벽을 따라 나란히 서 있었다. 이미 걸린 옷가지들을 보니 7명 정도가 이미 도착한 듯싶었다. 수련장 문을 열고 직사각형의 너른 홀로 들어섰다. 마주 보는 짧은 면에는 큰 창이 달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통하고 있었다. 그리고 긴 면을 따라서는 사람들이 요가 매트를 펴고 앉아 있었다. 그중 문가에 앉아 있던 분이 멀뚱히 서 있는 나를 보시더니 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꾸벅, 인사를 하고 벽에 걸린 매트를 꺼내어 빈자리에 자리 잡았다. 선생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아쓸’이라고 소개하시더니 앞쪽에 앉은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했다. "미냐 자붓 —(제 이름은 --입니다)" 오 마이갓. 그렇게 한 사람씩 자기소개를 하는 게 아닌가. 뭐라고 말해야 하지, 속으로 우왕좌왕하는 동안 내 차례가 되었다. “미냐 자붓 OO(제 이름은 OO입니다). 야 이즈 까레아(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야 니 빠니마유 루스키 이짘(저는 러시아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잔뜩 쑥스러워하며 말하자 선생님도 웃고 수련생들도 웃고 나도 웃었다. 서툴게나마 자기소개한 것만으로도 그룹의 일원이 된 것 같은 안도를 느꼈다.


첫 수업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꾸준히 출석했다. 24시간이 자유인 나는 어느 수업이든 들을 수 있었지만 괜히 다른 수업에 갔다가 자기소개를 또 하게 될까 봐 아쓸 선생님 수업만을 고집했다. 그러다 하루는 혼자만 출석을 하여 1:1 수업을 받게 되었다. 수련에 앞서 선생님은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셨다.

- 요가를 한 지 얼마나 됐나요? - 예전에 2-3년 정도 했어요.

- 어디서 요가를 했나요? 집? 스튜디오? - 스튜디오에서 했어요.

- 비슈케크엔 언제 왔나요? - 3월에 왔어요.

- 여기서 일을 하나요? 학생인가요? - 저는 집에 있어요. 남편만 일을 해요.

- 여기에 얼마나 머물 건가요? - 2년 정도 있을 거예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다. 겨우 아는 단어들을 조합해 단답식의 답변을 했을 뿐인데도 선생님과 더 친해진 것 같았다. 등록한 12회가 채워질수록 수련생들에게도 내적 친밀감이 생겼다. 옆자리에 앉으면 “즈드라스트부이쩨(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고, 탈의실에서 나올 땐 "다 스비다니야(다음에 또 만나요)" 인사를 건네는 사이. 리셉션 직원과도 가까워졌다. 이름에 더해 회원 번호까지 외워주는 세심함에 나도 마음을 얼고 다가갔다. 요가원의 사람들과 연결된다고 느낄수록 요가원은 더 이상 낯선 곳이 아니었다.


이후 2번 더 재등록을 했다. 요가원 자체에 유대감이 생기자 아쓸 선생님 수업 외에도 다양한 시간대의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언어의 장벽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예전만큼 주눅이 들지 않았다. 선생님의 티칭을 놓쳐 동작을 잘못하고 있으면 이내 내 시야에 선생님의 두 발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자세를 고쳐주시고는 호흡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려주시는 보살핌에 의지할 수 있었다. 데스크 직원들은 외국인 회원이 혹시나 전달 사항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봐 메모지를 따로 건네기도 했다. 12회 만료일이 언제인지 적힌 포스트잇을 보고 달력에 날짜 체크를 하다가 피식 웃음이 나곤 한 건 그들의 챙김이 고마워서였다.


요가를 시작하고 한동안은 요가를 중심으로 시간이 흘러갔다.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없던 일주일은 외출 일정이 있는 평일과 그렇지 않은 주말로 나뉘었다. 그리고 평일은 다시 요가를 가는 월, 수, 금과 안 가는 화, 목으로 나뉘었다. 세상과 동떨어진 듯했던 나의 하루가 요가를 시작하면서부터 남들과 같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것이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요가가 휴직 생활의 모든 권태로움을 해결해주진 않았지만 요가 덕분에 무의미하게 흐르던 시간들을 조금씩 붙잡을 수 있었다. 지금의 휴직 생활은 그때에 비해 어떠하냐고 누가 묻는다면 '여전히 망망대해에 있는데 지금은 노를 젓고 있어요.'라고 답할 것 같다. 그리고 요가를 시작한 것이 노를 잡는 첫 시도였다.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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