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왜 삶을 이어가는가

<마치며>

by 나이트 아울

한 달 동안의 짧은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저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주 7일을 일하게 하고 주말 근무수당은 '0원'으로 기재한 급여 명세서도, 퇴근하면 전화로 갈구는 취미를 가진 직장상사도, 제가 혼날 때마다 그 밑에서 낄낄대며 야구처럼 점수를 매기던 상사의 똘마니도 아니었습니다. 나이가 적지 않다 보니 세상 어디에나 한심하고 형편없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보내면서도 만족감이나 즐거움은 전혀 느낄 수 없던 하루 그 자체의 공허함이었습니다. 한 달에 100만 원정도 벌 때는 사회의 평가가 어떤지와 무관하게 하루의 대부분이 내가 원하는 일로 채워 넣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직장이라는 곳에 들어가는 순간 그 모든 것을 대체하는 것은 100만 원보다 많은 돈 하나였는데 그것은 제 욕망이 향하는 지점에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작 많은 급여(상대적으로)를 손에 넣었을 때에는 그것으로 실현할 수 있는 욕망보다 하루라도 그곳에서 나오고 싶은 생각이 더 절실했고, 지금 돌이켜 보아도 일을 그만두고 나서의 삶이 훨씬 나은 삶이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당분간 저는 지금처럼 조금 가진 것으로 자족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삶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어떨 때는 이런 삶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 하루하루를 원하는 것으로 채워 넣는다고 하지만 한 발짝만 떨어져서 보면 완벽히 사회적으로 낭인(浪人)이니까요.



당연히 저도 사람인지라 사회적 시선의 무게에서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선의 무게까지 감당하기에 인생은 너무 짧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숙명은 오롯이 자기 자신의 무게를 견디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인생이 잘 풀릴 때는 자신의 능력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면 운명을 탓하는 모습은 삶의 무게를 짊어지지 않으려는데서 비롯됩니다. 저는 오늘 하루도 낭인으로서 제 삶의 무게를 간신히 이겨냈습니다. 자신의 것도 아닌 욕망에 사로잡혀 윈하지 않는 일들로 하루, 한 달, 일 년을 채워나가는 모습에 회의가 느껴진다면 쉽지는 않겠지만 다른 방향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전 09화9. 신용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