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일이 달가운 순간도 있다
파우사니아스 :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오늘은 어디를 가시는 길입니까?
소크라테스 : 오오, 파우사니아스여, 오늘은 자네의 얼굴에 따스함이 감도는 듯싶어서 다행이구먼. 요 근래 아틀라스보다 더 무거운 산을 짊어지고 있던 부담감에 짓눌린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네.
파우사니아스 : 네, 그렇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제 자신이 놓치고 있던 지혜의 조각을 찾아내었고 그것으로 인해 조금은 더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정말로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네. 자네는 무수히 많은 범죄자를 상대하면서 육체적으로 위협에 처하지만 실제로 우리를 더 많이 해치는 것은 스스로 가지는 마음의 위협이라네. 마음속에 무거운 짊을 짊어지고 사는 것은 아라크네가 뽑아낸 거미줄 위를 걸어 나락을 알 수 없는 절벽을 건너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라네. 자칫하면 스스로를 영원히 파멸시킬 수도 있으니까.
파우사니아스 : 그런 위험에서 저를 구해주신 선생님의 지혜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아까 여쭤보았지만 어디를 가시는 길이셨나요?
소크라테스 : 이런이런, 신께서 나에게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지만 노쇠함이 기억력을 쇠퇴시킨 않도록 축복하지는 않으셨다는 것을 깜박했구먼. 나는 지금 재판소에 다녀오는 길이라네.
파우사니아스 : 아니 재판소라니. 선생님같이 고결한 삶을 사는 분이 재판소에 드나들만한 일이 있었다는 것이 저에게는 믿기지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 : 파우사니아스여, 나를 그렇게 봐주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네만 자네는 재판소라는 곳은 가고 싶어서 가는 곳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은 잠시 잊은 듯 싶네. 내가 재판소를 다녀온 이유는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네.
"크라토니라는 자가 상선을 구입하는데 필요하다는 이유로 내게 3 탈란톤을 빌려갔는데 갚기로 한 날 찾아가 보니 그는 돈을 빌린 적이 없다고 하더군. 그래서 그냥 집에 돌아왔더니 아내가 헤라 여신이 제우스 신의 난봉질을 목격한 것처럼 격렬하게 화를 내며 당장 재판소로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네. 그래서 재판소에 가서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나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본 사람이나 빌려주었다는 증명서가 있는지를 묻길래 그런 것은 없다고 답했다네. 그러자 재판소에서는 내가 크라토니에게 돈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고 나는 알았다고 답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지, 이제 자네의 질문에 답이 된 것 같나?"
파우사니아스 : 아니 선생님, 어째서 그렇게 큰돈을 빌려주시면서 증인이나 증명서를 작성하지 않으셨습니까? 선생님 정도 지혜로운 분이 그런 장치 없이 돈을 빌려주면 당연히 그런 상황을 악용하는 사람이 있을 것임을 모르지 않으셨을 텐데.
소크라테스 : 확실히 나는 3 탈란톤을 잃었다네. 하지만 대신 얻은 것도 있지.
파우사니아스 : 노예 6명을 살 수 있는 거금을 잃고 얻은 것이 어떤 것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소크라테스 : 바로 크라토니라는 자에 대한 일말의 진실이지. 그는 신의를 가벼이 여기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자라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3탈란톤 이상의 것을 얻었다고 생각한다네.
파우사니아스 :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확실히 이번 일로 인해 크라토니라는 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저 도 알 게 되었지만 어째서 그것이 3 탈란톤의 가치를 한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소크라테스 : 파우사니아스여, 자네는 이 세상에서 진실을 깨닫는 일이 소중하다는 사실에 동의하는가?
파우사니아스 : 네, 동의합니다.
소크라테스 : 그리고 아주 불행하게도 진실하지 않은 사람으로 인해 파멸적인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파우사니아스 : 네, 알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 나는 이번에 신의가 없는 사람으로 인해 돈을 잃었다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 즉 크라토니에 대한 진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파멸적인 손해를 입지는 않았다네. 대신 크라토니에 대한 진실을 지금 이 순간에 알게 됨으로써 앞으로 그가 진실하지 않은 행동을 함으로써 나와 자네를 해칠 수도 있음을 대비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은 샘이고.
만약 이번 일이 없이 나와 크라토니가 페르시아의 침공에 맞서는 전쟁터에 나갔다고 가정해보게, 나는 크라토니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등을 맞길 것이고 그 순간 크라토니가 신의가 없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면 나는 이미 페르시아 군인의 창에 쓰러진 상태겠지. 그러니 금전적인 피해를 입었을지언정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지혜를 탐구할 기회를 얻은 채로 크라토니에 대한 진실을 깨닫는 일이 더 다행스러운 일 아닌가?
파우사니아스 : 확실히 곁에 있는 사람이 아주 치명적이고 결정적인 순간에 신의가 없는 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일입니다. 결국 선생님께서는 크라토니라는 사람이 어떤 자인지 알기 위해 증인도 문서도 없이 돈을 빌려주신 건가요?
소크라테스 : 파우사니아스여, 그건 결코 아니라네. 신들은 인간의 운명을 조롱하고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나는 결코 타인을 그렇게 대하는 일을 좋아하지도, 심지어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네. 다만, 내가 돈을 빌려준 것은 나름대로 사람에게 호의와 우정을 베푸는 방식이었고 그 결과가 진실이 광명을 드러낸 것으로 끝났을 뿐. 그 누구도 시험에 들게 할 생각은 없었다네.
파우사니아스 : 제가 선생님의 참뜻을 오해했었네요. 저도 선생님과 마찬가지고 호의를 배신으로, 진실을 거짓으로 답하는 자들이 누구인지 조금은 더 안전하게 알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다행이네. 하지만 결코 다른 사람의 심연을 가벼이 여기지 말게. 이 세상에는 작은 일부터 쌓아가며 타인의 신뢰를 차곡히 쌓았다가 파멸시킬 기회가 보이면 그때 마각을 드러내는 자들도 있으니. 우리가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지혜를 이용해서 나 자신과 타인을 살펴보면서 신들의 변덕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