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사니아스 #1
선행과 타인의 행동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여
<이 글은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이 남긴 저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제가 느낀 바를 대화 형식으로 풀어본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모두가 아는 그 소크라테스고 파우사니아스는 아테네의 방범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설정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소크라테스 : 오오! 파우사니아스여, 오랜만에 마주하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현실과 상상들이 그대를 괴롭히고 있는가?
파우사니아스 : 선생님, 오랜만에 인사드리는데 밝은 모습으로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소크라테스 :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게, 자네의 어두움은 내 마음을 걱정스럽게 만들 수는 있어도 상처를 주지는 못할 테니.
파우사니아스 : 선생님은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입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군요.
소크라테스 : 그렇지. 바람 앞에 서 있는 촛불처럼 순식간에 사그라지는 짧은 인생에서 내 인생의 의미와 즐거움을 찾기 위해 매진하기도 벅찬데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며 흔들릴 겨를은 없으니까. 그런데 자네의 말을 들어보니 자네의 표정을 무겁게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인 모양인 듯싶네만.
파우사니아스 : 맞습니다. 선생님, 제가 최근에 방범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다른 동료 두 명이 범인을 잡아서 초소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범인이 매우 사나워서 두 명으로는 다루기가 저는 퇴근을 미루고 두 시간동안 급여를 받지 않고 범인을 처리는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그들의 일을 도왔습니다.
소크라테스 : 오오! 이익과 무관하게 타인을 돕는 선을 실천한 자네의 행동은 나와 신들을 기쁘게 하는군. 그런데 기쁨을 준 자네의 마음에는 왜 슬픔이 자리 잡은 것인가?
파우사니아스 : 제가 그들을 돕고 나서 돌아가는 길에 그중 한 사람과 마주쳤는데 그는 저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그 후에도 마찬가지였고요. 다른 보상을 바라고 도운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감사의 인사를 들을만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는데 말 한마디 없는 곳에 마음이 상하고 말았습니다.
소크라테스: 파우사니아스여, 자네는 선행과 타인의 행동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어서 고통받는 것으로 보이는구먼.
파우사니아스 : 선생님, 제가 어떤 부분을 오해하고 있는지 빛나는 지혜로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소크라테스 : 우리가 대가 없이 남을 돕는 행위를 선행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 자체가 이미 완전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네. 그래서 그 이후에 감사의 표시나 인사가 없다는 것은 이미 행해진 자네의 선행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고 그 가치를 조금도 훼손시키지 못하지. 이미 완전한 것으로 끝나버렸으니까. 이런 결론에 대해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파우사니아스 : 제 행동 자체가 이미 완결되었고 그것이 선행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소크라테스 : 그럼 선행의 의미에 대해서 자네와 나의 의견 차이는 없는 것이구먼. 그다음은 타인의 행동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살펴보자고. 대부분 타인의 행동은 자신의 이익과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게 아니라면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중의 행동일 테고. 이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는가?
파우사니아스 : 네, 확실히 저는 제 감정과 이익에 의해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자네와 같은 인간인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겠지. 자, 그렇다면 자네의 마음에 상처를 준 그 사람 역시 그의 이익과 감정에 따라 행동했을 텐데 그 행동의 결과 자네의 감정이 상한 것 아닌가?
파우사니아스 : 맞습니다. 선생님, 저는 감사의 인사를 하지 않은 것은 무례한 행동이고 그 무례함 때문에 감정이 흔들렸습니다.
소크라테스 : 나는 앞에서 자네가 동의한 대로 사람은 자신의 이익과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본다면 그런 감사의 인사를 하지 않은 행동 역시 그 사람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든 무언가 있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겠나? 설마 무의식중에 감사 인사하는 것을 잊어버리지는 않았을 테니까.
파우사니아스 : 그렇군요. 선생님, 하지만 타인의 도움에 대한 감사 인사는 그렇게 큰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감정이 상하는 일도 아니니 이익과 감정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아도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을까요?
소크라테스 : 바로 그 지점이 자네의 감정을 상하게 했구먼. 자네는 자네가 마주한 상황에서 누군가 당연히 그럴만한 상태와 감정이라고 가정하고, 또 그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듯싶은데 나는 그런 가정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네.
파우사니아스 :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되었습니까?
소크라테스 : 자네는 이 도시를 지키면서 무수히 많은 비(非) 일반적인 상황을 마주하지 않나, 범죄자부터 도덕적으로 끝없이 타락한 자, 자신과 타인 그리고 신조차 존중하지 않는 자 등등. 그런 사람들을 매일 같이 만나는 자네가 어째서 타인에게 ‘일반적’이라는 커다란 착각의 굴레를 씌우게 된 건가?
파우사니아스 : 말씀하신 대로 제가 마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이겠지요. 하지만 저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그런 사람들과 달리 법과 도덕의 영역에 속한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 : 자네의 동료 대부분이 법과 도덕을 준수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은 나도 동의한다네. 하지만 법과 도덕이라는 영역 이외에 예의라는 영역은 어떨까? 자네는 법과 도덕보다 예의의 영역은 더 넓다는 사실에 동의하는가?
파우사니아스 : 네, 법과 도덕은 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지키는 데 필요한 범위로 제한되지만, 예의는 관계 그 자체를 위해 그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니까요.
소크라테스 : 정확히 보고 있네. 그럼 자네는 손바닥만 한 과녁과 일천 명이 노를 저어야 하는 배 옆에 그려놓은 과녁 중에 어느 쪽에 화살이 겹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가?
파우사니아스 : 당연히 일천 명이 노를 저어야 하는 배 옆에 그려놓은 과녁일 것입니다. 좁은 곳에 화살을 연거푸 맞게 하는 것은 아폴론 신이 축복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니까요.
소크라테스 : 바로 그렇다네. 그렇다면 훨씬 넓은 과녁과 마찬가지로 더 범주가 넓은 예의의 영역에서 타인과 자네의 화살, 즉 예의의 기준이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인정할 수 있는가?
파우사니아스 : 그것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 그럼 자네는 애초에 자네의 기준에 맞지 않을 수 있는 행동, 다시 말해 자네의 기준에 따르면 예의 없는 행동이 더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파우사니아스 :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은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애초에 제가 일어나기 어려운 일을 기대하고 있었고 그것에 의해 상처받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깨우쳐주시려는 것이었군요.
소크라테스 : 앞부분의 자네 말은 동의하지만, 뒷부분에 말한 어리석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네. 조금도 지혜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파르테논 신전을 짓는 데 사용된 돌보다 많은 세상에서 지혜를 찾고자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하는 사람을 어찌 어리석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이 세상에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데 어려운 일이 쉽사리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는 행동은 결코 자네 자신에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네와의 대화를 통해 이야기해보고 싶었을 뿐이라네.
파우사니아스 : 언제나 제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가 어떻게 이번 일을 해석해야 저 자신에게 이로울지를 알 수 있게 되었네요.
소크라테스 :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은 자네 자신에게 이로울 뿐만 아니라 결국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로움을 줄 것이라네. 만약 자네가 나를 찾아오지 않고 감정이 상한 채로 있었다면 그 감정은 다른 사람을 해칠 수도 있었을 테니까. 자, 이제 지혜를 사랑하는 신의 피조물로써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을 가다듬어 보게. 그것이 자네의 인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로 이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