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의 만족
“어머, 커튼이 저게 뭐야!”
시부모님과 영상 통화를 하던 중에 화면에 잡힌 거실 커튼(커버 사진 참고)을 보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어떻게 저렇게 촌스럽니.”
네, 그러니까요 어머니. 어쩜 저리도 촌스러울까요. 거실 커튼이 잠깐 스치듯 봐도 충격적으로 촌스럽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이 집의 촌스러움은 벽지마다 가구마다 묻어 있어서 놀랍지도 않다. 덜 촌스럽게 애를 써볼 것인지, 그냥 살 것인지를 두고 고민한 시간들이 왜 없었겠는가.
신혼집을 급하게 구했다. 결혼식을 준비하고, 출국 준비를 하는 와중에 어찌어찌 운이 좋아 지금의 집을 계약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던 집주인 부부는 원화로 월세를 지불할 수 있는 한국인 세입자를 선호했다. 우리는 출국 3일 전 그들을 만나 영상으로 집의 상태를 살피고, 1년 치 월세를 한 번에 지불하는 조건으로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에 계약했다. 도보 10-15분 내로 쇼핑몰, 공원, 도서관 등이 있고 무엇보다도 남편의 사무실과도 가까워 위치적으로나 가격적으로나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키르에 와서 보니 …
입주를 한 것은 키르에 도착한 지 열흘 만이었다. 처음에는 우리 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이 그저 좋았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아직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짐을 정리하고 빨래를 돌리고 커피 한 잔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갔다. 1주일쯤 지나니 거실에 공간이 생겨 캠핑 의자를 펴고 앉았다. 노래를 들으며 우리의 신혼집을 감상했다. ‘이게 무슨 호사야’ 싶은 것도 잠시 집의 못난 점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벽지와 커튼이 너무 촌스럽다. 2000년대 초반 한국에 유행했을 법한 무늬들의 향연.
수납공간이 부족하다. 붙박이장은 너무 작고 서랍장, 신발장 등의 수납 가구는 아예 없다.
전자레인지가 없다. 요리 초심자에게 필수인 가전제품이 없다.
소파가 없다. 집순이 필수품.
집주인한테 이야기하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8년 전에 직접 경험하기로도 그렇고,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그랬으니 말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전자레인지, 서랍장, 소파 등 필요한 것을 전달했는데 웬걸, 우리의 집주인은 다 안 된다고 했다. 우리와 반반씩 지불하여 구입하는 것은 어떠냐고 했더니 그도 안 된다고 했다. 월세가 싸기 때문이라 했다. 월세가 파격적으로 싼 것은 맞았다. 78 제곱미터의 신축 아파트를 시내 중심가에서 구하려면 월 700-800달러가 훌쩍 넘을 텐데 우리는 월 500 달러에 계약을 했으니 말이다. 아, 나는 그 가격에 모든 것이 빌트인 된 아파트를 기대한 것인데 동상이몽을 한 셈이었다.
가구를 살지 말지 고민이 되었다. 아니, 불편함을 감수하기 싫으면 사는 건 당연한 건데 그렇게 해야만 하는 상황이 짜증이 났다. 남편은 집주인의 입장을 이해한다 했지만 그렇다고 내게 이해를 강요하진 않았다. 내 볼멘소리를 들어주고 들어주고 또 들어줄 뿐이었다. 집주인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아니꼬워하던 주변 사람들도 월세가 500 달러라 하면 ‘아….’라고 하는 걸 여러 번 보고 나서야 내가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납득했다. 결국, 가장 필요한 것들만 몇 가지만 사기로 했다. 당장 옷을 넣어야 하는 옷장, 욕실 비품들을 넣어둘 서랍장, 소파 이렇게 세 가지. 그중 옷장은 남편의 친구분께서 결혼선물로 해주시겠다고 하여 감사하게 받았다. 서랍장과 소파는 직접 손품, 발품을 팔았다. 낮에는 이 시장 저 시장으로 발품을 팔고 다니고 밤에는 lalafo라는 쇼핑사이트를 끝도 없이 뒤졌다. 이왕 살 거 가성비 좋은 걸로 잘 따져보고 싶었지만 그런 건 없었다. 조금 괜찮아보이는 것들은 한국과 비교해 너무 비싼 데다가 비싼 만큼 예쁘지도 않았다.
밤잠을 설쳐가며 스트레스받아하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말했다. 한국이랑 비교하면 속만 더 쓰릴 거라며, 키르에 온 이상 키르 식대로 살아야 마음이 편할 거라 했다. '가성비를 따지지 말고, 80%만 되어도 만족해라. 결국 욕심을 부리면 스스로만 괴로워질 뿐이다.' 남편도 그들 말에 동의했지만 나를 나무라는 대신 그저 옆에서 밤낮으로 손품 발품을 팔아주었다. 나도 그도 지쳐갈 때쯤 서랍장을 구매했다. 4단짜리 플라스틱 서랍장을 2500 솜, 한화 4만 원 주고 샀다. 쿠팡에서 3만 원 이내면 디자인도 내구성도 훨씬 좋은 것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속이 쓰렸다. 소파는 외곽의 작은 공장에 직접 방문해 주문했다. 아이보리 색상의 ㄱ자 3인용 패브릭 소파의 가격은 23000 솜, 한화 35만 원 정도였다. <오늘의 집>이나 <네이버 스토어>에서 20만 원 안팎이면 구할 수 있는 퀄리티임을 생각하면 돈이 너무 아까웠다.
결과적으로 서랍장과 소파는 잘 쓰고 있다. 마음에 쏙 든다기보다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마음으로 80%만 만족한 채로 말이다. 신발장과 전자레인지는 없는 대로, 벽지와 커튼은 못 본 척 지내고 있다. 100%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으니 흐린 눈 하기가 수월해졌다. 집에 대한 불만은 얘기하지 않지만 집에 만족하냐는 질문에는 여전히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유튜브나 <오늘의 집>에 소개되는 예쁜 집들이 여전히 부럽고, ‘예산 00원으로 꾸민 집’ 같은 제목을 보면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왜 키르에서는 그 값에 그렇게 꾸밀 수가 없는지 한탄스럽다. ‘한국이었다면 이보다는 더 예쁘게 꾸미로 살았을 텐데’로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진 않는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도 100%는 누리기 어려웠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애초에 우리가 가진 돈으로 이만한 위치, 이만한 크기의 집을 구할 수 없었을 거다. 좁은 집에 살기 위해 또 다른 타협을 하며 80%에 만족하지 않았을까.
결국, 어디서든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못 가진 것에 배 아파하지 말고, 가진 것을 누리고 살기로 했다. 집 근처 공원을 자주 산책하고, 널찍한 방에서 홈요가를 하고, 창밖의 멋진 풍경을 틈틈이 눈에 담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소파에 앉아 집 안을 둘러보는 대신 창 밖을 내다본다. 동틀 녘과 해 질 녘의 불그스름한 하늘을, 한낮의 설산을 보고 있으면 포기한 20%가 아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