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만들고 글을 쓰면서 더 깊어지는 나
지난 2018년, 2년간 5천만 원을 깨 먹으며 준비한 공무원 시험에 장렬히 떨어지면서 삶에 대한 내 생각은 많이 바뀐다. ‘그동안 생계, 성공, 안정 때문에 나를 억누르고 살아왔건만 그래 봐야 성공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하고 싶은 걸 하자!’로.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것도 어디 가서 자랑할 일은 못 되지. 하지만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컴퓨터 수리점을 폐업한 이래로 이 직장, 저 직장 전전긍긍하던 내게 마지막 출사표였던 그 시험의 탈락은 이제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살지 말라고 내게 경고하는 듯했다.
나는 저축해 둔 돈도 없었고, 생활하기 불편한 두 가지 지병을 앓고 있었으며, 50이라는 나이 앞에 죽음의 두려움도 성큼 다가온 듯했다. 그런 끝자락에서 어릴 적부터 언제나 막연하고 뿌옇기만 했던 음악에 대한 짝사랑, 글쓰기에 대한 로망이 떠올랐다. ‘몸은 병들고, 나이는 들어가는데 언제까지 남보란 듯이만 살 것인가? 이젠 나 보란 듯이,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살아야지’하는 생각.
이후 큰 기대 없이 지원한 모 방송국 sns 기자단에 덜컥 합격하면서 용기를 얻었고, 그 에너지로 하고 싶었던 여러 가지 활동들에 도전하게 된다. 문화예술회관 모니터링단에 뽑혀서 다양한 공연도 감상했고, 기자단 활동을 같이했던 몇몇 분들이랑 책도 썼다. 브런치 작가 도전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런 활동들을 하면서 비로소 나에게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나는 예술에 목마른 어린 양이었던 것이다. 곡을 아직 팔진 못했지만, 자작곡 유튜브 채널을 시작한 덕에 프로 작곡가를 만나 내 곡에 대한 피드백도 받았다. 자작곡을 써서 프로 작곡가와 만남을 갖다니. 언감생심 꿈이라도 꿀 수 있었던 일인가? 어두운 불가능의 틀에 갇혀 있을 때는 말이다. 공모전 출품도 하고 있고, 기획사에도 데모곡을 계속 보내는 중이다. D 작곡가님의 조언대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곡이 팔릴 것이다.
사실 나다운 게 뭔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우리는 바쁘게 살아간다. 지금껏 나도 그런 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뭐가 행복인지, 뭐가 나다운 건지 줏대 없는 흔들림 속에서 살아왔다. 실패와 질병과 두려움 - 죽음에 대한 - 이 없었다면 계속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오전은 병원 주차장에서 알바를 하고 오후에는 작곡, 피아노 연습, 글쓰기, 독서를 하는 것이 요즘 내 생활이다. 주차 안내를 하는 나를 향해 걸어오는 한 무리의 환자들을 무심코 보던 어느 날, 좀 죄송한 표현이지만 영화에서 본 좀비들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만큼 그분들 혈색이 안 좋았고, 걸음걸이는 불편했으며, 나이는 많았던 것이다. 죽음과 질병 앞에 이토록 연약한 인간들. 나 또한 피해 갈 수 없는 그 늙음과 죽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찾게 했다면 노래를 만들고, 글을 쓰면서 나는 더 깊어지는 것 같다. 결과물이 어설플지라도 창조를 해나가는 과정은 내 감정을 어루만져 주고 생각을 정돈해 준다. 이런 것들이 사라진 하루는 세상의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기 쉬운, 그런 하루다.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곡과 글로 남기는 것은 추억의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과 비슷하다. 시간과 함께 흘러서 사라져 버릴 순간들, 그 상상과 마음속의 이미지들을 소리와 텍스트로 남기는 작업은 나를 본연의 나에게로 데려다주는 마법이다.
깃털처럼 가벼운 우리 삶이 끝나기 전까지는 모래성이라도 쌓아두자. 모래성을 쌓는 동안 우리는 바다와 파도 소리와 바람의 냄새를 더 잘 이해하고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모래성은 노래를 만들고, 악기를 연주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다. 당신 자신을 찾고, 더 당신다운 당신으로 만들어주는 당신의 모래성은?
나다워진다는 것은 적당히 만족스러운 식사 후에 소소한 테이블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차 한잔 마시는 그런 기분이 아닐까?
<신성우 - 서시>
https://www.youtube.com/watch?v=TxwcWW7SMBY
<장윤정, 영지 -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