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결혼을 했다. 그리고 떠났다.

키르기스스탄으로.

by 바미

2024년 1월, 남자친구와 나는 어느 예식장에서 상담을 받고 있었다. 식장 투어의 일환도 아니었고 '식장에 상담이나 한 번 받으러 가보자' 해서 방문한 곳이었다. 별안간 신랑님과 신부님이 된 우리는 실장님의 안내에 따라 홀과 연회장, 신부 대기실을 둘러보았다. 건물 전반적으로 층고가 높아 탁 트인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주차장과 이동 동선도 빠르게 훑었다. 식장이 우리 동네에 위치하고 있긴 했지만 남자친구 본가에서도 그리 멀지 않아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었다.


"혹시 1, 2월에도 예약 가능한 시간대가 있나요?"

"2025년 1, 2월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올해 2024년 1, 2월이요. 이번 달과 다음 달이요."

"네, 물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예상했던 것보다도 선택지가 많았다. 그 자리에서 양가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날짜를 조율했다. 식장에 상담을 간 줄도 모르고 계셨던 남자친구 부모님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가 깜짝 놀라 달력을 뒤적여 보셔야 했다. 그렇게 결혼 날짜가 정해졌다. 6주 뒤, 2월의 어느 토요일 저녁. 실장님은 식을 서두르는 이유를 조심스럽게 여쭈어보셨다. 우리는 웃으며 대답했다. 선물이 찾아온 것은 아니라고. 그저 이 롱디의 종지부를 얼른 찍고 싶을 뿐이라고.


이 모든 것은 갑작스럽지만 또 갑작스럽지 않은 결정이었다. 아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다음 달 결혼하겠다 발표한 것은 갑작스럽긴 했다. 결혼 언제 할 거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 대답했던 많은 순간들이 있었으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건대, 계획은 정말 없었다. 결혼 이후의 삶을 종종 그려보았을 뿐이다. 동반 휴직을 해서 잠시 한국을 떠나 있는 나. 비로소 8년 롱디를 끝내고 함께 붙어 있는 우리. 영영 점선으로만 남을 것 같던 이 그림은 12월 남자친구의 갑작스러운 귀국과 함께 조금씩 선명해져 갔다. '그림을 완성할 거라면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식장을 방문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착착 진행된 것은 어쩌면 그것이 필연이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결혼 준비는 레퍼런스 없이 시작됐다. 유튜브에도 블로그에도 나의 검색력이 닿는 그 어느 곳에도 40일 만에 결혼식을 준비한 커플은 없었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신기록을 세우자는 마인드로 달렸다. 셀프 촬영, 청첩장 제작, 본식드레스 피팅, 신랑 정장 맞춤, 웨딩링 맞춤, 양가 어머니 한복 대여, 사회자와 축가자 섭외, 식전 영상 편집, 식순 및 대본 정리. 공주놀이에 큰 로망이 없어 스튜디오 촬영과 드레스 투어, 신부 관리 마사지 등을 생략했지만 여전히 신경 쓸 것이 많았다. 그 와중에 동반 휴직을 위한 준비도 해야 했다. 혼인 신고와 서류 제출. 생각보다 서류 준비가 쉽지 않아 애를 먹었다. 마지막으로 양가 친척들을 찾아뵙고 청첩장 모임까지. 방학이었기에 소화할 수 있는 일정이었다.



마침내 2월 24일. 창문에 빗방울이 굴러 떨어지던 토요일 저녁,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뒷정리를 모두 하고 나와 주차장에서 한동안 숨을 골랐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몸이 해체되는 것 같았다. 이제 남편이 된 그는 손이 떨린다고 했다. 다시금 큰 숨을 들이쉬고 힘내자 서로를 격려하며 출발했다. 결혼식은 끝났지만 우리의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기에. 결혼 후에도 각자의 본가에서 지냈기 때문에 일상에 특별한 변화가 느껴지진 않았다. 무엇보다 출국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건강 검진, 방 정리, 짐 싸기. 와중에 짬을 내어 양가 부모님들과 함께 강원도에 1박 2일 여행도 다녀왔다. 떠날 준비를 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멀리 내다보지 않고 그날 내딛는 한 발짝 한 발짝에 최선을 다했다. 출국 당일 공항에서 눈물의 이별 인사를 할 때까지도 앞으로의 결혼 생활이 어떨까, 하는 것에 대해 상상해 볼 틈이 없었다.


알마티 공항을 거쳐 총 8시간을 날아 키르기스스탄에 도착했다. 마나스 공항 입국장에 들어서는 것이 벌써 네 번째였다. 우리가 '함께' 입국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나라의 공기가 전혀 새롭게 느껴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여자친구였던 시절 놀러 와서 지냈던 것과 비슷한 나날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안다고 여겨지니 걱정이 없었다. 걱정이 없으니 준비도 대비도 없었다. 그렇게 나의 결혼 생활이, 해외 생활이, 휴직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