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쓰지 않는다'는 한마디에 대하여
소크라테스 : 파우사니아스여,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따스한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흐르는 가을 하늘 아래서 어찌 혼자 먼저 겨울이 온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인가?
파우사니아스 : 선생님,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이 선생님을 어떻게 대하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으시나요?
소크라테스 :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에 따라 다르겠지. 자네가 말하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은 어떤 의미에서 하는 말인가?
파우사니아스 : 저는 제가 가깝게 생각했던 사람이 저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런 마음의 상태와 정 반대를 신경 쓰지 않는다
소크라테스 : 자네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무언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드는 마음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로 '신경 쓰인다'는 어구를 쓰는 듯싶은데 내가 이해한 바가 맞는 것인가?
파우사니아스 : 네, 맞습니다.
소크라테스 :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가?
파우사니아스 : 이번에 제가 있던 초소에서 다른 초소로 이동하는 동료가 있는데 그 동료의 송별식이 오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정체를 알 수 없는 역병이 돌아서 6명 이상은 송별식에 참석할 수 없었는데 그 6명 중에 제가 끼지 못했다는 사실이 저를 신경 쓰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그 6명 중에는 들어갈 것이라 기대했었으니까요.
소크라테스 : 그런 일이 있었구먼.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가혹한 형벌 중에 하나가 마음속에 쌓아 올린 기대라는 탑을 무너트리는 일인데 자네가 그런 형벌을 받고 말았다니 정말 슬픈일이 아닐 수 없네. 하지만 파우사니아스여, 만약 신이 그런 형벌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모래사장 위에 탑을 쌓은 자네의 선택이 형벌을 자초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파우사니아스 : 저의 어떤 선택이 모래사장 위에 탑을 쌓은 것 같다는 말씀이신가요?
소크라테스 : 우선 동료들이 송별식을 하는데 자네를 초대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자네는 자네와 동료들의 사이를 볼 때 이번 송별식에 응당 자네를 초대할만한 사이라고 가정하고 마음속에 기대를 쌓은 것 같은데 그 점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파우사니아스 : 맞습니다 선생님, 저는 그들과 지내온 시간을 생각해볼 때 그 정도 기대는 품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송별식에는 저보다 덜 같이 일했던 동료도 초대받았는데 저는 그렇지 못하게 돼서 더욱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자네는 함께 지내온 기간이 기대를 쌓을만한 근거가 된다고 생각해서 초대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구먼. 하지만 파우사니아스여, 자네가 이 도시의 평화를 지키며 봐온 수많은 불행한 관계들이 일면식도 없던 타인들 사이에만 있던 일이던가? 평생을 함께 할 것처럼 오랜 세월을 봤던 부부가 히드라와 헤라클레스의 혈투를 방불케 하는 싸움을 벌이고, 침몰해가는 배 위에서 마지막 남은 판자 조각을 양보할 것 은 같던 백년지기 친구가 다른 친구의 재산을 모두 빼앗고 사라지는 일이 아주 슬프게도 이 세상에 넘쳐나지 않던가.
파우사니아스 : 말씀하신 부분도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낯선 사람보다는 오래 지내온 사람을 더 친밀하게 느끼는 것이 보통의 관계 아닐까요?
소크라테스 : 지난번 대화 때도 지적한 바 있지만 자네는 보통이라는 말을 조금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있는 듯싶네. 우리는 모두 신의 피조물이기에 변덕스럽고 다양하고 종잡을 수 없는 그들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네. 그런 다양한 모습들이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사랑과 미움으로 펼쳐지는 이 세상에 어떻게 보통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일 수 있겠는가.
파우사니아스 : 그럼 선생님은 오랜 시간을 지낸 관계가 더 친밀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소크라테스 : 바로 그렇다네. 나는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신들의 축복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네. 그 외에 인간은 노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무용한 것이고.
파우사니아스 : 그렇다면 저 같은 인간은 제가 맺고 있는 관계가 신들의 축복을 받는 관계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소크라테스 : 오오, 파우사니아스여. 자네의 지혜를 사랑하는 노력이 질문으로 표현되는 것만큼 나를 기쁘게 하는 게 없는데 바로 지금이 그런 순간이구만. 우선 질문에 대한 대답부터 하자면 자네가 맺고 있는 관계가 신들의 축복을 받고 있는지는 인간의 지혜로는 알 수 없다네. 그렇기 때문에 신들의 축복을 받고 있는지 여부는 고민의 대상이 아니지.
파우사니아스 : 그렇다면 제가 누군가의 관계 속에서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거나 극악무도한 일을 해도 저와 그 사람의 관계가 신들의 축복을 받고 있다면 행복한 관계로 끝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소크라테스 : 그건 결코 아니라네. 자네가 신들의 축복을 받는 관계를 만들고 싶다면 신들의 축복을 받을 만한 일, 즉 신을 기쁘게 하는 일을 위해 노력하는 일은 할 수 있겠지. 이를테면 이익보다 헌신, 거짓보다 진실, 태만보다 근면과 같이 신들이 좋아하는 가치를 관계 속에 녹여내기 위해 노력한다면 신들이 자네를 축복할 가능성은 더 높아지겠지.
파우사니아스 :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헌신하며 진실하게 대하고 근면함을 이어나가는 노력이 행복한 관계로 이어지지는 않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것들이 신들의 축복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실천하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소크라테스 :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그런 행동을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네. 이 세상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많은 이해관계와 감정의 소용돌이가 얽혀있어서 인간의 지혜와 노력으로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 것들 투성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속에서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네. 그런 면에 좋은 관계를 위해 좋은 가치들, 다시 말하면 헌신, 진실 등을 행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점은 동의하는가?
파우사니아스 : 당연히 동의합니다.
소크라테스 : 그리고 변덕스러운 신들이 인간의 운명을 희롱하는 일을 즐기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가치를 실천해도 필연적으로 행복한 관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네. 그게 인간의 운명이 가진 비극이겠지. 그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는 분명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 이외의 선택이 없기에 그 길을 걷고자 하는 것이고. 그렇게 유일하게 실천할 수 있는 선을 묵묵히 행한다면 어떤 신들의 변덕을 조금은 누그러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네.
파우사니아스 : 그러니까 선생님은 제가 누군가에게 행복한 관계를 위해 최선의 가치를 실천한다고 해도 그것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애초에 변덕스럽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거밖에 없으니 실천하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소크라테스 : 바로 그거라네. 자네는 최초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점, 다시 말하면 그 시간 동안 우정과 신뢰를 쌓을만한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기대를 가졌지만 실은 그 모든 행동은 그저 신들의 변덕 앞에서는 먼지처럼 흩어져나갈 만큼 나약한 것일 뿐이라네. 그럼에도 자네가 했던 행동은 대안이 없는 행동이었고 최선의 행동이라는 점에서 조금도 실망하거나 실천을 포기하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파우사니아스 : 지혜의 눈으로는 선생님의 말씀은 이해할 수 있을 듯싶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눈으로 그런 진실을 보고 있자니 너무도 허무하고 무기력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제 노력이 아무 의미도 없을 수 있는데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시지프스가 영원히 바위를 굴리는 형벌보다 더 가혹하게 느껴지네요.
소크라테스 : 파우사니아스여, 자네는 신들의 변덕과 조롱이 자네를 밀어내는 방향으로만 작용한다고 오해하고 있는 듯싶네. 신들은 그들이 한없이 높은 곳에 살고 있기에 인간 중에 어느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네. 지금은 누군가와의 관계가 한없이 멀어지게 하는 변덕을 부리기도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는 목숨도 바칠 것 같은 사이로 만들어주기도 하고. 물론 그 반대의 일도 행하겠지. 우리 모두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단 한순간에만 집중하는 탓에 마음을 가두는 벽을 쌓으려고 하는 때가 있다네. 하지만 그런 벽이 마음의 늪지대에서 올라올 때마다 현재라는 시간의 너머를 본다면 벽은 낮아지고 자네의 마음은 더 먼 곳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라네.
파우사니아스 : 아주 작은 환송회에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내 주시다니 선생님은 역시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소크라테스 : 나는 신들이 가장 혹독하게 인간을 다스리는 일이 오만함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않으려고 하네. 그럼에도 자네의 그런 과찬이 자네의 지혜를 향상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준 감사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오늘은 감사히 듣겠네. 자, 날이 저물고 일도 마쳤으니 최선의 선택은 포도주를 마시면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겠지. 어서 술과 떠들썩함이 있는 자리로 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